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필요나 의뢰가 아닌, 자기감정과 입장 표현을 위해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에 대한 호감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이 글은 음악에 관한 글이므로 우선 슈베르트와 바그너가 활약한 18~19세기 낭만주의 시대로 가보자. 당시는 크리에이터의 세계관을 조금씩 따지던 때로, 이전만 해도 음악가란 궁정이나 교회에 고용된 장인(匠人)에 가까웠다. 주문이 들어오면 만들어내는 수동적 피고용인이었던 그런 작곡가의 위치를 표현의 주체로서 격상시킨 사람은 우리가 잘 아는 베토벤이다. 그는 다소 기계적으로 곡을 쓰던 개인의 사상, 내면, 감정, 영혼을 작곡의 주요 동력으로 삼아 개인의 창작 의지가 지닌 진지함, 진정성을 부각했다. 베토벤을 이어 프란츠 리스트와 프레데릭 쇼팽은 창작의 주체성을 넘어 자신의 작품을 직접 연주까지 해내는 천재의 모습으로 오늘날 '슈퍼스타'라 불리는 입지에까지 올라선다. 심지어 리스트는 지금의 팬덤 격인 ’리스토마니아’라는 자신의 추종자들을 거느렸기도 해 21세기 대중음악 비즈니스의 핵심 요소를 본의 아니게 예고했다.
사실 예술 작품을 스스로 만든 사람에 대한 가치 부여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각색과 연출로 개봉 전부터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오디세이'의 원작자 호메로스의 고대까지 거슬러 간다. 그는 또 다른 인류 유산인 '일리아스'에서 방대한 신화들 중 아킬레우스의 분노라는 사건 하나에 집중해 전쟁 마지막 해의 40일간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작금 크리에이터의 전형을 제시했다. 다시 무대를 중세로 옮기면 프랑스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한 귀족, 왕족 중심의 서정시인이자 작곡가인 트루바두르를 만나게 된다. 이들은 창작자의 주관적인 감정과 내면의 고뇌를 1인칭 시점으로 표현해 냈다는 면에서 우리가 아는 싱어송라이터의 모체로 봐도 무방한데, 대중음악사에서 팬들과 평단이 아티스트를 평가할 때 가장 열광하는 지점이 '자주성'과 '진정성’임을 감안하면 이 계통에서 트루바두르의 위상은 더 공고해진다.
'나의 예술은 내 손으로 만든다'는 역사를 현대로 가지고 오면 1960년대 밥 딜런과 비틀스에 대입된다. 흥미롭게도 이 시기 서구 대중음악 신에선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쓰지 않는 뮤지션은 진정한 아티스트가 아니다"라는 강력한 담론이 형성돼, 앞서 보았듯 마치 오래전부터 통용되어 온 것이 20세기 들어 재설정된 느낌마저 주었다. 그렇게 비틀스는 자신들 곡을 스스로 쓰는 밴드로, 밥 딜런은 대중음악을 단순한 유흥에서 문학예술의 영역으로 데려온 인물로서 추앙된다.
서론이 길었는데 그건 이 글이 다룰 보이 그룹 코르티스가 현대 팝 시장의 뿌리인 서양 예술계에서 매우 오랜 기간 받들어 온 두 요소(자주성과 진정성)를 강점이자 장점으로 품고 있어서이다. 자주성과 진정성은 기실 이 시대 성공한 팝 아티스트들의 공통된 성향이기도 한데, 코르티스는 유독 그 성향을 자신들과 같은 젠지(Gen-Z) 세대에게 강하게 어필해 세계적인 인기의 발판으로 삼았다. 예술하는 사람에게 자주성과 진정성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 한번 따져보자. 흔히 음악계 아이돌 인기의 척도로 간주되는 매력적인 비주얼, 남다른 카리스마, 화려한 퍼포먼스와 빼어난 가창력은 아이돌이라면 거의가 지녀야 하는 기본이다. 모두에게 요구된 출발선을 객관적 척도로 삼을 순 없을 일. 차라리 그건 주관적 취향에 좌우될 비교군에 더 가까워 보인다.
바로 여기에서 코르티스나 아이들(i-dle), BTS와 스트레이 키즈 같은 아이돌 그룹들을 성공할 수 있게 만든 결정적인 힘인 자주성과 진정성이 강조된다. 특히 코르티스의 경우 멤버 각자가 모든 창작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데뷔 때 이미 소속사로부터 허락받은 걸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선 참여자들의 의지도 그렇지만 그걸 회사로부터 허락받았다는 게 더 중요해 보인다. 멤버들이 그만한 능력을 갖추었다는 뜻이니까. 때문에 코르티스는 팀 이름부터 '우리 하고 싶은 거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COLOR OUTSIDE THE LINES. 기존 관습이나 사회적인 틀, 장르 경계 따위에 갇히지 않고 자신들만의 자유로운 표현과 독창적인 서사를 펼쳐나가겠다는 아티스트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물론 이건 몇몇 아이돌 그룹만 공유하는 예외 사례에 가깝다. 기획되고 연출된 아이돌이라는 대중의 부분적 오해는 사실상 대부분 아이돌들이 겪어야 하는 타의적 정체성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서도 그 틀에 갇혀 지내는 아티스트는 업계가 요구하는 자주성과 진정성 레벨에 미달하며 시장(특히 영미권 팝 시장)이 원하는 작가주의적 거물로는 자랄 수 없게 된다. 마이클 잭슨과 비욘세가 스스로 몸담았던 그룹이 누린 인기에 만족했다면 둘은 결코 전설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현재 거침없고 개성 넘치는 코르티스의 예술 세계에 대한 청춘 세대의 환호는 케이팝 아티스트들이 빠질 수 있는 결정적인 함정, 즉 점점 비슷해지거나 예상되는 서사 진행에 대한 대중의 지루함이 반영된 결과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일면 천편일률적으로 보이는 기획형 아이돌 시스템에 대한 음악 팬들의 피로감과 반작용이 코르티스 같은 자작형 아이돌 그룹들을 보다 돋보이게 하는 셈이다.
연습생 제도, 잘 짜인 칼군무와 독창적인 세계관으로 대표되는 케이팝의 치밀한 시스템은 분명 세계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지만, 동시에 창작자로서 저들의 수동성은 데뷔 전부터 타 유명 그룹의 히트곡을 작곡, 프로듀싱했거나 안무를 짰던 멤버들로 구성된 코르티스 같은 팀을 더 주목하게 한다. 업계의 디폴트인 케이팝의 완벽한 시스템을 갖춘 것은 물론, 창작의 주도권까지 쥔 아티스트라는 배경은 그렇지 못한 그룹들을 압도할 수밖에 없다. 분명한 건 젠지 세대는 완벽하게 세팅된 가짜보다 조금은 덜 다듬어졌어도 자신들의 진짜 고민과 정체성을 담아낸 날것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티스트를 더 선호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 뮤지션이 스튜디오에서 밤을 새우며 트랙을 다듬고, 직접 비주얼(영상)과 안무 아이디어까지 냈다는 사실 자체가 팬들에게는 강력한 스토리텔링이자 자부심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팬들이 원하는 아티스트의 자주성과 진정성이요, 케이팝을 포함한 치열한 월드 팝 시장에서 인기의 장기 집권을 보장해 줄 핵심 역량이다.
얼마 전 마돈나가 15집 'Confessions II'로 빌보드 200 1위에 올랐다. 해당 차트 통산 열 번째 정상이며, 영국 차트에선 열세 번째 1위 기록이다. 그 마돈나의 나이 올해로 예순일곱. 곧 칠순을 맞을 왕년의 팝스타가 무서운 신예가 수두룩한 시장의 정글에서 또 한 번 왕좌에 오른 것이다. 나는 저러한 마돈나의 현재가 코르티스의 미래가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신해철의 노래 제목을 빌리자면 마돈나의 지금은 코르티스 멤버들의 '50년 후의 내 모습'일 수도 있으리란 얘기다. 이것이 마냥 비약이 아닌 이유는 여태껏 얘기한 단 하나의 가치, 즉 '내 것엔 내가 관여한다'는 원칙이 지닌 힘이 무엇인지 코르티스 멤버들과 마돈나는 똑같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