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다섯 스물하나'(극본 권도은, 연출 정지현 김승호)에서 90년대 IMF 당시 서울 중심가의 청춘들은 시대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각자만의 빛을 발산하며 살아간다. 펜싱을 사랑하는 나희도(김태리)는 "재능없다" 소리를 하는 선생과 엄마의 모진 말에도 포기하지 않고 결국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내고, IMF로 집안이 망한 백이진(남주혁)은 친동생도 모른체하던 행색으로 살아가다가 결국 최초의 방송국 고졸 출신 기자가 된다.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IMF라는 지독한 시대상을 들이밀면서도, 시련과 희망을 적절히 버무려내며 끝무렵에는 늘 기분좋은 뒷맛을 낸다. 그 결과 시청자에게 청춘의 단상을 '시대에 무너지지 않는 절대적 긍정적 가치'로 느껴지게 한다.
90년대 배경이 주효하지만 본 작품은 두 시대를 오간다. 90년대와 코로나19가 창궐한 오늘날.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이 두 시대를 희도라는 캐릭터로 오고가며 그의 딸 김민채(최명빈)의 시선으로 과거를 회상해낸다. 이 드라마가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인 대사의 말맛만큼이나, 두 시점을 오가며 희도의 남편이자 민채의 아빠를 찾는 것도 시청자들의 또 다른 재밋거리다. 일명 민채 아빠찾기다. 전개 방식이 흡사 tvN의 흥행작 '응답하라' 시리즈와 비슷하다. 허나 신예를 발굴했던 '응답하라'와 달리,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이미 몸집 큰 주연배우들을 데려다가 더한 응집력을 보여준다. 일명 '작감배'(작가, 감독, 배우)의 프로페셔널한 능률이 100% 발휘된 드라마다.
김은숙 작가 밑에서 글을 배우며 2019년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로 입봉한 권도은 작가는 첫 집필작으로 수많은 드라마 폐인을 양산했을 만큼 필력이 남달랐다. 여자 세 명의 연대와 갈등을 그리면서도 욕망이 파멸로 치닫는 남성 누아르의 전형을 따르지 않았다. 포털 간부까지 올라선 여성들의 각 욕망 섞인 딜레마 속에서도 정의와 사회에 대한 고민을 주효하게 품으며 여성의 존엄성을 깊이있게 다뤘다. 그런 권 작가의 입봉작을 연출했던 정지현 감독은 이후 '너는 나의 봄' '더 킹 : 영원의 군주'를 지나 로맨스물에 있어 더욱 탄탄한 연출력을 갖추게 됐다.
두 사람은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로 첫 메인 제작진으로서 넘치는 의욕과 열정을 보여줬다면, '스물다섯 스물하나'으론 전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춘 사려와 깊이를 보여준다. 모든 장면에 힘을 주며 큰 소리로 메시지를 전하려했던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때와 달리,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뜨겁지만 달뜨지 않는 정돈됨으로 메시지를 전한다.
타이틀롤인 김태리와 남주혁은 역시나 발군의 연기를 보여준다. 데뷔 초창기 '박찬욱을 사로잡은 괴물 신예'란 타이틀처럼 김태리가 내고 짓는 대사와 표정들은 '명랑 끝판왕' 희도 그 자체다. 남주혁은 어느 때보다 극 안에서 완전해 보인다. 눈빛 하나로 여러 감정을 중첩시키며 주효한 몰입감을 형성한다. 여성팬들의 마음을 뺏은 죄로 '유죄인간'이라는 애칭도 붙었다. 닮은 구석 하나 없는 두 배우는 연기력 하나로 최상의 케미스트리를 만들어낸다.
이에 더해 희도의 펜싱 라이벌 고유림 역의 보나와 만년꼴찌이지만 '인싸'인 문지웅 역의 최현욱, 전교 1등이면서 정의감 가득한 지승완 역의 이주명은 이 작품의 푸르름을 더 짙게 한다. 허튼 캐릭터 하나 없이 좋은 앙상블의 힘을 보여준다.
총 16부작인 이 드라마는 어느덧 10회까지 방송됐다. 벌써 후반부에 접어든 셈이다. 펜싱을 열망했던 희도는 마침내 금메달을 따내며 꿈을 이뤘고, 위태롭던 이진은 벼랑 끝에 놓인 한자락의 희망으로 꿈을 찾았다. 유림은 책임감이 되어버린 꿈을 다시 꾸게 됐다. 뭉게뭉게한 꿈 사이로 그려낸 희도와 이진의 몽글몽글한 사랑은 이진이 "사랑하고 있다"고 우회하지 않고 고백함으로써 러브라인에 완전함을 피어냈다. 결말에 다다른 이 작품에 건넬 말은 하나뿐이다. 마지막까지 지금과 같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