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하영이 가족사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하루 만에 번복한 소속사의 입장도 논란을 더 키웠다. 물론 하영이 조상의 과오를 대신 책임질 이유는 없다. 그러나 자신이 공개적으로 꺼낸 가족사와 이를 방어하기 위해 소속사가 내놓은 해명에는 책임이 따른다. 하영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연좌제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논란은 하영이 주연을 맡은 넷플릭스 시리즈 '이런 엿 같은 사랑'의 홍보를 위해 예능에 출연하면서 시작됐다. 하영은 지난 6일 공개된 넷플릭스 코리아 웹예능 '홍보하러 온 건 맞는데'와 7일 방송된 KBS 2TV '옥탑방의 문제아들'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을 소개했다. 증조부에 대해서는 일본에서 서양 의학을 배운 뒤 한양에 양의원을 열고 고종을 진료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방송 이후 하영의 증조부가 일제강점기에 의사로 활동한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안상호는 최악의 친일파로 불리는 이완용이 고문으로 있던 경제인 단체 '대정실업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인물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대정실업친목회'를 '1916년 서울에서 조직됐던 친일 단체'로 정의한다.
이때 소속사가 선택한 단어는 "확인 중"이 아니라 "사실무근"이었다. 비스터스엔터테인먼트는 지난 10일 하영의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친일 행적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나 하루 만에 태도를 바꿨다. 소속사는 11일 오전 "추가 확인 결과 증조부 안상호 선생이 1916년 대정친목회의 평의원 명단에 이름이 올라와 있는 기록이 실제로 존재함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충분한 검증 없이 '사실무근'이라고 성급히 답변해 혼란을 드린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번 사과로 최소한 하나의 사실은 분명해졌다. 논란이 처음 불거졌을 당시 소속사는 관련 기록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의혹부터 부인했다는 점이다. 공개된 사료의 의미를 따지고 반박한 것이 아니라 사료의 존재 여부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론을 먼저 내린 셈이다.
'사실무근'은 빈틈이 없는 단어다.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설명하거나 확인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과는 무게가 다르다. 제기된 의혹 전체에 근거가 없다는 뜻인 만큼 이를 입증할 책임도 해명하는 쪽에 생긴다. 소속사의 성급한 부인이 논란을 잠재우기는커녕 오히려 키운 이유다.
현재 논란은 하영의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홍보하러 온 건 맞는데' 1편은 지난 10일 후속편 공개를 예고했지만, 11일 오전까지 영상이 올라오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하영은 소속사가 사과문을 낸 이날 생일을 맞았다. 소속사에 따르면 하영은 현재 "마음이 매우 무거운 상황"이다. 최근 공개된 주연작 '이런 엿같은 사랑'이 호평받으며 상승세를 타던 터라 누구보다 웃어야 할 날이었지만, 가족사 논란과 해명 번복까지 겹치며 정작 웃지 못할 생일이 됐다.
하영은 오는 14일 '이런 엿같은 사랑' 홍보를 위한 언론 인터뷰가 예정돼 있다. 일정이 그대로 진행되면 하영이 논란 이후 처음으로 취재진과 직접 마주하는 자리가 된다.
하영이 이 자리에서 증조부를 대신해 역사적 책임을 짊어질 필요는 없다. 다만 가족사를 어떤 경위로 알고 있었는지, 논란이 된 기록을 확인한 뒤에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소속사의 첫 해명과 번복에 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는 직접 설명할 수 있다. "마음이 무겁다"는 소속사의 전언보다 당사자의 구체적인 말이 필요한 지점이다.
연좌제를 거부하는 것과 공적 발언에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되지 않는다. 조상의 행적은 선택할 수 없지만 그 역사를 어떻게 말하고, 잘못 전달된 사실을 어떻게 바로잡을지는 선택할 수 있다. 지금 하영이 짊어져야 할 것은 조상의 죄가 아니라 자신이 꺼낸 말과 그 이후의 태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