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호가 '개버지'로 불리는 이유

신윤재(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2.08.29 09:37
사진제공=부산코미디페스티벌 조직위원회

‘개버지’. 개그맨 김준호를 그의 후배들이 일컫는 말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희극은 많은 불세출의 스타를 키워냈다. 멀게는 구봉서, 배삼룡, 송해, 서영춘에서 가깝게는 유튜브 스타인 곽범, 이창호, 김원훈, 오진세, 엄지윤 등 많은 희극인들이 있었지만 ‘아버지(개버지는 개그맨들의 아버지를 뜻한다)’를 품고 있는 별칭을 가진 개그맨은 없었다. 김준호는 대한민국 개그사 100년에 이루지 못할 족적을 만들었다.

이 표현이 너무 나간 것 같고, 터무니없을 것 같다고? 일단 하나 하나, ‘개그맨들의 아버지’가 한 일을 살펴보기로 하자. 그는 우선 1996년 SBS 5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해 1999년 KBS 14기 특채로 다시 입사했다. 당시 KBS에는 새로운 개그의 바람이 불고 있었다. 따분한 스튜디오 개그를 벗어나 대학로 공연장의 활력을 그대로 가져오자는 취지로 시작된 ‘개그콘서트’. 그는 1000회를 넘겨 방송된 ‘개그콘서트’에서 797회 출연으로 최다 출연 기록을 갖고 있다. 단순히 누군가에게 얹혀가는 전술로는 이 같은 성과를 달성할 수 없다. 그는 20년 가까이 총성없는 개그 전쟁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넓혔다.

김준호는 또한 개그전문 매니지먼트 업체의 CEO이기도 했다. 그가 2011년 설립한 코코엔터테인먼트는 한때 60~70명의 개그맨이 소속돼 있던 대한민국 최대의 개그전문 매니지먼트 업체였다. 잘 나간 이들만 있는 회사는 아니었다. 그는 항상 ‘개그콘서트’의 냉정한 경쟁에서 튕겨나온 후배들에게 손을 내밀었으며 대소사를 챙기고, 자신이 받은 수익을 기꺼이 나눠주기도 했다. 이러한 기조는 현재 기획사 JDB엔터테인먼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쩌면 대한민국 개그계에 가장 큰 기여를 한 부분은 뭐니뭐니 해도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이하 부코페)을 조직한 일일 테다. 2012년 일본의 개그 전문회사 요시모토흥업과 함께 한 한일코미디페스티벌이 호응을 얻자 2013년 부산시와 함께 부코페를 조직했다. 사실 초반은 내일 모레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부산시의 도움과 스폰서를 통해 충당한 경비는 단 몇 억원에 불과했고, 3년 이후 부산시의 지원은 불투명했다. 하지만 이제 페스티벌은 10회를 찍었고 14개국 76개팀이 참여하는 아시아 최대의 코미디페스티벌이 됐다.

그 누구도 김준호에게 이 책무를 떠넘긴 적이 없던 페스티벌이었다. 영화를 전공해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작품을 동경했던 그에게 그 훨씬 이전부터 영화의 전당을 걷는 영화배우들의 레드카펫은 흠모의 대상이었던 듯하다. 그는 푸른 부산 바다를 형상화한 ‘블루카펫’을 창제했고 거기에 이전 원로 코미디언부터 신인들까지 1년에 한 번 축제의 흥을 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8월에 훨씬 앞선 6개월 전부터 부산을 수시로 오가는 일정은 물론이다. 그는 현재 부산 기장에서 준공이 계획되고 있는 코미디전용극장의 완공을 계기로 페스티벌 제2의 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제공=부산코미디페스티벌 조직위원회

물론 그가 각종 시시비비 또는 논란에 휩싸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첫 번째 결혼은 쓰린 추억만을 남기며 마무리됐고, 원정도박 사건은 큰 오점이 됐다. 이후로도 ‘1박2일’ 멤버들과 함께 내기골프를 쳤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수시로 하차와 자숙, 복귀를 거듭해야 했다. 하지만 현재 안착한 SBS 예능 ‘미운 우리 새끼’와 ‘신발벗고 돌싱포맨’에서의 입지는 안정적이며, 선후배 사이였던 때부터 진심을 알아봤던 후배 개그우먼 김지민과는 공개열애에도 성공했다.

늘 김준호를 따라다니는 키워드는 ‘고집’과 ‘탈권위’ 그리고 ‘실행력’ 등이다. 그는 지금까지 상황으로 웃음을 주는 ‘콩트’ 스타일의 개그를 유지했으며 늘 보스지만 어딘가 부족하고 부하들의 하극상에도 시달리는 권력을 연기했다. 좀비 연기는 그중에서도 그의 ‘개그 고집’을 보이는 대표적인 콘텐츠다. 지난 ‘개승자’에서도 그는 이러한 코드를 놓지 않았으며, 세계시장을 위해서도 자신이 지켜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탈권위는 기수문화, 서열문화에 비롯된 후진적인 군기가 횡행했던 개그계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는 마중물과 같았다. 그와 김대희, 박성호 등이 이끄는 ‘개그콘서트’는 과거 선배들의 강압적인 문화에서 벗어나고자 애를 썼고, 많은 후배들이 자발적으로 그를 따르게 하는 원인이었다. 자숙을 하느라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도 후배들은 각종 시상식을 통해 그를 응원하고, 지지했으며 그의 예전 회사가 대표의 횡령으로 폐업을 하는 상황이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이탈을 하지 않고 그의 새 보금자리로 모두 터를 옮겼다.

실행력은 단연 김준호를 ‘개버지’로 올려준 계기가 됐다. 그는 끊임없이 뭔가를 기획하고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한다. 결국 이러한 호기심과 실행력이 개그전문 매니지먼트 그리고 부코페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그는 현재 8개국을 모아 ‘국제코미디페스티벌협회’도 출범시켰다. 스위스 몽트뢰 페스티벌을 비롯해 ‘세계 3대 코미디페스티벌’로 불리는 호주 멜버른 페스티벌의 가입도 목전에 뒀다. 그가 한국의 ‘개버지’를 넘어 세계의 ‘개버지’가 될 날도 언젠가 그려볼 수 있는 미래가 됐다.

처음 그가 ‘개그콘서트’ 무대에서 반짝이 의상을 입고 유동근 성대모사를 할 때, 그가 지금처럼 큰 입지를 갖게 될 줄은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개그는 소재가 예상이 충분했지만 오래 끄는 끈기가 있었고, 실행력은 입에서만 그치지 않고 발품을 파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그를 통해 그리는 세상에 대한 꿈의 크기가 다른 이들을 압도했다. ‘개버지’ 김준호가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 개그, 웃음과 유머가 사라지는 현재 상황에서 그에게 감사할 날이 반드시 한 번은 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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