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에이전트 이단 헌트와 ‘탑건’의 전설적인 파일럿 매버릭은 잠시 잊어도 좋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 톰 크루즈가 우리가 알던 비주얼과 백만 광년쯤 떨어진 얼굴로 돌아왔다. 톰 크루즈가 연기 인생 46년 만에 가장 파격적인 변신을 감행한 영화 ‘디거’(감독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를 들고 다시 한국을 방문했다.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 서울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내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톰 크루즈는 할리우드 배우 사상 최다 내한(통산 13회) 기록을 자체 경신하며 각별한 한국 사랑을 전했다. 그는 “한국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디거’와 함께 다시 찾게 되어 영광이고 행복하다”며 “앞으로도 30번은 더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유쾌한 소감으로 현장 분위기를 달궜다.
‘디거’는 괴짜 석유 재벌 디거 록웰(톰 크루즈)이 그린란드 빙하 시추 시설에서 발생한 위험 경고를 돈 때문에 묵살하면서 시작된다. 그 작은 균열이 전 세계를 뒤흔드는 미증유의 기후 대재앙으로 번지자, 재앙의 원흉인 디거가 역설적이게도 스스로 인류의 구원자를 자처하며 벌어지는 과정을 그린 블랙 코미디다. ‘버드맨’,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로 거장 반열에 오른 알레한드로 G. 이냐리투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아카데미 3회 연속 수상에 빛나는 엠마누엘 루베즈키 촬영감독이 합류해 129분간 빈틈없는 영화적 체험을 선사한다.
영화 속 톰 크루즈는 젊은 외양과 화려한 액션 뒤에 가려져 있던 폭발적인 연기 내공을 거침없이 뿜어낸다. 낯선 목소리와 기괴한 자세, 압도적인 대사량으로 디거 록웰의 추악한 영혼을 빚어냈다. 특히 재난 수습을 위해 미국 대통령 컴슨(존 굿맨)과 각료들이 모인 그로테스크한 밀실 회의 장면, 그리고 디거가 10여 분간 원테이크(롱테이크)로 궤변의 열변을 토하는 유럽의회 장면은 영화의 백미로 꼽힌다.
해당 장면에 대해 톰 크루즈는 기자간담회에서 “감독님이 이 독백 시퀀스를 위해 몇 년간 치열하게 고민했을 만큼 다층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며 “이런 파격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은 마치 자유롭게 재즈를 연주하는 과정과 같다. 아티스트로서 내 몸은 도구이기에 끊임없이 연구하고 적용하며, 비로소 완전한 연주의 자유를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 커리어에서 이런 작품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독창적인 세계관”이라며 “현대 사회를 날카롭게 꼬집으면서도 그 이면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인간의 본성을 녹여냈다. 장르가 무엇이든 관객 스스로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영화를 선보이는 것이 내 오랜 꿈”이라고 덧붙였다.
자연스럽게 시선은 톰 크루즈의 오스카 행보로 쏠린다. ‘7월 4일생’, ‘제리 맥과이어’, ‘매그놀리아’로 골든글로브 트로피를 품에 안고 칸 영화제 명예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공로상까지 수상했지만, 아직 아카데미 연기상 본상과는 인연이 없었던 그다. 과거 이냐리투 감독의 ‘레버넌트’를 통해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었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전례가 재현될지 영화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에 대해 톰 크루즈는 “오스카 등 상이나 세간의 평가에 휘둘리기보다, 영화를 만드는 행위 자체를 특권이자 영광으로 여긴다”며 “개봉 성적이나 트로피를 넘어,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생명력을 지니는 스토리를 남기고 싶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극장을 나서며 치열하게 토론할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고 담담하면서도 묵직한 소회를 밝혔다.
톰 크루즈 주연의 블랙 코미디 ‘디거’는 오는 3일 개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