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증시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매도에 나서면서 원/달러 환율이 하루 만에 20원 가까이 급등했다. 달러 강세 기조에 일본 엔화 약세까지 겹치며 원화 약세 압력이 한층 커진 모습이다.
5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오후 3시30분 주간 거래 종가 기준 전 거래일보다 18.8원 오른 1469.0원에 마감했다. 이는 지난달 22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환율 급등의 직접적인 배경은 외국인의 역대 최대 규모 주식 순매도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5조216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이전 최대 기록이었던 지난해 11월(2조8308억원)의 두 배에 가까운 규모다.
외국인은 삼성전자에서만 2조5800억원을, SK하이닉스에서 1조3792억원을 각각 순매도했다. 개인 투자자들이 6조7639억원을 순매수하며 낙폭을 일부 방어했지만 지수 하락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날 코스피는 3.86% 급락했다.
시장에서는 글로벌 기술주 약세 속에서 그간 주가가 크게 오른 반도체 업종을 중심으로 외국인의 차익 실현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외 여건도 원화에 불리하게 작용했다. 미국에서는 강달러 기조가 재확인됐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연방의회에서 강달러 정책 지지 입장을 재차 밝히자 달러화는 주요 통화 대비 강세를 이어갔다. 아시아 시장에서도 달러 인덱스가 반등세를 보이며 원/달러 환율 상승을 자극했다.
여기에 일본 정치 변수에 따른 엔화 약세가 겹쳤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최근 유세에서 엔화 약세가 수출 산업에 도움이 된다고 언급하며 엔저를 사실상 용인하는 발언을 내놨다. 일본 총선을 앞두고 집권 자민당의 압승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재정 확대 기대가 커졌고, 엔화는 달러당 157엔 선을 오르내리며 약세를 지속했다. 엔화와 동조성이 큰 원화도 약세 압력을 함께 받았다.
민경원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뉴욕 증시에서 반도체 업종의 주가가 하락하면서 전반적으로 위험회피 분위기가 조성됐다"며 "외국인의 차익실현이 환율 상승을 야기하는 주된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대(對)한국 관세 인상 절차를 진행 중이라는 소식에 관세 및 대미 투자 관련 불확실성이 재차 불거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거주자 해외주식투자 확대, 수입업체 결제 등 역내 달러 실수요가 대기하고 있다는 점도 환율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