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으로 오라클이 중국 기술기업 텐센트와 체결한 70억달러(약 9조 4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임대 계약을 취소했다.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가 강화되는 가운데 해외 데이터센터를 통한 우회적인 반도체 확보마저 어려워지면서 중국 AI 기업들의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오라클은 트럼프 행정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텐센트와 체결한 반도체 임대 계약을 취소했다. 텐센트는 오라클의 동남아시아 내 여러 데이터센터와 5년간 임대 계약을 체결하고, 데이터센터에서 최대 10만개의 첨단 AI 반도체를 활용할 계획이었다. 계약 규모는 70억달러로 텐센트가 해외에서 체결한 반도체 임대 계약 가운데 최대 규모였다.
계약이 성사될 경우 텐센트는 미국의 수출 규제로 중국 내 사용이 제한된 반도체를 확보할 예정이었다. 텐센트는 전체 계약 금액의 약 30%를 선금으로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계약 무산에는 미국과 중국 양측의 압박이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FT는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들을 인용해 미국 당국자들이 오라클에 텐센트와의 계약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텐센트가 본사를 두고 있는 중국 광동성의 고위 당국자들도 텐센트를 방문해 자국산 반도체 사용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 반도체도 품귀…中에 주문량의 1%만 공급 전망
중국 내 반도체 공급 부족과 미국의 수출 규제 강화로 중국 기업들은 잇따라 해외 우회로 확보에 나섰다. 미국이 제3국을 경유해 첨단 반도체를 중국으로 반입하는 행위까지 제한하면서 해외 데이터센터를 통해 AI 반도체를 임대하는 방식이 주요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오라클 계약 취소 등 해외 데이터센터를 활용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중국은 반도체 임대뿐 아니라 제품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중국 AI·클라우드 기업들이 엔비디아 칩 주문량 600만개 가운데 향후 4개월간 주문량의 약 1%만 공급받게 될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엔비디아가 급증하는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생산량을 늘리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들이 주문한 'RTX Pro 5500'은 미국 수출 규제 대상이 될 만큼 강력한 성능을 갖추지는 않았으나, 중국에서 확보할 수 있는 AI 반도체 가운데 최고 수준에 속한다. 엔비디아는 전 세계적인 생산 능력 부족에 직면하자 오픈AI와 앤트로픽 등 주요 AI 기업들이 사용하는 고성능·고수익 첨단 반도체를 우선 생산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기업들이 주문한 RTX Pro 5500의 공급이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지난 2일 FT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클라우드 컴퓨팅 고객사들에게 AI 서비스 판매량의 최소 51%를 중국이 아닌 고객사에 공급하라고 요구하했다. 이는 중국 기업들이 해외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첨단 반도체에 접근하는 것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미국과 중국이 AI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반도체 공급망 부담이 한층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