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일본이 노벨상 받을 때마다 '한국은 왜 (노벨과학상이) 0개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당연합니다. 누군가 깃발을 들고 기초과학의 방향을 설정한 적이 없으니까요."
21일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국가 기초과학 정책 아젠다와 AI(인공지능) 시대 교육혁신' 포럼에서 국내 기초과학학회 관계자는 이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이 주최하고 기초과학학회협의체가 주관한 이날 포럼에는 대한수학회·한국물리학회·대한화학회 등 국내 기초과학학회 주요 관계자를 비롯해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우성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올해 정부 R&D(연구·개발) 예산이 35조5000억원을 기록한데다 2027년도 예산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 중심에는 '국가전략기술'이 있다. 국가전략기술은 반도체, AI, 바이오처럼 외교·안보적 중요성이 크고 국민경제와 미래 산업을 창출하는 데 핵심이 되는 기술을 말한다. 과기정통부 'NEXT(넥스트) 프로젝트' 등이 국가전략기술을 집중 육성하는 대표적 사업이자 정책이다.
다만 전략기술의 기반이 되는 기초과학과 관련해서는 뚜렷한 정책적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학회의 지적이다. 기초과학은 수학·물리학·화학·지구과학처럼 모든 응용과학과 공학의 기초가 되는 학문 분야다.
서울대 자연대학장을 지낸 유재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우리가 흔히 전략기술이라고 부르는 건 대체로 외국도 이미 발전시키고 있는 것"이라며 "아직 '전략기술'로 명명되지 않은 지식과 가능성을 어떻게 확보할지 찾아야 할 때"라고 했다. 유 교수는 "한국이 정말 잘하는 것이 나와야 부가가치를 높이는데, (전략기술만 집중하는 건) 남들이 잘하는 기술에서 부스러기만 챙기는 것"이라고 했다.또 "정부가 '다양성'을 바탕으로 '수월성'을 추구하겠다는 선언을 내놓긴 했지만, 실제 정책에 어떻게 반영됐는지는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대안으로 기초과학의 '10대 분야'를 제안했다. 분산된 기초과학 분야 학과와 전공을 △컴퓨팅 및 데이터과학 △양자과학 △천체물리학과 우주의 기본법칙 등 '테마' 중심으로 묶고, 각 테마를 국가전략기술 및 국가 R&D 지원 체계와 연결 지어 기초과학의 부흥 방안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가는 임무를 정하되, 질문은 연구자 정하게 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올해 기초연구사업 예산은 지난해 대비 약 17% 증액됐고, 내년도 유사한 수준을 유지하거나 증액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또 국회에서는 국가 R&D 예산의 10% 이상을 기초연구사업에 반드시 배정하도록 규정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다만 기초연구사업은 기초과학뿐만 아니라 의학·공학 등 다분야를 여러 수준에서 지원하는 사업으로, 기초연구사업의 증액이 반드시 기초과학 지원 확대를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황 의원은 이날 포럼에서 "기초과학이 튼튼해야 성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며 "AI에 (R&D 투자가) 편중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는 데 힘을 보탤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