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은 한국인에겐 무의식의 암호다. 거기엔 한(恨)이란 것이 서려 있고, 억울과 슬픔의 한은 종종 한(韓)민족의 공통 정서로 여겨진다. BTS는 왜 저 ‘아리랑’을 복귀작 제목으로 삼았을까. BTS팝이 곧 K-팝을 의미한다는 상징으로서? 아니면 국방 의무를 다한 끝에 자연스레 도출된 애국형 마케팅의 일환일까. 어쩌면 ‘IDOL’의 선례에 이은 또 한 차례 순수 에스닉 차원의 시도일지도 모른다.(앨범 커버의 붉은색 문양도 태극기의 건곤감리를 응용한 것이다.) 펼쳐놓고 보니 사실로서 대입하기엔 셋 다 단순한 면이 있다. 그럼 이건 어떤가. ‘우린 한국의 자식’이라는 걸 알려 국내 아미들의 자부심을 끌어올리는 동시에, 해외 아미들에겐 자신들의 출신 국가를 새삼 강조하면서 이국적인 매력을 유지해 내는 일석이조의 전략.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있는 광화문 광장에서 컴백 콘서트를 기획한 것도 다 그런 민족적 감성, 국내외 팬들의 자긍심을 출신국의 전통적 권위에서 끌어올리기 위함의 연장선으로 나에겐 보였다. 저들이 취한 ‘아리랑’의 표면적 가치는 딱 저 정도일 듯싶다. ‘국뽕’이라며 비뚤어진 시선으로 볼 것도 아니고, 민족주의에 젖어 순진하게 우러러볼 일도 아니겠다. 지금 BTS의 위치라면 충분히 시도해 볼 만한 콘셉트요 이벤트였다. 문제는 그걸 얼마나 잘 풀어냈느냐겠지만.
다만 그런 건 있다. 앨범 자체는 가장 한국적인 제목을 달고 있으면서 정작 그 내용물은 글로벌 팝 트렌드를 철저히 따르고 있는 것. 게다가 가사도 영어 쪽으로 더 기운 사실. 그건 조금 갸우뚱하게 되는 부분이다. 이는 마치 케이(Korea)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그 케이를 지워내야 더 멀리 뻗어나갈 수 있는 K-팝의 딜레마를 역으로 상기시키는 듯도 하다. 그래서인가. 다양한 얼터너티브 장르들에 가장 차분한 힙합의 변종인 트랩과 트립합, 저지 클럽과 그런지 록, 로파이 사운드를 버무린 것에 아리랑을 붙인 이 이질적인 공존은 결과적으로 서로를 더 부각하는데, 이러한 차이의 수용이 듣는 이들을 납득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에서 앨범 ‘아리랑’의 운명은 갈릴 것으로 보인다. 현지화란 세계화와 지역화의 상호작용이라는 말이 맞다면 BTS의 이번 기획은 저 말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 과연 스페인어 앨범으로 그래미 3관왕을 차지한 배드 버니의 영광이 BTS에게도 적용될 수 있을까. 결과는 두고 보면 될 일이다.
무엇을 예상했든 BTS의 신작은 비우는 것에 가깝다. 뛰기보단 걷기, 급류보단 저류, 맥시멈보단 미니멀이다. 아울러 ‘Hooligan’과 ‘2.0’이 앞장선 실험성은 대한민국 국보 제29호인 성덕대왕신종으로 존 케이지의 ‘4분 33초’에 버금가는 침묵의 가치를 사유한 ‘No. 29’에서 조용히 정점을 찍는다. 여기에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가장 유명한 곡 구절을 노랫말에 섞은 ‘FYA’를 둘러싼 808 베이스의 초저역대 서스펜스는 30대를 통과 중인 이들의 진화와 성숙을 여지없이 환기시킨다. 후반부에 꽹과리 같은 우리네 타악기와 ‘아리랑’을 직접 인용한 ‘Body to Body’ 정도를 빼면 마지막 곡 ‘Into the Sun’까지 앨범은 저토록 묵직하고 정적인 기운을 웬만하면 유지한다. 거기엔 멤버들의 역할이 섬세하게 분배된 ‘SWIM’의 뮤직비디오가 보여주듯 앞으로 행보가 결부된 그룹의 다짐과 의지, 겪어온 감정, 겸손과 스웨그의 병존, 긍정과 위로의 온기, 자유와 성실의 소중함도 켜켜이 쌓여있다.
이번 BTS의 다섯 번째 앨범은 기합에 가까운 구호("헛 둘")와 한국적인 습성, 한국의 문화, 인물, 방언을 가사에 두루 심은 ‘Aliens’, 테임 임팔라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할 케빈 파커가 참여한 ’Merry Go Round’가 대표하듯 늘 그룹의 정체성으로 기능해 온 힙합과 ‘화양연화’ 시리즈를 거쳐 ‘WINGS’에서 본격 날개를 편 팝적인 면모가 당대의 유행을 끌어안은 채 질기게 어울리면서 향후 이 보이 밴드가 나아갈 음악 방향을 들려준다. 그래미를 거머쥔 프로듀서들 또는 비욘세, 켄드릭 라마, 비요크 등 거물들과 작업한 프로듀서들의 가세는 물론, 6번 트랙 ‘Interlude’를 뺀 모든 곡에 참여한 RM을 비롯해 트랙들에 고루 기여한 멤버들의 역량도 그래서 케이팝의 세계화 및 현지화를 고민해 온 방시혁 의장의 로드맵이 어디까지 진행됐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정리하자면 그것은 글로벌 트렌드와 그 트렌드를 만들어낸 이들과의 협력, 그리고 멤버들의 성장과 참여가 삼위일체를 이룬 곳에서 향하게 될 더 큰 무엇이리란 짐작이다. 이번 앨범에 담긴 음악이 벌써부터 좁지 않은 호불호의 간극을 보이고 있다는 건 그런 BTS/하이브가 그리는 미래와 일반 대중이 생각하는 미래가 다르다는 신호일 텐데, 어떤 미래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지 지켜보는 것도 향후 K-팝 동향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다.
‘Proof’ 이후 3년 9개월, 4집 ‘MAP OF THE SOUL : 7’에서 치면 6년 만이다. 오랜 공백 끝 BTS가 마련한 또 다른 증명(Proof)의 시간에선 ‘Cypher’ 시리즈나 ‘MIC DROP’의 패기, ‘Dynamite’와 ‘Butter’의 달콤한 폭죽은 없다. 화려한 춤 대신 공명하는 리버브에 더 신경을 쓰고, 뮤직비디오의 최소화로 이미지보단 음악에 더 집중해 주길 원한다. 음악에서든 출신에서든 자신들의 뿌리를 염두에 두고 전체적으로 가라앉은 길을 택한 작품의 단 하나 인상은 대학 졸업식장 혹은 친구 결혼식장에서 찍은 듯한 재킷 사진의 수더분한 모습에서도 동시에 전해진다. 어제 광화문에서 펼친 공연은 이 모든 절제의 틀을 검붉은 퍼포먼스로 해제해 그룹의 새로운 출발선에 세웠다.
공연 얘기가 나왔으니 한 마디. 아미들에겐 무조건 반가운 무대였겠지만 조금 거리를 두고 본 입장에선 세 가지가 아쉬웠다. 하나는 너무 신작과 현장 분위기에만 몰입해서인지 세트리스트와 음향이 불친절했다는 것, 또 하나는 실제 밴드를 동원했더라면 ‘라이브’로서 더 생동감을 띠었을 거라는 것(나는 ‘Like Animals’의 거친 일렉트릭 기타 솔로를 기타리스트의 실연으로 듣길 기대했다), 그리고 오랜만의 복귀인 만큼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대형 문화 행사를 개최해 온 수도권에서만이 아니라 이전처럼 제이홉의 고향인 광주나 슈가와 뷔의 고향인 대구, 지민과 정국의 출신지인 부산 정도에라도 들르는 일정이었다면 더 나았으리라는 것이다. ‘아리랑’엔 본조 아리랑만 있는 게 아니다. 정선 아리랑도 있고 진도, 밀양 아리랑도 있다.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