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의 보컬은 누구인가?’
사람들마다 각자의 취향이 다르기에 일률적으로 가수의 순위를 정하는 건 무의미하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는 노래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지속될 화두다. 오죽하면 조선시대에도 8명창, 5명창처럼 특히 소리를 잘하는 사람들을 꼽아 기록으로 남기기까지 했을까.
당연히 대중음악사에도 최고의 보컬로 이름을 남긴 가수들이 숱하게 존재한다. 멀리는 현인이나 배호 등이 자주 거론되고 70~80년대 이후로는 임재범, 조용필, 이승철, 김현식 등이 큰 지지를 받곤 한다. 실제로 이들은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보컬을 선정하는 각종 설문조사에서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름이다.
그리고 2000년대 이후부터는 그 유명한 김나박이가 등장한다. 김범수, 나얼, 박효신, 이수를 뜻하는 김나박이는 커뮤니티 사이트 디씨인사이드에서 당시 대한민국 최고의 보컬을 뽑는다는 명목 하에 나름대로의 치열한 토론을 거쳐 도출한 결과이다. 최초에는 대한민국 3대 R&B 보컬로 김범수, 나얼, 박효신을 선정한 것이었으나 이후 용어가 활성화되고 범위도 확대되면서 이수까지 포함된 김나박이가 대한민국 최고의 보컬을 가리키는 하나의 단어로 정착하게 됐다.
사실 김나박이의 선정기준이나 과정에 대해서 여러 가지 비판도 있긴 하지만 이들 4인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최고수준의 가창력을 지닌 가수라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이들은 여전히 가요계를 대표하는 보컬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다.
문제는 이 ‘여전히’ 부분이다. 김범수와 나얼, 박효신은 1999년에 이수는 2000년에 각각 데뷔했으며, 이들이 김나박이로 한데 묶이기 시작한 것은 2007~2010년 시기이다. 즉 이들 4인의 데뷔로부터는 20년이 넘게, 김나박이라는 명칭이 등장한 이후로부터는 10년이 넘도록 이들을 대체할 만한 보컬리스트가 등장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이들 4인은 예나 지금이나 의심의 여지가 없는 최고 수준의 보컬들이고, ‘김나박이’라는 용어도 기가 막히게 입에 착 달라붙어 익숙해져버리기도 했지만, 이 정도로 시간이 지났으면 새로운 물결이 필요한 시기가 됐다.
현재 가요계에서 김나박이의 후계자라고 부를 만한, 혹은 이들을 대신할만한 가능성을 지닌 보컬들을 필자 주관적으로 꼽아보았다.
#하현우=많은 사람들이 예상했겠지만 첫 번째는 하현우다. ‘나는 가수다’, ‘복면가왕’ 등을 통해 압도적인 가창력과 무대매너로 센세이셔널을 일으킨 하현우는 이미 일부 팬에게는 ‘김나박이하’라고 불리며, 김나박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보컬로 인정받고 있다.
최저 -1옥타브 라에서 최고 3옥타브 시를 넘나드는 압도적인 음역대는 하현우의 트레이드 마크로, 김연우가 현재 가요계에서 가장 고음을 잘 내는 남자 가수로 꼽기도 했다.
다만, 아직 자신의 곡으로 대중적인 히트를 기록한 적이 없고, 현재 가요계에서 선호되지 않는 록 장르가 기반이라는 점은 하현우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이 해소되면 김나박이와 완벽한 세대교체를 이뤄낼 가장 유력한 후보다. (※사족으로 하현우가 데뷔는 늦었지만 나이는 이수, 박효신과 동갑이기에 ‘세대교체’라고 하기 어색한 점이 있긴 하다.)
#폴킴=폴킴은 여러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박효신의 후계자로 종종 지목되고 있다. 폴킴 역시 좋아하는 가수로 박효신을 꼽고 있으며, 폴킴 특유의 풍성한 음색과 탁월한 가성 등은 박효신의 그것과 상당히 닮아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더불어 ‘너를 만나’, ‘비’, ‘모든 날, 모든 순간’(*‘키스 먼저 할까요?’ OST) 등 메가 히트곡을 보유 하고 있다는 점도 폴킴이 ‘新 보컬 4대 천왕’에 포함될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되고 있다.
하지만 진성으로 낼 수 있는 고음이 높지 않아 박효신에 비해 소화할 수 있는 음역대가 부족한 점은 앞으로 폴킴이 풀어야할 숙제다.
#허각=군복무 당시 K2 김성면을 좋아하던 후임병은 “김성면은 라이브에서 바이브레이션의 떨리는 횟수까지 똑같이 맞추는 진정한 노래쟁이”라고 말하곤 했다.
김범수 역시 ‘바이브레이션의 횟수까지 맞춘다’는 표현 딱 어울릴 정도로 교과서적, 정석적인 보컬로 유명하다. 언제, 어디서, 어떤 노래를 들어도 늘 동일한 결과치를 도출하는 ‘노래머신’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리고 김범수 이후로 가요계에서 가장 정석적이고 교과서적인 보컬을 보여주는 가수로는 단연 허각이 꼽힌다. 실제 허각은 ‘슈퍼스타K’ 출연당시 심사위원에게 ‘가장 교과서적인 가창으로 발라드를 부르는 도전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물론 허각도 벌써 10년이 넘게 활동하고 있으며, 그 사이 여러 가지 장르에 도전하여 많은 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래도 허각을 대표하는 장르는 발라드이며, 발라드를 부를 때 가장 그의 장점이 드러나는 편이다.
문제는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슈퍼스타K’의 드라마틱한 우승이나 발매하는 음원이 매번 상위권 성적을 기록하고 있긴 하지만, ‘메가’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압도적인 히트곡이나 대표곡을 꼽기 어려운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마치 알버트 푸홀스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 시절 매시즌 최상위권 성적을 내도 ‘발전이 없다’라고 비판받았던 것과 비슷한 상황. 하지만 이는 반대로 허각의 커리어를 대표할 수 있는 메가 히트곡이 탄생하면, 반박의 여지가 없는 최고의 보컬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뜻이기에 그 성사여부를 지켜볼만하다.
#리누=리누는 앞서 언급한 보컬들에 비해 현저히 인지도나 이름값이 떨어지지만, 이번 칼럼을 쓰게 만든 계기가 된 가수다.
20년차 무명가수이자 보컬 유튜버로 활동중인 리누는 지난달 29일 종영한 MBN ‘보이스킹’에서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최종 우승의 영예를 차지했다.
단순히 ‘쟁쟁한 경쟁자’라고 표현했지만 리누가 결승전에서 겨룬 상대들을 살펴보면 깜짝 놀랄 이름들이 많다. 실제 ‘보이스킹’의 결승전에는 리누를 포함해 구본수, 김동명, 김종서, 박강성, 아일, 이광호, 조장혁, 최정철, 환희 등이 진출했으며, 김종서, 박강성, 조장혁, 환희 등은 레전드의 반열에 오른 가수들이다. 또 김동명은 부활의 보컬 출신이며, 아일은 ‘슈퍼밴드’의 우승팀 보컬, 구본수는 ‘팬텀싱어’에서 숱한 레전드 무대를 만들어낸 실력자이다. 이광호, 최정철 역시 매번 빼어난 무대를 선보여온 다크호스였다.이처럼 쉽지 않은 상대와의 경쟁에서도 리누는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결국 우승을 거머쥐며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사실 리누의 무대가 우승보다 더 흥미로웠던 점은 그의 특유의 음색 때문이었다. 안정적인 고음과 더불어 리누 특유의 살짝 젖은 듯한 음색은 어딘지 모르게 나얼을 떠올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 이 감상은 자연스럽게 나얼의 후계자, 김나박이의 대체자를 생각해보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물론 이는 필자 개인적인 감상에 그치는 것일 수도 있고, ‘보이스킹’ 우승 외에 아직 이렇다 할 커리어가 없는 리누를 나얼과 직접 비교하기는 이른 감은 있다. 하지만 김나박이 역시 무명시절을 거쳤고, 그 당시에는 누구도 이들이 이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할 보컬리스트가 될 것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능성’이란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리누는 ‘보이스킹’의 우승으로 그 확률을 더욱 높이는데 성공했다. 이후 그의 행보를 주목할 만한 이유가 된다.
게임 ‘오버워치’에 등장하는 캐릭터 트레이서는 “새로운 영웅은 언제나 환영이야”라고 말했다. 가요계 역시 마찬가지다. 새로운 보컬 영웅은 언제나 환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