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성' 대신 '안보' 선택…정부, 산업 안전망 총력 사수 의지

조규희 기자
2026.03.16 16:15
전국이 영하권의 날씨를 보인 8일 오전 인천 서구 서인천복합화력발전소 굴뚝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2026.01.08. /사진=뉴시스

정부가 에너지 정책의 무게중심을 '지속가능성'에서 '안보'로 전격 이동했다. 자원안보 위기경보를 '주의' 단계로 격상하고 탄소중립 로드맵에 따른 규제마저 일시 유보하며 제조업 사수를 위한 '공급 측면의 총력전'에 돌입했다.

16일 에너지 수급 및 기름값 안정을 위한 당정 협의 결과로 나온 이번 정부 대책은 에너지 정책의 3대 축인 △안보 △형평 △지속가능성 사이의 우선순위를 재설정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변환점으로 읽힌다. 특히 '석탄발전 상한제(80% 제한)'의 일시 중단은 상징적이다. 탄소중립이라는 환경적 가치를 일부 유보하더라도 경제의 혈류인 전력 공급을 안정화해 국가 경제의 펀더멘털을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 표명이다.

원전 이용률 상향 역시 핵심 카드다. 정부는 원전 정비 기간을 탄력적으로 단축해 '가장 저렴한 기저부하'를 최대한 확보할 방침이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현재 전체 25기 원전 중 8기가 정비 등으로 멈춰 있으나 이달 중 고리 2호기와 신월성 1호기가 복귀한다. 이어 5월까지 한빛 6호기, 월성 2호기 등 총 4기가 추가 가동될 예정이다.

정부의 목표는 명확하다. 원전 이용률을 2024년 83.8%, 2025년 84.6%에 이어 역대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려 석탄발전과 함께 전기도매가격(SMP) 하향 안정을 유도하고 민생과 산업계의 요금 부담을 물리적으로 누르겠다는 포석이다.

이번 대책에서 납사(Naphtha) 수급과 산업위기 대응을 전면에 내세운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석유화학 산업의 쌀인 납사는 자동차, 반도체, 가전 등 국내 주력 산업의 필수 원재료다.위기경보 격상과 대응 체계 가동은 현재의 고유가 쇼크가 개별 기업의 인내심을 넘어 구조적 도산 위험에 직면했다는 정부의 엄중한 인식을 반영한다.

과거 위기 때마다 반복됐던 에너지 절약이나 수요 관리 위주의 소극적 대응에서 벗어나 시장에 물리적 물량을 쏟아붓는 방식으로의 정책 패러다임 전환도 눈에 띈다. 실제 국제에너지기구(IEA) 공조를 통한 2246만 배럴의 비축유 방출은 수급 불균형에 대한 직접적인 시장 개입이다. 정부는 지난 아랍에미리트(UAE)와의 원유 공급 확보 사례처럼 중동 국가들과의 추가 협상에도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파격적인 대책만큼 위험 요인도 상존한다. 원전 정비 시기를 무리하게 앞당길 경우, 행정적 편의를 위해 법적 안전 점검 절차가 희생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속도가 안전을 잠식할 경우 발생할 사회적 비용은 가늠하기 어렵다. 석탄발전 가동 확대에 따른 '탄소 부메랑'도 문제다. 배출량 증가는 필연적으로 탄소배출권 가격 급등을 야기하며 이는 결국 발전 원가를 다시 끌어올려 정책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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