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오는 12월 국내에서 생산된 금 약 1톤(2000억원 규모)을 매입한다. 13년 만의 실물 금 매입이다. 지정학적 리스크 등에 대응해 안전자산을 늘리기 위한 조치다.
30일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소속 정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은은 국내 생산 금 거래를 위한 제반 전산시스템을 구축해 12월14일 첫 거래를 실시할 계획이다. 약 2000억원 규모로 1톤 내외의 금을 실물로 매입한다.
앞서 한은은 지난 2분기 2억5000만 달러 규모의 금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입해 금 간접투자를 시작했다. 금 현물 매입까지 이뤄지면 직접투자까지 재개하게 된다.
국내 금 생산업체의 수출 예정 물량을 사들이는 방식이 유력하다. 거래 특성상 생산업체의 수출 물량 발생 및 매입 요청에 맞춰 이뤄진다. 특히 외화를 쓰지 않고 원화로 금을 사들일 수 있는 채널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달러 외화 유출 없이 안전자산을 확충할 수 있어 국내 외환시장 변동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현재 한은의 금 보유 규모는 주요국에 비해 크게 작다. 지난 8월 말 기준 한국은행의 금(현물) 보유 규모는 104.4톤으로, 장부가 기준 47억 9000만 달러(외환보유액의 1.1%), 시가 기준으로는 148억 8000만 달러(외환보유액의 3.4%) 수준이다. 원화로 환산한 시가 보유 규모는 약 20조4000억원이다. 세계금협회(WGC) 최신 자료 기준 한국은행의 금 보유 순위는 전 세계 39위에 머물러 있다.
실제 주요국의 금 보유 규모와 비교하면 한은의 보유량은 현저히 작다. 예컨대 미국은 8133톤, 중국은 2346톤, 러시아는 2283톤, 일본은 846톤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올해 상반기에만 각각 40톤, 44톤을 매입했다.
지난 2023년 이후 국제 금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한은의 금 매입 재개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국제 금 가격은 2022년 말 온스당 1824달러(-0.3%)에서 2023년 말 2063달러(+13.1%), 2024년 말 2625달러(+27.2%), 2025년 말 4319달러(+64.6%), 지난 3월 말 4668달러(+8.1%)로 급등세를 이어왔다.
한은은 마지막으로 금을 매입했던 지난 2013년 이후 상대적으로 유동성이 높고 수익률이 양호했던 주식 비중을 늘렸다. 2013년 2분기부터 2026년 1분기까지 선진국 주식지수(MSCI World) 수익률(배당 포함)은 272%로 같은 기간 금 수익률(192%)을 웃돌았다.
한은이 다시 금 매입을 결정한 것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로 안전자산인 금의 전략적 가치가 급격히 커졌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주요국 대비 낮은 수준인 금 비중을 확대함으로써 위기에 대비한 안전자산을 확충하는 한편 다변화 효과를 통해 위험 대비 수익을 제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아울러 국내 생산 금 매입 채널을 확보함으로써 외화를 사용하지 않고 원화로 금을 매입할 수 있게 된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정태호 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외환보유액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주문했는데 한국은행이 13년 만에 실물 금 매입을 재개하기로 한 것은 의미 있는 첫 걸음"이라며 "다만 금 보유 비중이 외환보유액의 3.4%, 세계 39위에 그치는 만큼 한은이 다변화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