2018년 10월 13일(현지시간) 새벽 히말라야 구르자히말 원정 도중 실종됐던 김창호 대장(당시 49세) 시신이 베이스캠프 인근에서 발견됐다.
김창호 대장이 이끈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는 9월 28일부터 11월 11일까지 45일 일정으로구르자히말 남벽 직등 신루트 개척에 나섰다. 당초 원정대는 김 대장을 포함해 총 6명이었으나, 대원 1명이 건강 악화로 산기슭에 남게 되면서 나머지 대원들은 네팔인 가이드 4명과 함께 등반을 이어갔다.
이들은 애초 10월 12일 하산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해진 날에 내려오지 않자 산 아래에 잔류해 있던 동료가 네팔인 가이드 1명을 올려보냈고, 그 과정에서 베이스캠프가 파괴된 사실을 확인했다. 김 대장 일행은 등반 중 베이스캠프에서 강한 돌풍에 휩쓸려 급경사면 아래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됐다. 사고 지점은 해발 3500m 고지로, 헬기와 구조 인력의 접근이 매우 어려워 실종자 수색에 큰 차질을 빚었다.
이후 주네팔 한국대사관 측은 "13일 새벽 김 대장 일행의 베이스캠프 인근에서 김 대장을 포함한 한국인 5명과 네팔인 가이드 4명 등 총 9명의 시신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사망자는 김창호 대장을 비롯해 유영직(51·장비 담당), 이재훈(25·식량 의료 담당),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임일진(49), 그리고 정준모 한국산악회이사 등 5명과 이들을 돕던 네팔인 가이드 4명 등 총 9명이다. 정 이사는 애초 원정대 명단에 없었지만 현지에서 격려차 방문했다가 함께 변을 당했다.
베이스캠프 바로 근처에서 시신 1구가 발견됐으며 나머지 시신 8구는 계곡 아래에 있었다. 현지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아 시신 수습에 어려움이 컸다. 외교부는 주네팔대사관과 현장대책반을 구성하고 네팔 경찰 당국과 베이스캠프 운영기관 등을 접촉해 시신 수습 및 운구 등 향후 진행사항에 대해 협의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수색에 나선 헬기가 소형이라서 시신을 발견하긴 했지만, 수습까지는 어려웠다"며 "수습장비를 구비한 헬기를 이용하여 조속한 시일 내에 시신을 수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교부와 주네팔대사관은 현지 경찰 등 구조당국과 수습된 시신의 신원확인 및 운구 등 향후 진행사항을 긴밀하게 협의했고, 같은달 17일 김 대장을 비롯한 한국인 5명의 시신이 인천공항 대한항공 국제공항화물터미널을 통해 유가족에게 인계됐다. 관들이 이송되어 나오자 화물터미널 앞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일부 유족들이 운구차로 옮겨지는 관을 붙잡고 오열하면서 운구 행렬이 잠시 멈춰 서기도 했다. 운구차에 실린 5구의 시신들은 오전 6시 40분쯤 인천공항을 떠나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김 대장의 모교인 서울시립대 대강당에는 산악인 합동분향소가 설치됐으며 합동 영결식도 엄수됐다. 김 대장 빈소가 마련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고인의 대학친구 염 모 씨는 "우리나라 산악계에 엄청난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이 모르는 친구다. 남들에게 자기 자신을 떠벌리는 친구가 아니라 자기 소신을 묵묵히 챙긴 친구"라고 회상했다.
김 대장이 주도한 히말라야 코리안웨이 개척이 무모했다는 일부 시각에 대해서는 "김 대장은 무모하게 산에 가는 그런 친구는 아니었다. 그의 모토는 '집에서 집으로'다. 1%의 가능성에도 도전해야 한다고 내모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김 대장은 100%의 가능성이 있을 때만 도전한다"고 못 박았다.
같은 대학 동문인 전 모 씨도 "김 대장은 절대 위험을 무릅쓰고 무모하게 목숨을 걸고 등반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를 바탕으로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을 택해 갔다"며 "산사태나 눈사태는 예상을 할 수 있어 피해가면 되지만 이번에는 눈이나 얼음 흔적이 전혀 없고 돌풍이 휩쓸고 온 것 같다. 돌풍의 경우 산악인들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이어 "김 대장은 완벽하게 준비하는 스타일로 그의 정보력은 현지 셰르파들이 모르는 것까지 알고 있을 만큼 더 좋은 편"이라며 "대상지에 대한 사진을 다 찍고 연구하고 어느 루트로 갈지, 어느 시기에 갈지 다 계산해서 간 것임을 많은 이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알렸다.
김 대장은 1989년 동계와 1992년 추계 일본 북알프스 원정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산과 인연을 맺었으며 2005년 8156m의 낭가파르바트를 시작으로 2013년 8848m의 에베레스트까지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국내 최초로 무산소 완등하는 업적을 세웠다.
특히 7년 10개월 6일 만에 14좌에 모두 오르면서 당시 폴란드의 예지쿠크즈카가 보유한 최단 기간 완등기록(7년 11개월 14일)을 1개월 단축시켰다.
2013년 제14회 대한민국 산악상 시상식에서는 대상을 수상했다. 당시 김 대장은 "산에 가지 않는 산악인은 의미가 없다. 지금까지는 높은 곳만 보고 왔다면 앞으로는 깊은 곳을 바라보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2017년에는 해발 7140m의 네팔 강가푸르나 남벽 신루트를 개척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인 최초로 세계 최고 권위의 황금피켈상 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당시 김 대장의 비보를 접한 산악인 엄홍길 대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너무도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일"이라고 애도했다. 대한산악연맹도 "김 대장은 무산소 등정이나 신루트 개척을 통해 실험적인 등반을 해온 산악인으로 존경을 받아왔다. 안타깝고 참담하다"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