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써온 래퍼들이 타인의 대사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오는 9월 개봉하는 영화 '타짜: 벨제붑의 노래' 스윙스부터 '킬러들의 쇼핑몰 시즌2' 펀치넬로 등 예상 밖 연기 도전이 이어지고 있다.
연기 도전으로 가장 화제를 모은 건 스윙스다. 그는 '타짜: 벨제붑의 노래'(감독 최국희)에서 장태영(변요한)과 박태영(노재원)의 고교 동창 아브라함을 맡았다. 글로벌 도박판에 합류하는 개성 강한 인물로, 본명 문지훈을 크레디트에 올리며 배우로 첫발을 내디뎠다. 짧게 공개된 예고편에서도 얼굴 문신과 업어치기 액션으로 기존 래퍼 이미지와 맞닿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연기를 향한 태도도 진심이다. 스윙스는 연기 학원에 다니며 기초부터 다졌고, 웹 예능 '대배우 스윙스'를 통해 발성, 대본 리딩, 즉흥 연기까지 배우가 되기 위한 과정을 공개했다. 물론 래퍼로서 캐릭터가 확실한 만큼 서툰 모습이 웃음 포인트가 되기도 했지만 "내가 배우 도전하는 것을 비웃거나 안 믿는 사람들이 많은 데 진지하게 진짜로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말하는 등 진심임을 보여줬다.
엠넷 '쇼미더머니8' 우승자 펀치넬로는 디즈니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 시즌2'에 깜짝 등장해 예상 밖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 12일 공개된 7·8회에서 비밀 정보원 두더지 역을 맡아 머더헬프의 숨은 조력자로 활약했다. 위기 속에서도 침착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팔에 삽입된 생체 칩을 직접 제거하는 등 짧은 분량에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
'쇼미더머니777' 준우승자 루피도 영화로 연기에 도전한다. 그는 내년 상반기 개봉 예정인 음악 영화 '옆집 파바로티'(감독 임성용)에 합류해 최근 촬영을 마쳤다. 성악과 힙합, K팝을 한데 엮은 작품이다.
그간 래퍼들이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하더라도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역할이나 카메오에 머물렀다. 박재범은 넷플릭스 '월간남친'(2026)에서 가상 연애 시뮬레이션 속 톱스타로 특별출연해 기존 이미지를 그대로 활용했고, 영화 '변산'(2018)에서도 도끼, 더콰이엇, 매드클라운, 던밀스가 랩 경연 심사위원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최근 작품 속 래퍼들의 쓰임새가 달라졌다. 래퍼라는 익숙한 이미지를 앞세운 특별출연이 아니라 독립된 캐릭터를 맡아 배우로 평가받으려는 모습이다.
이런 변화를 조금 일찍 보여준 인물이 던밀스다. 던밀스는 '변산'을 시작으로 '메기'(2019), '우리 돈 벌레'(2023) 등에 출연하며 차근차근 영화 경험을 쌓았고 드라마에서도 활동을 이어갔다. 2024년 '킬러들의 쇼핑몰 시즌1'에서 쿠마 역을 맡은 데 이어 넷플릭스 시리즈 '광장'에서는 소지섭과 몸을 맞대는 액션까지 펼쳤다. 최근 공개된 '킬러들의 쇼핑몰 시즌2'에도 짧게 다시 등장해 시즌1 속 전사를 채웠다.
그동안 래퍼들이 연기와 거리를 뒀던 건 힙합신 특유의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자기 서사와 진정성을 중시하는 데다 멋과 자존심이 중요한 장르라서다. 연기는 본업을 흐리는 외도로 비칠 수 있었고, 서툰 도전은 그동안 쌓은 이미지에 흠집을 낼 위험도 컸다.
그러나 유튜브의 확산으로 분위기가 다소 달라졌다. 음악뿐 아니라 예능감과 일상까지 콘텐츠가 되면서 본업 밖 활동을 경계하던 분위기도 한층 누그러졌다. 래퍼들 역시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익숙해졌고 연기는 자기표현을 넓히는 새로운 영역이 됐다.
제작진의 시선도 달라졌다. '킬러들의 쇼핑몰' 이권 감독은 시즌1의 던밀스에 이어 시즌2에 펀치넬로를 출연시킨 것에 대해 "캐릭터에 맞고 연기를 잘하면 되는 것"이라며 "래퍼들의 성향에도 언더독의 마인드가 있다"고 설명했다. 캐릭터성 짙은 인물에 래퍼 특유의 강렬한 이미지가 부합한다고 보는 것이다. '타짜: 벨제붑의 노래'의 스윙스와 '옆집 파바로티'의 루피 역시 같은 맥락의 캐스팅이다.
배우로 먼저 데뷔한 뒤 래퍼로 활동 폭을 넓혀 같은 선상에 놓기는 어렵지만, 양동근은 연기와 랩을 모두 본업으로 인정받은 대표적 인물이다. 지금 새로운 포지션으로 카메라 앞에 선 래퍼들이 양동근처럼 두 영역에서 존재감을 굳히며 자연스럽게 활동 폭을 넓혀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