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간 공정거래위원회가 독점해 온 '전속고발권'이 수술대에 올랐다. 그간 공정위의 '기업 봐주기'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왔던 전속고발권을 폐지해 기업의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자는 취지다.
다만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무분별한 고발 남용으로 기업들의 경영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단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변호사 선임 등 법적 대응 여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중소기업의 경영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단 우려다.
31일 공정위에 따르면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법 제정과 함께 1980년 도입됐다. 고발 남용과 수사과잉으로 기업활동이 위축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하지만 공정위가 법을 위반한 기업에 행정 제재만 내리고 검찰 고발을 결정하지 않으면 해당 기업은 형사 처벌을 피할 수 있단 지적이 제기됐다. 공정위 전속고발권에 대한 견제장치가 꾸준히 마련된 배경이다. 실제 1996년 검찰을 시작으로 2013년 감사원, 중소벤처기업부, 조달청으로 '고발요청권'이 확대됐다. 이들 기관이 공정위에 기업을 고발해 달라고 '요청'하면 공정위가 지체없이 고발을 해야 하는 권한이다.
그럼에도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계속됐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달 국무회의에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거나 국민에게 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줄곧 전속고발권 폐지에 회의적이었던 공정위가 국민과 기업에 고발권을 주고 4개 부처에만 있던 고발요청권을 사실상 모든 국가기관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들고 나온 이유다.
공정위는 구체적으로 국민과 민간 기업에 고발권을 돌려주는 방안을 제시했다. 공정위 고발이 없더라도 일정 수 이상의 국민이나 사업자가 수사기관에 공정거래 위반 행위와 관련해 직접 고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다. 다만 블랙 컨슈머나 경쟁사업자의 악의적 고발로 기업 활동이 위축될 우려가 있는 만큼,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공정위는 조건으로 국민 300명 이상, 사업자 30개 이상을 제시했다.
현재 검찰 등 4개 기관에만 주어진 고발요청권을 사실상 모든 국가기관에 부여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부·처·청·위원회 등 50개 중앙행정기관은 물론, 17개 광역자치단체와 226개 기초 지방정부 모두에 고발요청권을 준다는 계획이다.
이 대통령은 한 발 더 나아가 지방정부에 고발요청권이 아닌 고발권을 주는 방향도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대통령은 고발요청권 대상을 지방정부 등으로 확대하겠다는 공정위안에 대해 "왜 요청권으로 제한해야 하냐"며 "약간 우회만 하는 것일뿐 모든 고발은 반드시 공정위를 통해서만 해야 한다는 이념이 관철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다만 전속고발권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당장 고발 남용으로 기업들의 경영 활동이 크게 위축될 수 있단 우려가 제기된다.
실제 전속고발권 대상이 되는 공정거래 사건은 살인이나 절도 등 행위 존재만으로 범죄가 성립되는 일반 형사 사건과 성격이 다르다. 검찰 등 사법당국 개입 전 공정위가 경제분석을 통해 시장경쟁 질서에 미치는 영향 등을 확인해 1차적으로 위법성을 판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특히 공정거래법 제재 사건의 경우 통상 기업이 고용한 로펌과 법정에서 다퉈야 하는 등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변호사 선임 등 법적 대응 여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의 경영 부담이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커질 수 있다. 앞서 문재인정부에서 전속고발권 폐지를 추진했을 당시에도 중소기업계는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정부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한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기본적인 개편 취지나 방향은 공감한다"면서도 "일정 수 이상의 국민에 고발권이 부여되면 고발권 남용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중대한 악성 범죄로만 (일반 국민의 고발권을) 제한하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도 "중소기업은 물론 중견기업 중에서도 법무팀이 없는 회사가 많다"며 "제도를 설계할 때 기업들에 또 다른 부담이 안 되도록 세심하게 했으면 좋겠고, 경제단체들과도 긴밀히 소통해줬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조원철 법제처장은 "외국의 경우 거의 대부분 국가가 경쟁당국에 전속고발권을 두고 있는데, 공정위 사건이 단순히 사법적 판단만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근본적 특성이 있기 때문"이라며 "고발권을 전면적으로 풀었을 때는 결국 사법적인 판단 위주로 가기 쉬운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재명 정부의 경제적 제재 합리화 기조와 역행한단 지적도 나온다. 전속고발권을 없애 고발과 형벌을 늘리는 것이 앞서 밝힌 경제 형벌을 줄이고 과징금 등 경제적 제재를 강화하겠다는 정책 기조와 180도 다르다는 지적이다.
주병기 공정위원장은 이같은 부작용 우려에 대해 "행정조사와 수사가 중복돼 발생하는 부작용, 불필요한 혼선과 비효율적인 법 집행이 발생하지 않도록 기관 간 협조체계를 구축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며 "현재 진행 중인 형사사법체계 개편에 맞춰 경쟁법 위반 행위에 대한 법 집행이 가장 효과적으로 이뤄지고 중소기업 등 업계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관계부처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