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건설 현장에서 '자재 쇼크' 우려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긴급 대응에 나서고는 있지만 건설 현장에서는 "버티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김이탁 국토부 제1차관은 20일 오전 5개 지방국토관리청(서울·원주·대전·익산·부산)과 화상회의를 열고 중동발 리스크에 따른 건설자재 수급 상황과 현장 영향을 점검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자재 생산과 유통 현황, 공사 차질 가능성 등 전반적인 대응 방안이 논의됐다.
국토부는 김 차관을 단장으로 한 '건설현장 비상경제 태스크포스(TF)'를 가동 중이다. 레미콘 혼화제와 아스팔트 등 기초 자재와 단열재, 창호, 접착제, 실란트 등 마감재를 포함한 주요 자재의 수급과 가격 동향을 일일 단위로 관리하고 있다. 아울러 석유화학 원료 제품 전반에 대한 불안이 커지면서 최종재뿐 아니라 중간재, 원료 생산과 유통 과정까지 공급망 전반에 대한 현장 점검이 진행 중이다. 국토부는 5개 지방국토청 인력을 총동원해 대응에 나선 상태다.
이날 회의에서는 국토부 본부와 지방청, 자재 생산업계 간 실시간 연락망을 구축해 자재별 수급과 가격 동향을 보다 촘촘히 파악하고 신속 대응하는 방안이 공유됐다. 관련 상황을 정기적으로 외부에 알리는 방안도 검토됐다.
김 차관은 "건설자재 수급 불안과 가격 상승이 SOC 건설과 주택 공급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자재 생산부터 준공까지 공급망 전반을 선제적으로 관리해달라"고 말했다.
정부가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총력 대응에 나선 상태지만 현장에서는 이미 곳곳에서 위기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주요 자재 가격은 동시다발적으로 오르고 있고 일부 품목에서는 가격이 문제가 아닌 공급 자체가 끊길 수 있다는 불안마저 감돈다. 건설업계에서는 "지금은 가격 상승 단계지만 곧 물량 확보가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란 최악의 전망까지 흘러나오는 상황이다.
자재수급 동향을 확인할 수 있는 통계 지표도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3월 자재수급지수는 74.3으로 전월 대비 16.7포인트 급락했다. 건설경기실사지수 세부 항목 가운데 가장 큰 낙폭이다. 4월 전망은 더 우울하다. 4월 전망치는 69.6으로 70선 하회가 예상된다. 자재수급지수가 70선을 밑도는 것을 2024년 지수 개편 이후 처음이다. 2024년 개편 당시 평균 자재수급지수는 88이었다.
중동발 자재 수급 불안이 지속될 경우 공사 지연 가능성과 함께 건설경기 둔화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다. 연구원 관계자는 "원가 상승 부담이 커지면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전환이나 착공을 앞둔 사업장이 일정을 미루게 되고 결국 건설경기 회복도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중견·중소 건설사의 위기감은 더 크다. 국토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KISCON)에 따르면 지난달 건설업 폐업 신고는 345건으로 전월 대비 5.5% 증가했다. 1월 416건에서 2월 327건으로 감소했던 폐업 건수가 다시 늘어나는 모양새다.
업계에서는 자재 수급 불안이 영세 업체를 중심으로 연쇄 위기로 번질 가능성을 우려한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민간 중소 건설 현장은 자재 문제를 자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상반기 중 자재 생산이나 운송에 차질이 생기면 공사 중단과 함께 도미노식 폐업이 현실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