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입주 물량 감소와 비아파트 공급 위축으로 임차인이 선택할 수 있는 집 자체가 줄고 있다. 여기에 집주인의 실거주 전환까지 늘면 한정된 전셋집을 둘러싼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 있다. 선호 지역에서 밀려난 수요가 중저가·외곽으로 연쇄 이동하는 전세시장 '의자뺏기'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발표한 '전월세 및 매매시장 안정을 위한 주택 신속공급 방안'은 수도권에 23만가구 이상의 주택을 추가 공급하고 공공택지 사업 속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재개발·재건축 활성화와 비아파트 공급 확대도 추진한다. 하지만 상당수 물량의 착공 시점이 2029~2030년으로 예정돼 있어 당장의 임대차시장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까지는 시차가 불가피하다.
공급 부족기에 실거주 전환까지 맞물리면 전세시장의 '의자뺏기'는 단순한 가격 상승을 넘어 임차인의 주거 선택지가 줄어드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서울 25개 자치구의 전세 매물은 2만94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만3458건보다 2518건(10.7%) 감소했다.
특히 상대적으로 중저가 주택이 많은 지역에서 매물 감소폭이 컸다. 중랑구의 전세 매물은 같은 기간 80.9% 줄었고 동대문구(-63.9%), 금천구(-63.2%), 노원구(-60.6%), 도봉구(-60.4%) 등도 60% 안팎 감소했다. 선호 지역에서 밀려난 수요를 받아줘야 할 중저가·외곽 지역의 전세 물량마저 줄고 있다는 의미다.
전세 공급이 부족해지면 임차 수요는 여러 방향으로 이동한다. 선호 지역에서 전셋집을 구하지 못한 세입자는 인접 지역을 거쳐 서울 외곽이나 경기권으로 이동해야 한다. 기존 주거비를 감당하기 어렵다면 면적을 줄여 소형 주택을 찾게 되고 아파트 전세를 구하지 못하면 연립·다세대 등 비아파트로 눈을 돌릴 수 있다.
하지만 비아파트 역시 대체재 역할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전세사기 여파 등으로 연립·다세대 공급 감소가 누적된 데다 임차 수요가 몰릴 경우 가격 부담도 커질 수 있어서다.
마지막 대안인 월세시장도 여유롭지 않다. 서울 아파트 월세 매물은 같은 기간 5.7% 감소했다. 전세에서 밀려난 수요까지 월세시장으로 이동하면 제한된 물건을 둘러싼 경쟁이 심화하면서 월세가격에도 추가적인 상승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전세 공급 부족은 임차인의 선택지를 지역·면적·점유 형태별로 동시에 좁힌다. 지역은 선호 지역에서 외곽으로 멀어지고 주택 면적은 작아지며 아파트 전세는 비아파트나 반전세·월세로 바뀌는 식이다. 기존 주거 수준을 유지하려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고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가구는 주거 조건을 낮춰야 한다. 전세난이 단순한 가격 문제를 넘어 주거 선택권의 문제로 확대되는 셈이다.
남혁우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원은 "다주택자나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대출·세제 규제가 강화되면서 임대 매물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입주 물량까지 부족한 상황에서 실거주 전환이 늘어나면 중저가 시장을 중심으로 '의자뺏기' 현상이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