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지효가 다시 한번 무겁고 진지한 얼굴로 돌아왔다. 영화 '구원자’(감독 신준)에서다. 그는 작품에서 신앙과 욕망, 구원과 저주 사이를 오가는 인물 선희를 연기한다. 밝고 유쾌한 이미지로 기억되는 배우지만, 작품에서만큼은 절제된 감정으로 인간의 본능을 마주한다. 한동안 말을 고르던 그는 "이번엔 마음이 쉽게 놓이지 않더라"고 했다.
그는 '구원자'의 시나리오를 읽고서 예상보다 깊은 공포와 묵직한 여운에 끌렸다고 했다. 단순히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는 오컬트물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과 선택의 결과를 정면으로 묻는 이야기라는 점이 흥미로웠다는 것이다.
"처음엔 단순히 무서운 영화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다 보니 점점 사람에 관한 이야기더라고요. '대가가 있는 소원을 받겠느냐'는 질문이 너무 강하게 남았어요. 관객이 스스로에게 묻게 만드는 작품이라 저도 끝까지 여운이 남았어요."
송지효는 평소에도 오컬트와 미스터리 장르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다만 '구원자'는 초자연적 공포 대신 인간의 감정선에 초점을 맞춘 점이 달랐다. 사건과 인과관계로 엮인 서사를 좋아한다는 그는 이번 작품이 "결국 사람의 이야기로 귀결되는 오컬트"라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저는 오컬트 장르를 좋아해요. '유전'처럼 강렬한 결과를 보여주는 영화도 좋지만 '구원자'는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감정의 흐름을 다뤄서 재밌었어요. '내가 저 상황에 놓인다면 어떻게 할까' 그런 대입을 하게 만드는 게 좋았죠."
선희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송지효는 잃는 사람의 감정을 깊게 들여다봤다. 그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의 처절함에 더 공감한다"며 결핍에서 비롯한 인간의 욕망을 인물의 핵심으로 삼았다. 선희가 신앙에 기대 살다가 믿음의 대상을 바꿔 가는 과정, 그 미세한 감정의 이동을 가장 섬세하게 표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선희는 부족함 없이 살던 사람이 불의의 사고로 모든 걸 잃어요. 처음엔 신앙에 의지하지만 점점 다른 욕망으로 옮겨가죠. 그 변화의 과정을 세밀하게 그리고 싶었어요. 모자란 게 생겼을 때 채우고 싶은 마음, 그게 결국 인간의 본심 같았어요."
선희의 시각적 표현에도 세심한 고민이 있었다. 극 중 그는 교통사고로 앞이 거의 보이지 않지만 지팡이를 쓰지 않는다. 송지효는 그 설정에 자신만의 해석을 더했다. 그는 "선희는 눈이 완전히 안 보이는 설정은 아니다. 돋보기로 버티다가 점점 시야가 흐려진다. 그래서 지팡이보다는 티 내지 않으려는 몸짓을 선택했다. 기적이든 믿음이든 무언가에 의지하면서도 여전히 버티고 싶어 하는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야의 불편함을 체감하기 위해 진짜 돋보기안경을 착용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이 오히려 연기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안경 도수를 높여서 썼어요. 측면에서 찍을 때도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두께를 일부러 더 줬죠. 그런데 정말 안 보이더라고요. 거리감이 사라지니까 자꾸 손으로 더듬게 되고 저절로 극 중 남편인 영범(김병철)을 부르며 의지하게 되더라고요. 덕분에 실제로 보이지 않는 사람의 조심스러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어요."
송지효는 작품처럼 누군가 소원을 들어준다면 "받고 싶을 것"이라고 했지만 "다만 그 대가가 뭔지 모른다면 절대 못 받을 것 같다. 결국 원망하게 될 테니까. 내 노력과 능력으로 살아가고 싶다. 지금 만족으로 나중에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영화에서 남편으로 호흡한 김병철에 대해서도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송지효는 "김병철 선배는 스펀지처럼 모든 걸 흡수하는 분"이라며 그를 "묵직하면서도 섬세한 파트너"라고 표현했다. 즉흥적인 감정 폭발이 많은 자신의 연기 스타일과 달리 김병철은 조용히 분석하고 묻는 방식으로 현장의 중심을 잡아줬다고 했다.
"김병철 선배는 정말 팔색조 같아요. 저는 감정이 오르면 바로 표현하는 편인데 선배님은 늘 '왜 그렇게 느꼈는지 이야기해 볼래?'라고 물어보셨어요. 그 한마디가 저를 안정시켰고 현장 분위기도 훨씬 편안해졌죠. 오래된 부부처럼 믿음이 생기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연기에 대한 의미를 묻자 송지효는 주저 없이 "꾸준히 마음이 가는 작품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예능 '런닝맨' 역시 그에게는 하나의 소중한 작품이라고 했다.
"'런닝맨'은 제게 좋은 시간을 줬어요. 힘든 시절을 이겨내게 해줬고 대중에 저라는 사람을 긍정적으로 봐주게 만든 작품이기도 했죠. '여고괴담'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해서 예전엔 어둡고 무거운 역할이 많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나도 밝은 걸 할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안 봐줄까' 싶었죠. '런닝맨' 덕분에 제 안의 밝음이 보여졌고 그게 작품으로도 이어졌어요."
어떤 배우로 기억되고 싶냐는 질문에는 "예전부터 같은 말을 해왔다"고 했다. 신인 시절부터 늘 "어떤 옷이든 잘 어울리는 배우, 도화지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해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구원자'를 통해 그 생각에 작은 변화를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배우라면 누구나 '연기 잘한다' '그 캐릭터랑 찰떡이다'라는 말을 듣고 싶잖아요. 저도 그래요.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깨달았어요. 내가 원하는 옷과 나에게 어울리는 옷은 다르다는걸요. 저는 사실 김히어라가 연기한 춘서 역이 더 끌렸는데 감독님은 선희가 저와 더 어울린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완성본을 보고 나니까 조금 알겠더라고요. 내가 입고 싶은 옷보다 나에게 맞는 옷을 진심으로 소화하는 게 배우의 일이라는 걸요."
한편, '구원자'는 11월 5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