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을 선포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항소심 최후진술에서 계엄은 장기독재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 아닌 헌법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했다.
윤 전 대통령은 5일 서울고법 형사12-1부(고법판사 이승철·조진구·김민아) 심리로 열린 내란 우두머리 등 혐의 결심공판에서 이같이 밝혔다. 윤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5시38분부터 오후 6시57분까지 79분에 걸쳐 최후진술했다. 국헌문란·폭동의 목적도 없었다는 기존의 주장을 반복했다. 계엄 선포는 헌법상 대통령의 독점적 권한이라며 계엄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사과나 반성의 말은 없었다.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당시 거대 야당(당시 더불어민주당)의 줄 탄핵·입법 폭거 등을 언급하며 "저들(민주당)은 헌법상 권한을 남용했지만 저는 헌법의 틀 안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것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권력의 교만이 극에 달해 있다"며 "대통령은 나라가 위기 상황이고 행정·사법의 정상적인 수행이 곤란하다고 판단될 때 계엄을 선포하고 군을 투입할 헌법상 권한이 있다"고 했다.
국헌문란·폭동의 목적이 없었기에 내란죄가 성립할 수 없단 주장도 재차 강조했다. 윤 전 대통령은 "계엄에 투입된 군인과 경찰은 국회의원·국회 관계자·시민을 상대로 억압하거나 폭력 등을 행사한 사실이 없다"며 "선관위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국회 질서유지와 선관위 보안점검 준비를 위해 간 것뿐"이라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은 국회의원을 끌어내도록 지시했다는 특검팀 주장에 대해선 곽종근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이 국회에서 '인원'을 끌어내란 지시를 '의원'으로 이해한 것이라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수백 개의 언론사와 막강한 시민사회, 여야 정치권 등이 며칠만 국회 건물을 봉쇄한다고 해도 가만있겠었냐"며 "민주당이 계엄선포 하면 즉시 무산시키겠다고 반복해서 으름장을 놓았는데 경찰기동대 300여명과 특전사 수십 명으로 국회 봉쇄가 가능한 것이냐"고도 했다.
무기징역을 선고한 1심의 판단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은 "원심은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을 내란의 증거로 채택했다"고 말했다. 조지호 전 경찰청장이 2024년 12월 수사 초기에 '대통령이 국회에 들어가려는 의원들을 모두 체포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가 지난해 11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재판에서 '대통령이 국회 담을 넘어가는 의원들을 체포하라고 했다'고 증언하는 등 진술이 바뀌어 신빙성이 없음에도 원심이 이를 채택한 게 문제라는 취지다.
또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업무관련 만찬과 술자리를 계엄논의와 포섭으로 엮으려 한 것 같다"면서도 "제가 만찬자리나 술자리에서 다소 취기에 젖어 대통령의 비상대권 운운했다면 오히려 그 당시에는 계엄 같은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반증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 정권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재판사건이 조작 기소라고 주장하는 정치권력자들도 한둘이 아니다"며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판사를 처벌하고 사법부 수장을 모욕주고 탄핵하겠다고 한다. 이런 걸 보면 나라가 위기 상황인 게 맞구나 싶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윤 전 대통령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신다. 그분의 의로운 오른손이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이라고 했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이날 오후 5시5분부터 32분간의 최후진술을 했다. 김 전 장관은 비상계엄을 할 수밖에 없었다며 "당시 대통령과 대화 과정에서 인식한 대한민국의 암 덩어리 3가지가 있었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은 △당시 거대 야당(민주당)의 입법 독재·정부 주요 업무 예산 삭감 △종북 세력·반국가 세력 △부정선거 등에 대항하기 위해 계엄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은 최후진술에서 "김 전 장관 요청을 성의껏 도우려 했다. 일체 후회는 없다"며 "뜻하지 않게 많은 분께 걱정을 끼치게 돼 송구한 마음"이라고 했다. 계엄에 연루된 정보사 등 군인들에게도 사과의 말을 전했다. 조지호 전 경찰청장은 "기관의 장으로서 '절대 안 된다'고 해야 했는데 못했다"며 "이런 결과를 초래해 너무나 죄송하다"고 했다.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은 "모든 건 제 부족함에서 비롯됐다"며 "어떠한 처분도 달게 받을 거다. 상처받은 모든 분께 가슴 깊이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울컥한 듯 말을 잠시 잇지 못하기도 했다.
목현태 전 국회경비대장은 "계엄이란 위기 상황 속에서 주어진 임무에 몰두한 경찰 공무원에게 어떻게 내란의 고의가 있을 수 있겠냐"며 "면밀히 살펴 선고해달라"고 했다. 김용군 전 제3야전군사령부 헌병 대장은 "오해받을 사안이 있던 건 맞지만 동조하진 않았다"고 했다. 윤승영 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사기획조정관은 자신이 하지 않은 언행이 수사결과에 기록됐다며 억울함을 표했다.
재판부는 모든 피고인의 최후진술을 들은 뒤 선고를 다음해 1월26일 오후 2시30분에 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빡빡한 재판 일정에도 재판부의 소송 지휘에 잘 따라준 특검팀·피고인들·변호인들·교도관들에게 감사하다"며 변론을 종결했다. 변론 종결까지 공판준비기일 6회, 공판기일 28회를 거쳤다.
결심공판을 마친 뒤 윤 전 대통령은 특검팀과 변호인들에게 모두 악수를 청하며 웃으며 "고생했다"고 말했다. 방청석에 온 지지자들에겐 응원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앞서 특검팀은 지난달 윤 전 대통령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이외에 △김용현 전 장관 무기징역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징역 30년 △조지호 전 경찰청장 징역 20년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징역 15년 △목현태 전 국회경비대장 징역 12년 △김용군 전 제3야전군사령부 헌병 대장 징역 10년 △윤승영 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수사기획조정관 징역 10년을 각각 구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