뻘속에 잠든 '조군'의 못다이룬 꿈…600년만에 건져 올리다

태안(충남)=김유진 기자
2015.09.12 03:22

[르포]'조선 초기 조운선' 마도4호선 발굴현장을 가다…세금용 곡물 운반 배, 태안 마도해역서 침몰

지난 7일 방문한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수중발굴선인 ‘누리안호’에서 잠수부 2명이 입수 준비를 하고 있다. 누리안호는 충남 태안군 마도 해역에서 지난 4월부터 '마도4호선'의 발굴을 진행 중이다. /사진제공=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 못다 꾼 꿈들이 밤이면 바닷속에서 달빛에 빛나는 곳. 14세기 초 전라도 나주 지역에서 살던 17명의 사내는 이곳 충남 태안군 마도 앞바다에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사내들은 걱정하는 아내와 자식들을 달래고 보름에서 한 달은 족히 걸리는 뱃길에 올라야 했다. 이들이 오른 배는 화폐 대신 세금으로 거둔 곡물과 특산품을 수도 한양으로 운반하는 조선의 배 ‘조운선’. 세금 낼 곡물도 없던 터라 부역을 대신해야 하는 고단한 백성의 운명이었다.

노를 젓는 조군 15명과 관리 2명을 태우고 한양으로 가던 배는 이 마도 해역 ‘난행량’(難行梁)에서 침몰했다. 태안 마도 인근의 난행량은 해수면 바로 아래에 보이지 않는 암초가 많고 물길이 거세 조선에서 험하기로 네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다.

2015년 4월. 이 험한 난행량에 배 한척이 정박했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의 수중발굴선 ‘누리안호’다. 누리안호에는 16명의 잠수사·학예사·선원들이 열흘씩 돌아가며 머문다. ‘마도4호선’ 발굴 작업을 위해서다. 마도4호선은 마도 해역 난행량에서 침몰한 배 중 4번째로 발굴에 착수했다는 의미에서 붙은 이름이다. 작업은 오는 10월말까지 진행된다.

7일 안흥항에서 고무 모터보트를 타고 10여 분을 달리니 커다란 누리안호의 모습이 보였다. 290톤급의 아시아 최초로 건조되는 수중발굴 전용 인양선이다.

발굴 중인 마도4호선은 가로5m, 세로12m에 이르는 조선 초기 조운선이다. ‘나주광흥창’(羅州廣興倉)이라는 문구가 적힌 목관 60여 개와 분청사기 140여점이 발견돼 시대와 행선지를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 선박에 관한 기록을 보고 만든 조운선의 모형도. /사진제공=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 “나이는 32세, 키는 4척. 얼굴에는 털이 있고…”

누리안호에서 발굴 작업을 지휘하는 김병근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이 배에는 최소 17명이 탔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 관리인 색리 1명, 중앙 관원인 정관 1명, 그리고 15명의 조군이 최소 인원이다. 여러 기록에 의하면 조선의 조운선은 평균적으로 15명의 조군들이 노를 저어 움직였다.

조군은 백성들이 가장 피하던 일이었기에 하층민들의 몫이었다. 노동력이 세금의 하나였던 조선 시대, 곡식이나 특산품이 없는 16~60세의 남자 백성들은 국가가 필요로 할 때마다 동원되는 방식으로 납세를 대신했다.

“조군에 소속되면 너무 힘드니까 중간 정박지나 도착지에서 많이들 도망을 갔어요. 관리들이 중간중간 쌀이나 곡식을 팔아서 돈을 챙기고는 심한 경우 배를 통째로 빠트려버리는 일도 많았죠. 일정량 이상의 물건이 없어지면 조군들이 연대 배상책임을 진다는 조항까지 있었어요.” 김 연구관의 설명이다.

조군 개개인에 관한 기록은 전남 영광군에 살던 김범진씨의 집 여닫이문에서 최근 발견됐다. 김씨 부모님이 창살의 바람을 막는 문풍지로 사용했던 것. 아무래도 범상치 않은 문서 같다는 김씨의 신고에 해양연구소에서 실사를 하면서 드러났다.

이렇게 세상에 나온 ‘영광 법성창의 조운 고문서’는 조선 후기 공문서다. 조운선 한 척이 출항할 때마다 그 위에 오르는 물품과 조군들의 인적사항이 기록됐다. “조군 김윤이는 나이는 32세, 키는 4척이었다. 얼굴에는 털이 있고 진량에 거주한다. 아버지는 안 계신다.”

◇ 갑판에서 불 피워 밥 해먹고, 참빗으로 이 쫓아

현재까지 발굴된 유물과 기존 사료에 따르면 조군들은 배 위의 식당인 ‘투식칸’에서 밥을 해 먹었다. 배 위에 열을 차단하는 돌판을 깔고 송진이 있는 단단한 나무로 불을 피워 솥에 밥을 지었다는 것이다. 마도4호선에서는 솥과 검게 그을린 돌판, 숯과 숟가락이 발견됐다.

반찬은 긴 바다 위의 여정에서 썩지 않아야 했기에 주로 젓갈류였다. 김 연구관은 발굴현장에서 멀지 않은 태안보존센터에서 보관 중인 항아리를 가리키며 “투식칸 안에서 발견된 항아리 안에서 생선 뼈가 발견됐다”며 “생선 젓갈을 만들어서 배에 실은 뒤 반찬으로 먹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씻기 힘든 환경 속에서 견디기 위해 조군들이 선택한 해결책은 ‘참빗’이었다. 마도4호선에서는 일반 나무빗 하나와 참빗 하나가 발견됐다. 박용기 잠수팀장(56)은 “참빗은 이 쫓는 용도”라며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을 배 위에서 생활하려면 필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일 방문한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선 ‘누리안호’에서 잠수사가 촬영한 해저 작업현장의 모습. 누리안호는 충남 태안군 마도 해역에서 지난 4월부터 '마도4호선'의 발굴을 진행 중이다. /사진제공=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 뻘은 600년의 세월을 담은 '타임캡슐'

조군의 흔적이 그대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뻘 덕분이다. 뻘 속에 조운선이 빠르게 파묻히면서 공기가 차단돼 공물인 볍씨나 쌀, 콩 같은 유기물까지 보존된 것. 마도4호선에서 발견된 볍씨는 색깔조차 변하지 않고 제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분청사기처럼 유약을 바른 그릇들은 바다에 빠지던 그때 그 모습으로 발굴된다. 박 잠수팀장은 “그릇은 가마에서 갓 꺼낸 것처럼 깨끗한 상태로 나온다”며 “바닷속에 들어가서 뻘 속에 파묻힌 그릇더미를 발견할 때는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조운선뿐만 아니라 마도 해역에는 아직도 셀 수도 없이 많은 배가 묻혀있을 것으로 본다. 발굴 작업이 진행된 배는 마도1~4호선 총 네 척이지만, 고려 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기록된 수많은 문헌에는 한 해에만 수십 척이 이 해역에 침몰했다고 적혀있다.

그 많은 배를 어떻게 다 발굴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김 연구관은 “후대를 위해 남겨놔야 하지 않겠냐”며 웃는다. 지금 인력과 예산으로는 다 할 수도 없다. 마음이야 한 척이라도 더 발굴하고 싶지만, 어찌 보면 수백 년을 묻혀있던 유물을 10년, 20년 늦게 발굴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다.

다만 이들은 현재 발굴에 충실해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하는 것이 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홍광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40)는 “수중발굴의 역사가 길지 않기에 이 분야를 개척해간다는 뿌듯함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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