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 3일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우편투표가 다시 정치 쟁점으로 떠올랐다. 지난 18일 미네소타·버지니아주에서 사전투표가 시작되며 사실상 선거전이 막을 올린 가운데, 투표용지를 실어 나르는 미국우정청(USPS)의 역할도 시험대에 올랐다. 쟁점은 우편투표 허용 여부에 그치지 않는다. 선거일까지 보낸 표를 어떻게 확인할지, 소인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 우정청이 어디까지 선거 과정에 관여할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엘레나 파텔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경제연구 선임연구원(어번-브루킹스 조세정책센터 공동소장)은 지난 7월 발표한 '투표를 배달하다'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USPS는 선거관리기관이 아니라 배달기관"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이 좁은 역할에 여러 압박이 한꺼번에 몰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원칙적으로 USPS는 유권자의 자격을 판단하지도, 투표용지의 유효성을 결정하지도 않는다. 주와 지방 선거당국이 발송한 투표용지를 유권자에게 전달하고, 유권자가 반송한 투표용지를 다시 선관위에 배달하는 운송기관이다. 그러나 우편투표가 미국 선거의 주요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USPS의 역할은 단순한 물류를 넘어 선거 결과의 신뢰와 직결되는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파텔 연구원이 지목한 압박은 네 가지다. 연방대법원 판결로 커진 소인의 법적 비중, 우정청의 물류망 개편, 만성적 재정난,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명령이다. 문제는 이 압박들이 한 방향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우편투표가 미국 선거의 한 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운반자에 불과한 우정청이 사실상 표의 효력을 가르는 자리로 끌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파텔 연구원의 분석이다.
미국외교협회(CFR)의 제임스 린지 선임연구원도 이달 3일 우편투표를 둘러싼 싸움이 중간선거를 교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일부 주에서 투표가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 막판 규칙 변경은 선거 현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우편투표는 팬데믹이 남긴 임시 제도가 아니다. 우정청의 투표용지 배달은 남북전쟁 중이던 1864년 시작됐다. 이후 19세기 후반에는 일이나 질병 등으로 선거일에 투표소에 갈 수 없는 일반 시민에게도 부재자·우편투표가 허용됐다. 국제민주주의선거지원연구소(IDEA)에 따르면 28개 주가 무사유 우편투표를 허용한다. 반대 방향의 움직임도 있다. 2024년 대선은 최소 19개 주가 새로 도입한 우편투표 제한 규정이 처음 적용된 대선이었다.
우편투표가 확대된 배경에는 미국 특유의 선거일 제도도 있다. 미 의회는 1845년 연방 선거일을 11월 첫째 월요일 다음 화요일로 정했다. 농경사회였던 당시에는 추수가 끝나고 겨울이 오기 전인 11월, 일요일 예배와 수요일 장날을 피한 화요일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선거일은 연방 공휴일이 아니다. 비영리 싱크탱크 무브먼트어드밴스먼트프로젝트(MAP)에 따르면 연방법상 투표 시간 보장 의무는 없고, 선거일이 공휴일이면서 유급 투표시간까지 보장하는 주는 5곳뿐이다. 이들 주에 사는 인구는 투표적격인구의 13%에 그친다. 평일에 직장을 비우기 어려운 유권자에게 우편투표가 사실상의 대안이 된 셈이다.
더 큰 차이는 주별 제도에서 나온다. 미국 선거는 연방이 아니라 주가 운영한다. 일부 주는 모든 등록 유권자에게 투표용지를 보내지만, 다른 주는 유권자가 따로 신청해야 하며 특정 사유를 요구하기도 한다. 파텔 연구원은 오리건·워싱턴주에서는 유권자의 95% 이상이 우편으로 투표하지만, 웨스트버지니아·테네시주에서는 그 비율이 3%에도 못 미친다고 분석했다. 8개 주와 워싱턴DC는 등록 유권자 전원에게 투표용지를 보내고, 나머지 지역은 유권자가 따로 신청해야 한다. 사유를 요구하는 곳도 많다. 파텔 연구원은 격차를 만드는 것이 지리가 아니라 제도라고 분석했다. MIT에 따르면 2024년 인구동향조사(CPS) 기준 무사유 부재자투표 주의 우편투표 비율은 평균 22.1%, 사유를 요구하는 주는 5.2%였다.
한편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우편투표 비율은 1996년 7.8%에서 2016년 21%로 올랐고, 2020년 대선에서 43%까지 치솟았다가 2024년 29%로 자리 잡았다. 비율은 내려갔지만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았다. 2024년 대선에서 우정청이 유권자와 선관위 사이를 오가며 운반한 투표용지는 약 9900만 장이다. MIT 선거데이터과학연구소의 '선거성과지수(EPI)'에 따르면 2024년 발송된 우편 투표용지는 2020년보다 26.3% 줄었지만, 회신율은 72%로 2020년(77.8%)과 큰 차이가 없었다. 우편투표를 택한 유권자는 대부분 실제로 이를 썼다는 뜻이다.
정작 문제는 부정표가 아니라 무효표다. UCLA 투표권프로젝트의 분석 '인종적 편향이 우편투표 무효 처리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매 총선마다 전국에서 50만 장이 넘는 우편투표가 무효 처리되며, 연구상 이 중 최소 80%는 적격 유권자의 표다. 박빙 선거에서는 이 무효표가 승패를 가를 수 있다. 2024년 캘리포니아주 연방 하원 13선거구는 187표 차로 승부가 났는데, 서명 누락이나 불일치로 문제 표시가 된 투표용지가 6000장을 넘었다. 2004년 워싱턴주 주지사 선거도 129표 차로 결정됐고, 같은 선거에서 수천 장의 우편투표가 무효 처리됐다.
무효 사유는 대부분 행정적이다. 선거정보 사이트 밸럿피디아(Ballotpedia)에 따르면 2024년 가장 흔한 사유는 서명 불일치로 전체 무효표의 40.7%를 차지했다. 2020년 대비 2024년 우편투표 무효율은 39개 주와 워싱턴DC에서 올랐고 9개 주에서만 내렸다. 캘리포니아주는 2024년 선거에서 우편투표 약 12만2000장을 무효 처리했다. 서던캘리포니아대(USC) 포용민주주의센터 분석에 따르면 이 가운데 59%는 서명 불일치, 27%는 마감 후 발송·도착, 11%는 서명 누락이었다.
지각 표의 책임을 우정청에만 돌리기도 어렵다. 투표용지를 빠르고 항공 운송이 가능한 1종 우편으로 보낼지, 느리고 육로로 가는 마케팅 우편으로 보낼지는 지역 선관위가 고른다. 2020년에는 발송 투표용지의 70% 이상이 마케팅 우편으로 나갔다. 우정청이 협업하는 지역 선관위만 약 8000곳이고, 발송 시점도 제각각이다. 2024년 선거 직전 마지막 주에 발송된 투표용지가 15만630장이었고, 이 중 3만1260장은 선거 당일에 발송됐다.
우편투표의 법적 쟁점은 소인에서 더욱 커졌다. 33개 주는 선거일까지 선관위에 도착한 우편투표만 인정하지만, 17개 주와 워싱턴DC는 선거일까지 소인이 찍혔다면 이후 일정 기간 안에 도착한 표도 인정한다. 연방대법원은 지난 6월 29일 '왓슨 대 공화당전국위원회(RNC)' 사건에서 5대 4로 후자의 손을 들어줬다. 선거일까지 소인이 찍히고 선거 후 5영업일 안에 도착한 투표용지를 집계하도록 한 미시시피주 법이 연방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다수의견을 쓴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유권자의 선택은 투표가 완료될 때 이뤄지는 것이지, 투표용지가 수령될 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선거법 학자 릭 헤이슨 UCLA 로스쿨 교수는 판결을 "유권자의 작은 승리"라고 평가하면서도, 주정부 재량을 앞세운 논리가 애리조나주 시민권 증빙 사건 등 향후 재판에서는 유권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봤다. 판결로 소인은 한 표의 효력을 가르는 증거가 됐다. 2018년 중간선거에서는 늦게 도착했다는 이유로 약 11만4000장이 무효 처리된 것으로 추산된다.
두 번째 압박은 바로 그 소인을 흔드는 우정청 물류망 개편이다. 우정청은 2021년부터 10개년 개편 계획 '미국을 위한 배달(DFA)'에 따라 약 200곳이던 우편 처리 공장을 약 60곳의 권역 센터로 통합했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농촌 우체국의 우편물은 소인을 받기까지 평균 139마일(약 224km), 길게는 500마일(약 805km) 넘게 이동한다. 50마일 넘게 떨어진 우체국은 하루 한 번 오전 발송으로 줄었다. 선거일에 우체통에 넣은 투표용지가 하루 이상 늦게 소인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우정청도 이를 인정했다. 지난해 12월 국내우편매뉴얼에 조항을 신설해 소인 날짜가 우편물 접수일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으며, 망 개편에 따라 불일치가 더 잦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2024년 6월 유타주 아이언카운티 예비선거에서는 수천 장의 투표용지가 마감일 이후 날짜의 소인을 달고 도착해 개표되지 못했다.
올해는 지각 무효가 눈에 띄게 늘었다. 뉴욕타임스(NYT)가 지난달 31일 보도한 12개 주 분석에 따르면 이들 주에서 지난해 총선과 올해 예비선거의 지각 도착 무효율이 올랐다. 미시간주 8월 4일 예비선거에서는 마감(선거일 오후 8시) 이후 도착해 무효 처리된 우편투표가 1만 장을 넘어 2024년의 두 배에 육박했다. 같은 기간 워싱턴주의 지각 도착 우편투표는 약 1만6000장에서 2만 장 이상으로 늘었다. 위스콘신주 봄 예비선거의 지각 무효는 약 5000장으로 전체 무효표의 78%(2023년 47%)를 차지했다. 캘리포니아주 6월 2일 예비선거에서는 무효표 14만8241장 가운데 9만3497장이 기한 내 도착하지 않은 표였다. 무효율(1.7%)은 2014년 이후 가장 높았다.
왓슨 판결의 반대의견을 쓴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도 이 지점을 짚었다. 그는 마지막 수거 시간 이후 우체통에 넣은 투표용지는 어떻게 되는지, 우정청이 발송 우편의 회수를 허용하는데 우체통에 넣은 표를 최종 투표로 볼 수 있는지 물으며 다수의견이 "판도라의 상자를 연다"고 경고했다. 파텔 연구원은 소인의 법적 비중이 어느 때보다 커진 시점에 그 신뢰도는 우정청 스스로의 운영 변화로 어느 때보다 떨어졌다고 평가했다.
세 번째 압박은 재정이다. 우정청은 2007년 이후 한 해도 빠짐없이 적자를 냈다. 2025회계연도 말 보유 현금은 약 82억달러로, 33일가량 운영할 수 있는 규모다. 1992년 이후 그대로인 법정 차입 한도 150억달러에도 이미 도달했다. 데이비드 스타이너 우정청장은 지난 6월 상원에서 "현금이 바닥났다"며 직원 퇴직연금 재원을 끌어다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거철 부담은 더 크다. 2020년 10월부터 11월 초까지 우정청의 운송 횟수는 35%, 초과근무 비용은 30% 늘었다. 하지만 우정청은 모든 주소에 균일 요금으로 배달해야 하는 보편적 서비스 의무를 진다. 민간 물류기업처럼 손실 지역을 포기하거나 선거철 비용을 곧바로 요금에 반영하기 어렵다. 파텔 연구원은 이 보편적 서비스 의무 때문에 우정청이 손실 사업을 접거나 요금을 올릴 수도 없어, 새 의무가 떨어지면 그 비용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마지막 압박은 트럼프 행정부의 행정명령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3월 31일 서명한 행정명령 14399호는 주별 명단에 오르지 않은 유권자에게 우편·부재자 투표용지를 발송하지 못하도록 우정청에 규칙 제정을 지시했다. 명단의 근거는 국토안보부가 사회보장 기록과 연방 이민 데이터베이스 '세이브'로 만드는 주별 '시민권자 명단'이다. 파텔 연구원은 이 구조가 투표 자격 판단이라는 주정부 고유 권한을 연방으로 옮기고, 운반자를 문지기로 바꾸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세이브는 텍사스주 한 카운티에서 시민권자를 비시민권자로 잘못 분류한 비율이 14%에 달했다.
이후 우정청은 8월 21일 최종 규칙을 내놨고, 8월 26일 연방관보에 게재했다. 각 주가 연방 포털로 우편투표 대상자 명단을 제출하고 봉투에 유권자별 바코드를 넣도록 하며, 요건에 맞지 않는 투표용지 우편물은 발송을 거부한다는 내용이다. 규칙은 하급심의 잇단 가처분에 막혔고, 연방대법원은 9월 14일(현지시간) 규칙 시행을 허용해 달라는 정부의 긴급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대의견에는 얼리토·클래런스 토머스 대법관 2명만 이름을 올렸다.
선거 전문매체 볼츠(Bolts)는 이 결정으로 중간선거의 불확실성이 크게 걷혔다면서도, 규칙을 둘러싼 법적 다툼은 2028년 대선까지 이어지고 우편투표 무효표를 늘릴 수 있는 우정청의 별도 정책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고 짚었다. 브렛 캐버노 대법관도 보충의견에서 이번 선거 전에 시행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고 하면서도, 규칙이 우정청의 법적 권한 안에 있을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고 적었다. 현장의 혼란은 이미 비용으로 나타났다. 선거법 추적단체 보팅라이츠랩(VRL)에 따르면 매사추세츠주에서만 새 규칙 기준에 맞지 않는 투표용지 봉투에 300만달러 넘게 들어갔다.
파텔 연구원은 규칙이 수정·철회되거나 무효화되더라도 그 밑의 압박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우정청의 현금 부족은 이어지고, 소인은 여전히 투표용지가 우체통에 들어간 날보다 늦게 찍힐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네 가지 압박을 각각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기관, 하나의 신뢰에 가해지는 부하로 함께 봐야 한다며, 결국 흔들리는 것은 배달부는 투표용지를 판단하지 않고 그저 배달한다는 오래된 전제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