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가 미술학원을 다녀 가계 부담이 컸는데, 농어촌 기본소득이 시작되면 둘째와 셋째도 학원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크게 기대하고 있다."(5인 가구 박해진 씨)
"그동안 장수읍 밖 대형마트로 나가 한꺼번에 장을 보는 경우가 많았다. 농어촌 기본소득을 활용하면 지역 상권이 살아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있다."(장수읍 박경희 씨)
이재명 정부 핵심 농정 과제인 농어촌 기본소득이 첫발을 내 디뎠다. 인구 소멸 위기에 대응하고 사람이 머물 수 있는 농어촌 만들기 차원의 첫 실험이다. 침체된 지역 상권에 활력을 불어넣고 인구 감소세 전환의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전북 장수·순창, 경북 영양군 등 인구 소멸 위기에 놓인 농어촌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26일부터 농어촌 기본소득을 첫 지급했다. 송미령 장관은 이날 장수군을 찾아 제1호 농어촌 기본소득 수령자에게 지역사랑상품권을 직접 전달했다.
정부는 지난해 농어촌 기본소득을 국정과제로 선정한 뒤 시범사업 대상지를 10개 군으로 확정했다. 전북 장수군 등 3개군을 시작으로 27일에는 다른 6개 군(연천·정선·옥천·청양·신안·남해)에서 지급이 이뤄진다. 전남 곡성군은 다음 달 말부터 지급된다.
장수군의 농어촌 기본소득 신청률은 이날 오전 90.5%를 기록했다. 지난달 말 기준 30일 거주요건을 충족한 2만922명 가운데 1만8929명이 신청했다. 선정 전 2만445명이던 장수군 인구는 이후 2만1015명으로 570명 증가했다.
이날 장수군의 분위기는 한껏 들뜬 모습이었다. 장수읍 중심에 자리한 어울림센터 푸드코트에는 지난 달 3개 업체가 새로 문을 열었다.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선정 이후 포착된 상권 변화의 신호다.
필리핀에서 태어나 30년째 장수에 거주 중인 김수경 '마닐라 키친' 대표는 "주민등록이 돼 있고 조건이 맞으면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다"며 "다문화 가정이나 외국인 주민들도 함께 혜택을 받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민들 사이에선 농어촌 기본소득이 가계에 숨통을 틔워줄 것이라는 기대가 번지고 있다. 생필품과 교육비처럼 매달 빠져나가는 고정 지출 부담을 덜 수 있어서다.
2009년 장수군에 정착해 식당을 운영 중인 박해진(41) 씨는 초등학생 자녀 셋을 뒀다. 박 씨는 "아이들이 셋이다 보니 교육비 부담이 적지 않다"며 "기본소득 75만원은 학원비 같은 교육비로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수군 계북면에서 농어촌 민박을 운영하는 김영섭(51) 씨는 4인 가구로 이번 달부터 기본소득 60만원을 받는다. 김 씨는 "아이들 학원비와 가족 식사 생필품 구입 등에 쓸 계획"이라며 "지급 이후 지역 소비가 늘면 숙박 수요도 일부 늘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
다만 면 단위 지역에서는 사용처가 제한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맹점 수가 많지 않아 소비 선택 폭이 좁다는 것이다. 농협과 주유소 사용 한도가 5만원으로 묶여 있는 점도 아쉬움으로 꼽혔다. 장수읍에 거주하는 박경희(55) 씨는 "지류 상품권처럼 시장에서도 자유롭게 쓸 수 있었으면 더 편했을 것"이라며 "어르신들은 카드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아 앞으로 신청 절차가 보다 단순화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부정수급 문제도 남은 과제다. 장수군 천천면 오옥마을의 정민수 청년이장은 "농어촌 기본소득 발표 이후 전입 문의가 크게 늘었다"며 "위장전입 우려가 제기되는 만큼 군·마을조사단이 매일 실거주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고 했다.
농식품부는 '농어촌 기본소득 현장 상황실'을 상시 가동해 실시간으로 애로사항을 점검할 계획이다. 지방정부와 마련한 실거주 기준을 엄격히 확인해 위장전입자에게 기본소득이 지급되지 않도록 관리할 방침이다. 신규 전입자의 경우 신청 이후 90일 이상 실거주가 확인되면 3개월분을 소급 지급한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농어촌 기본소득은 국토 균형 발전과 사람이 머물 수 있는 농어촌을 만들기 위한 정책 실험"이라며 "소멸 위기의 지역이 다시 활력을 되찾고 도약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