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적의료비 지원액이 지난해 2000억원을 넘어섰지만 진료비 세부내역을 전산으로 관리하지 않아 지원 진료의 적정성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국회에서 나왔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개발 중인 진료내역 전산화 기술을 점검하고, 계획된 수술과 고액 비급여 진료에 대한 사전승인제의 실행 가능성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전종덕 진보당 의원은 2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서 "한 해 2000억원을 쓰는데 어떤 진료에 돈이 나가는지 기록조차 하지 않았다"며 재난적의료비 지원 내역의 전산관리 개선을 요구했다.
전 의원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재난적의료비 전체 지원액은 2021년 446억원에서 지난해 2004억원으로 약 4.5배 늘었다. 이 가운데 퇴원 후 신청에 따른 지원액은 지난해 1836억원으로 전체의 91.6%를 차지했다.
퇴원 후 신청 중 척추·관절·외상 질환군 지원액은 같은 기간 111억원에서 647억원으로 약 5.8배 증가했다. 해당 질환군 지원액의 82%는 민간 중소병원에 집중됐고, 대학병원 등 대형병원 비중은 감소했다는 게 전 의원의 설명이다.
전 의원은 퇴원 후 신청 지원액 상위 10개 병원 중 대학병원 1곳을 제외한 9곳에서 해당 질환군이 차지하는 비중이 80%를 넘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4곳은 앞서 지적한 입원 중 신청 지원액 상위 10곳에도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전 의원에 따르면 요통과 허리 염좌, 타박상 등 경증 상병의 지원액도 4년 새 10.8배 늘었다. 관절통 지원액의 28.7%는 인천의 Y병원에 집중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숫자만으로 과잉진료라고 단정할 수는 없고 수술이 꼭 필요한 환자도 있다"면서도 "필요한 진료였는지, 비급여 진료를 추가한 것인지 확인하려면 세부 진료내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의원은 제출된 자료의 전산관리 방식도 지적했다. 전 의원에 따르면 퇴원 후 지원 신청자는 영수증과 진료비 세부내역서를 공단에 제출하지만, 공단은 주상병 1개와 의료기관 1곳만 전산에 입력하고 나머지는 스캔 이미지로 관리한다.
여러 병원의 진료비를 합산해 신청하더라도 전산에는 병원 1곳과 상병 1개만 기록되는 구조다. 전 의원은 이 때문에 비급여 지원 규모와 지원 대상 시술, 특정 병원에서 유사한 신청이 반복되는지 등을 전산으로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 의원은 입원 중 신청과 퇴원 후 신청 모두 진료비 세부내역을 전산으로 입력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 장관은 해당 실태를 보고받았다며 전산 입력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정 장관은 "공단에서 AI OCR을 도입해 스캔 문서를 전산기록으로 전환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검증 중"이라며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공단과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AI OCR은 인공지능을 활용해 문서 이미지 속 문자와 숫자를 인식하고 데이터로 바꾸는 기술이다.
계획된 수술이나 고액 비급여 진료는 지원 전에 공단이 적정성을 확인하는 사전승인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정 장관은 재난적의료비가 사후적으로 본인 소득 대비 의료비 부담을 확인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사전승인제의 실행 가능성을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 의원은 모든 진료에 적용하기 어렵더라도 계획된 수술과 고액 비급여 진료부터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진료비 세부내역 전산화와 사전승인제 도입을 함께 검토해 연내 개선계획을 보고해달라고 요청했다.
정 장관은 개선계획 보고 요구에 응하며 "제도 개선 방안의 하나로 실행 가능성 등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