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미술계가 한국으로 눈을 돌린다. 우리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중국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는 것은 물론 수집가(컬렉터)의 방문도 큰 폭으로 늘었다. 최근 부진한 홍콩 대신 우리나라가 아시아의 새 미술 거점으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12일 미술계에 따르면 최근 종로구, 강남구 등 서울 일대의 갤러리들에 중화권 미술계 인사의 방문이 크게 늘었다. 삼청동의 한 갤러리는 지난달 중국 남부에서 미술관을 운영하는 컬렉터와 미술품 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최소 십여 점의 조각·회화 등을 판매하는 계약이다. 미술계 관계자는 "최근 두 달이 전시 성수기임을 감안해도 중화권의 우리 미술시장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미술관에도 중국 미술계의 발걸음이 잇따른다. 개관 기념으로 한중 문화교류전을 선보이는 오봉미술관, 중국 장쑤에서 복식예술교류전을 개최하는 사비나미술관, 중국 순회전을 여는 국립현대미술관 등이 대표적이다. 배우 하정우가 오는 30일까지 중국 서안에서 열리는 국제예술교류전에 작품 10점을 공개하기로 한 사실도 미술계에서 화제가 됐다.
중국이 우리 미술 시장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투자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상설 갤러리, 미술전, 경매시장 등에서 팔리는 작품 가격이 다른 국가에 비해 저렴하지만, 세계 무대의 선호도가 꾸준히 오르고 있어 장기적으로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아트바젤의 집계에 따르면 중국 컬렉터들이 가장 선호하는 가격대는 3억~7억원대로, 우리나라 미술품을 충분히 구매할 수 있는 수준이다.
중화권의 미술 거점 홍콩의 부진도 한몫했다. 코로나19 시기를 전후해 홍콩의 미술품 거래 시장이 중국 당국의 규제를 맞으면서 거래액이 쪼그라들자,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잠재력이 높은 한국으로 몰린다는 분석이다. 크리스티와 필립스, 소더비 등에 따르면 올해 홍콩 미술시장의 경매 매출은 8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으며 전세계 미술 경매시장 점유율도 2020년 20%에서 11.9%로 반토막이 났다.
대만이 아시아 최대 미술 시장 중 하나인 당다이 아트페어를 내년 취소하기로 결정하면서 중화권 미술상들의 수요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지난 9월 실시된 중국인 단체관광객 무비자 정책도 미술 교류에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한국 미술 시장의 규모는 전세계 시장의 2% 미만으로 작지만, 최근 활발한 미술 수요를 바탕으로 투자 성과가 나타나는 중"이라고 분석했다.
경쟁 상대는 일본과 싱가포르다. 일본은 문화 경쟁력을 바탕으로 해외 컬렉터들을 끌어들이고 있으며 싱가포르는 동남아 중 가장 구매력이 높다. 지난 9월 개최된 일본의 '도쿄 겐다이' 아트페어는 40여개국 이상의 대형 갤러리들을 확보했다. 인도네시아나 베트남도 호시탐탐 중국 컬렉터를 노리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세계 4위 인구를 바탕으로 한 시장규모가 장점이며, 베트남은 프랑스와의 연결고리가 무기다.
종로구의 한 갤러리 관계자는 "최근 중국 내 우리 미술수요가 급증하면서 구매뿐만 아니라 작품 대여, 교류전 개최, 미술 관람객 유치 등 문의가 큰 폭으로 늘고 있다"며 "장기적으로 우리 미술시장 활성화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