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파생상품 1세대, 28세에 금융컨설팅-ICT 회사 설립,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의 금융제도 개선 자문, 주요 증권사 해외사업 담당 상무… . ‘잘 나가던’ 금융인이 43세에 사표를 내고 돼지농장 주인이 됐다. 충남 홍성의 농업회사법인 ‘성우’ 대표 이도헌씨이야기다.
16년간 ‘워커홀릭’으로 살았던 그는 2010년 사직서를 냈다. 금융업에서 더는 미래를 찾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새 출발을 하기로 하고 세운 원칙은 세 가지다. △정말 하기 싫은 일은 안 할 것 △성과가 차곡차곡 쌓이는 일을 할 것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 결국 ‘자기사업’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업종 선택 기준도 세웠다. 안정적인 수요기반을 지니고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할 수 있어야 했다. 또 수입시장 개방에 대비한 경쟁력이 있고 진입 장벽이 높아야 했다.
이 모든 원칙이 교집합을 이루는 곳이 바로 ‘양돈업’이었다. 2011년 그는 ‘양돈업 투자자’로 변신했다.
상황은 생각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2012년, 투자한 농장은 부도 직전까지 갔다. 졸지에 직접 경영을 떠맡게 됐다. “사실 농장을 생각하면 다 ‘대관령농장’을 떠올리잖아요. 푸르고 깔끔하고. 그런데 (돼지농장은)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웃음) 처음엔 냄새 때문에 고생을 참 많이 했어요.”
도시에서 자라 해외를 오가며 살았던 그가 농장 일에 쉽게 적응할 리 만무했다. 대신 자신의 경험을 살려 농장경영에 적용해나갔다. 파격적인 인사가 하 예다. 그는 전 직원을 정규직으로 고용했다. 농장의 경영상태를 직원들과 수시로 공유하고 수익의 일정 부분은 직원들에게 성과금으로 지급했다. 또 5년 이상 장기근속자 자녀들의 대학 학비를 농장에서 전액 지급하는 보상체계도 도입했다.
자금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처음으로 빚을 냈다. ‘직원이 회사의 파트너’라는 신념을 고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일 중요한 게 ‘사람’이더라고요. 생산성의 핵심은 직원들이 마음 편히 돼지를 키우는 데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데 있다고 봤어요.”
사람에 대한 투자는 성과로 돌아왔다. 농장은 2년 반 만에 생산, 재무, 인사 등 모든 면에서 정상화됐다.
그에게 ‘제2의 삶’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하자 “고생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하기 싫은 일을 하지 말라”고 했다. 하고 싶은 일을 찾되 ‘자기정체성’과 ‘자기확신’이 있어야 버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직종’이나 ‘직무’에 얽매이지 말고 ‘핵심 역량’을 살릴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대기업에서 회계, 재무 업무를 했다고 중소기업에서 같은 일을 찾으면 안 돼요. 그 사람이 그 일을 잘할 수 있었던 건 숫자감각과 계량화하는 능력 때문이겠죠. 이 핵심역량을 발견하는 순간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확 늘어나요.”
올해로 귀농 4년 차,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더 많다. 그는 최근 ‘나는 돼지농장으로 출근한다’는 책도 냈다.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농장, 에너지 순환과 재생 가능한 생태농장을 만들고 싶어요. 금융기관에서 근무한 경험을 살려 ICT를 활용한 농촌 관리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기도 하고요.” 포부를 밝히는 그의 얼굴엔 희망과 설렘이 교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