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에게도 내 집 마련은 꿈이다.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마당 딸린 집 한 채는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이 미국 중산층을 떠받쳐왔다. 일단 최근 주택시장 상황은 나쁘지 않다.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9월 기존주택 판매는 연 399만채 속도로 전달보다 1.5% 늘었다. 중간 거래가격은 41만7500달러로 1년 전보다 1.3% 올랐고, 매물도 160만채로 4.6% 늘었다.
하지만 집을 구매하는 중산층의 재정상황은 좋지 못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책 모기지업체 프레디맥에 따르면 30년 고정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10월 29일 기준 연 7.24%다. 1년 전 연 6.17%보다 1%포인트 넘게 높다. 10월 중순에는 연 7.40%까지 올라 3년 만의 최고치를 찍었다. 집값은 그대로인데 대출 이자가 불어나면서 월급쟁이가 감당해야 할 매달 상환액이 크게 늘었다는 뜻이다.
내 집 마련을 포기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NAR이 지난해 11월 낸 연례 보고서에서 생애 첫 주택 구매자 비중은 21%로 역대 최저였다. 첫 구매자의 나이는 중간값 기준 40세로 역대 가장 많았다. 최근 모기지 금리가 더 오르면서 집을 살 자격을 갖춘 사람이 줄었다며, 8~9월이 올해 들어 주택 거래가 가장 부진한 두 달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러다 보니 수요자들은 값싼 대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공장에서 지어 트럭으로 옮겨 설치하는 공장제 주택(매뉴팩처드 홈)이다. 미국 인구조사국 통계로 올해 5월 새 공장제 주택의 평균 판매가격은 13만500달러다. 기존주택 중간가격의 3분의 1이 안 된다. 미 의회도 움직였다. 지난 7월 발효된 로드 투 하우징법(ROAD to Housing Act)은 공장제 주택에 붙어 있던 영구 강철 섀시(바퀴 달린 차대) 의무를 없앴다. 일반 주택처럼 기초 위에 앉히고 2층으로 쌓을 길이 열린 셈이다. 미국 3위 공장제 주택업체 캐브코 인더스트리즈는 이런 흐름의 변화를 톡톡히 타고 있는 기업이다.
집값 41만달러 시대 '이 집'은 13만달러…공장서 집 찍는 美 캐브코
캐브코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본사를 둔 공장제 주택 제조사다. 미국 내 31개, 멕시코 2개 등 생산라인 33개에서 집을 찍어내듯 만든다. 직영 매장 92곳과 48개주·캐나다의 독립 판매점을 통해 팔고, 주택담보대출과 주택보험 자회사까지 거느렸다. 집값과 금리 부담에 밀려난 실수요자를 가장 먼저 받아내는 회사라는 뜻이다. 금리가 높을수록 오히려 주목받는 주택주로 꼽히는 이유다.
지난달 29일 장 마감 뒤 발표한 2분기 실적이 시장 예상을 크게 웃돌자 캐브코는 다음날 하루에만 13.1% 뛰었고, 이틀 새 21.1% 올랐다. 2분기 주당순이익(EPS)은 7.17달러로 시장 예상치 5.52달러(마켓비트 집계)를 30% 가까이 넘어섰다. 회사는 최근 1년 사이 덩치를 키우고 주주환원도 늘렸다. 지난해 9월 텍사스 기반 주택업체 아메리칸 홈스타(오크크릭 홈스)를 1억9000만달러(2553억원)에 현금으로 사들였다. 자사주는 이번 분기에만 3000만달러(403억원)어치를 샀고, 약 5년간 누적 매입액은 6억4200만달러(8627억원)에 이른다. 올해는 섀시 없이 기초 위에 설치하는 첫 공장제 주택 그란데 아버를 내놨다. 값싼 이동식 주택 업체에서 미국 주택난을 푸는 주택 제조업체로 탈바꿈하는 과정이다.
캐브코의 뿌리는 1965년 피닉스에서 문을 연 로드러너 매뉴팩처링이다. 픽업트럭 짐칸에 얹는 캠핑용 숙소(트럭 캠퍼)와 여행용 트레일러를 만들던 작은 회사였다. 이듬해 이름을 캐벌리어로 바꿨고, 1969년부터 주문형 이동식 주택을 만들어 애리조나 판매점에 공급했다. 1973년 석유파동으로 캠핑용 차량 수요가 꺾이자 다른 제품을 모두 접고 주택에만 집중했다. 1974년 지금의 캐브코로 이름을 바꿨고, 같은 해 앨 길피가 사장에 올랐다.
1996년 12월에는 미국 대형 주택건설사 센텍스가 7500만달러(1008억원)에 지분 80%를 사들였다. 센텍스는 2000년까지 캐브코를 완전 자회사로 만들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 업계 불황이 이어지자 2003년 6월 캐브코를 다시 떼어내 나스닥에 상장시켰다. 이 때만 해도 미국 남서부의 지역 업체에 불과했다.
회사가 전국 업체로 도약한 계기는 2008년 금융위기였다. 2007년부터 주택시장이 무너지면서 경쟁사들이 줄줄이 쓰러졌다. 캐브코는 2009년 8월 플리트우드 홈스, 2011년 4월 팜하버 홈스의 자산을 사들였다. 두 회사 인수로 북서부·남부·중부대서양 지역 공장과 판매망을 얻었고, 대출·보험 자회사까지 확보해 생산부터 판매·금융까지 한 회사에서 해결하는 구조를 갖췄다. 불황으로 경영난에 빠진 경쟁사의 자산을 사들이며 덩치를 키운 셈이다.
이후에도 2015년 페어몬트 홈스·프렌드십 홈스·채리엇 이글, 2017년 렉싱턴 홈스, 2019년 데스티니 홈스, 2021년 코모도어, 2023년 솔리테어 홈스를 차례로 품었다. 2025년에는 아메리칸 홈스타를 인수하며 최대 시장인 텍사스를 굳혔다. 1971년 벅 티터가 세운 이 회사는 텍사스 공장 2곳과 매장 19곳, 직원 800명을 거느렸고 인수 직전 1년간 집 1676채를 만들었다. 위기도 있었다. 2018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회사 계좌를 이용한 주식거래와 관련해 조사에 나섰고, 조 스테그메이어 당시 CEO(최고경영자)가 그해 11월 물러났다.
엿새면 집 한 채 완성→3분의 1 가격에 대출·보험까지 한 번에
소비자들이 캐브코 집을 찾는 첫째 이유는 가격이다. 공장 조립라인에서 단계별로 집을 만들기 때문에 현장에서 짓는 집보다 짧은 시간에 싸게 지을 수 있다. 미국 제조주택협회가 정리한 인구조사국 2023년 통계를 보면 새 공장제 주택의 건축비는 제곱미터당 약 932달러다. 땅값을 뺀 일반 신축주택 약 1786달러의 절반 수준이다. 캐브코의 2분기 집 한 채당 도매 매출은 10만6118달러(1억4260만원)였다.
둘째는 속도다. 공장은 하루 한 교대, 주 5일 가동하는데 집 한 채를 완성하는 데 생산일 기준 엿새 정도가 걸린다. 비·눈 같은 날씨에 공사가 멈출 일이 없고, 자재를 한꺼번에 사들여 원가도 낮춘다. 공장마다 반경 약 560킬로미터 안의 판매점에 물량을 대 운송비 부담도 줄였다. 크기는 약 46~307제곱미터, 침실은 1~5개까지 고를 수 있고 자체 설계팀이 주문에 맞춰 평면을 바꿔준다. 벽난로·화강암 조리대·원목 마루 같은 고급 사양과 태양광 같은 에너지 절감 설비도 추가할 수 있다. 싼 집이지만 내 취향대로 고른 집이라는 만족감을 주는 셈이다.
사후관리도 갖췄다. 구조·배관·전기 결함은 1년, 마감재는 120일간 무상 보증한다. 직영 매장은 대로변에 실제 크기의 견본주택을 여러 채 세워두고 소비자가 직접 둘러보고 주문하게 한다. 독립 판매점 직원들에게는 공장 견학과 신제품 교육을 해준다. 판매 현장의 상담 수준을 끌어올려 다른 회사 제품과 함께 진열돼도 캐브코 집이 먼저 팔리게 하려는 전략이다.
셋째는 금융과 보험을 한 번에 해결해준다는 점이다. 공장제 주택은 그동안 땅과 분리된 동산으로 취급돼 일반 주택담보대출을 받기 어려웠다. 대출 자회사 컨트리플레이스는 국책 모기지업체 패니메이·프레디맥과 거래할 수 있는 인가를 받아 일반 주택담보대출부터 집만 담보로 잡는 대출까지 내준다. 보험 자회사 스탠더드캐주얼티는 텍사스·애리조나 등에서 공장제 주택 전용 보험을 판다. 집을 고르고 대출·보험까지 한자리에서 끝낼 수 있다는 의미다. 컨트리플레이스가 보유한 소비자 대출의 평균 약정금리는 3월 말 기준 연 7.4%로 1년 전 연 7.9%보다 낮아졌다. 대출은 텍사스·플로리다·오클라호마·뉴멕시코 등 27개주에 걸쳐 있다.
트럭 캠퍼 공장서 출발→불황 때마다 경쟁사 사들여 美 3위로
주요 고객은 연 소득 9만달러 미만 가구다. 55세 이상 은퇴자, 30대 이상 1인 가구와 부부, 농촌 거주자의 비중이 높다. 이들에게 다 갖춰진 공장제 주택은 일반 신축주택의 현실적인 대안이다. 거래처는 잘게 나뉘어 있다. 독립 판매점 가운데 매출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곳은 최근 3년간 한 곳도 없었다. 다만 직영 매장 92곳 가운데 57곳이 텍사스에 몰려 있다.
사업 구조는 단순하다. 2026사업연도(2025년4월~2026년3월) 매출 22억4450만달러(3조162억원) 가운데 공장제 주택 부문이 96.1%, 금융 부문이 3.9%를 차지했다. 금융 부문은 매출 비중은 작지만 매출총이익률이 58.0%로 높아 이익을 받쳐준다.
전방 시장은 다시 커지고 있다. 미국 제조주택협회(MHI)에 따르면 공장제 주택 출하량은 2023년 8만9000채에서 2024년과 2025년 각각 약 10만3000채로 늘었다. 2024년 기준 새 단독주택 판매의 13.1%가 공장제 주택이다. 시장은 3강 구도다. 지난해 출하량 기준 점유율은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가 소유한 클레이턴 홈스가 46.75%, 챔피언 홈스가 22.10%, 캐브코가 17.65%다. 30곳이 넘는 중소 업체와 아파트·일반 주택도 경쟁 상대다. 최근 성장 속도는 캐브코가 앞선다. 2위 챔피언 홈스의 같은 분기 매출 증가율은 1.3%에 그친 반면 캐브코는 17.9%였다. 인수 효과를 빼도 기존 사업의 출하가 늘었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신제품도 시장을 넓힌다. 캐브코는 지난 분기 워싱턴DC에서 열린 미국 주택도시개발부(HUD) 혁신주택 전시회에서 섀시 없는 첫 공장제 주택 그란데 아버를 선보였다. 섀시가 사라지면 일반 주택과의 차이가 줄어 더 좋은 조건의 대출이 열릴 수 있다.
2분기 연속 사상 최대 매출→철강값·금리가 다음 분수령
경쟁력은 실적으로 확인된다. 매출은 2023사업연도(2022년4월~2023년3월) 21억4270만달러(2조8794억원)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금리 급등 여파로 2024사업연도에는 17억9480만달러(2조4119억원)로 줄었다. 이후 2025사업연도 20억1550만달러(2조7084억원), 2026사업연도 22억4450만달러(3조162억원)로 2년 만에 25.1% 늘었다. 같은 기간 판매 주택은 1만6928채에서 2만842채로 늘었고, 순이익은 1억9060만달러(2561억원)를 기록했다. 꾸준한 자사주 매입으로 희석 주식수는 2024사업연도 859만주에서 2026사업연도 795만주로 줄었다. 순이익 증가율보다 EPS 증가율이 높게 나오는 이유다.
2분기(2026년7~9월) 매출은 6억5640만달러(8821억원)로 17.9% 늘며 2분기 연속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판매 주택은 5972채로 15.3% 늘었다. 순이익은 5540만달러로 5.8% 증가했다. 다만 보험료 환급 일회성 이익 700만달러가 주당 0.70달러를 보탰다. 수주잔고는 3억4800만달러(4676억원)로 직전 분기보다 5000만달러, 1년 전보다 63% 늘었다. 8~10주 생산 물량이다.
새로 생긴 수요도 있다. 2분기에 데이터센터 건설현장 근로자용 숙소 주문과 출하가 크게 늘었다. 방 6~7개에 각각 화장실과 샤워실을 갖춘 단층 건물로, 도매가격은 7만~10만달러다. 텍사스 지역에 몰려 있다. 다만 회사는 이 수요가 얼마나 커질지, 주문이 미뤄지거나 취소될 가능성은 없는지 아직 분명히 알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수익성은 숙제다. 공장제 주택 부문 매출총이익률은 21.1%로 1년 전보다 1.8%포인트 낮아졌다. 철강 가격이 올해 들어 150% 가까이 올랐고 인건비와 다른 원부자재 가격도 함께 상승했다. 이를 판매가격에 전가할 수 있는지 장담하기 어렵다. 공장 가동률은 75% 수준이어서 주문이 늘면 생산을 더 늘릴 여력은 있다. 애리조나주 엘미라지 신공장은 내년 중반 가동을 목표로 한다.
월가의 시각은 긍정적이다. 원자재 부담과 높은 금리를 걱정하는 시각도 있지만 이보다는 주택난의 수혜를 보는 이들이 더 많다. 지난 12개월 EPS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은 약 28배다.
◇캐브코 인더스트리즈 주요 연혁
1965년 로드러너 매뉴팩처링으로 피닉스서 창업(트럭 캠퍼 생산)
1969년 주문형 이동식 주택 생산 시작
1974년 캐브코 인더스트리즈로 사명 변경
1996년 12월 센텍스, 지분 80% 인수(7500만달러)
2003년 6월 센텍스서 분사, 나스닥 상장(CVCO)
2009년 8월 플리트우드 홈스 자산 인수
2011년 4월 팜하버 홈스 자산 인수, 대출·보험 사업 진출
2019년 4월 빌 부어 CEO 취임
2025년 9월 아메리칸 홈스타 인수(1억9000만달러)
2026년 섀시 없는 첫 공장제 주택 그란데 아버 HUD 전시회 공개
2026년 10월 2분기 매출 6억5640만달러로 사상 최대, 수주잔고 63%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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