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거주 1주택에도 거주자는 있다
정부가 세제·금융 규제를 통해 비거주 1주택자의 실거주를 유도하고 있지만 그 집에는 또 다른 거주자인 세입자가 있다. 집주인의 실거주 전환이 세입자의 연쇄 이동을 부르는 '의자뺏기' 현상과 전월세시장 불안을 짚는다. 해외 주거시장과 비교해 실거주 중심 정책의 한계를 살펴보고 임대차시장 안정의 해법을 모색한다.
정부가 세제·금융 규제를 통해 비거주 1주택자의 실거주를 유도하고 있지만 그 집에는 또 다른 거주자인 세입자가 있다. 집주인의 실거주 전환이 세입자의 연쇄 이동을 부르는 '의자뺏기' 현상과 전월세시장 불안을 짚는다. 해외 주거시장과 비교해 실거주 중심 정책의 한계를 살펴보고 임대차시장 안정의 해법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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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부동산 세제·금융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는 가운데 시장의 관심은 '비거주 1주택'으로 쏠린다. 그동안 다주택자를 규제하기 위해 1주택자 혜택을 늘려 왔는데, 앞으로 비거주자는 1주택자라 하더라도 사실상 규제 대상으로 본다. 정부는 예외를 규정하는 방식 등으로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개념을 제시했다. 하지만 세제와 금융 분야에서 비거주 1주택자를 규정하는 방식이 달라 혼선을 빚고 있다. 수요자 입장에선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17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지난 13일 부동산 금융정책을 발표하면서 투기적 목적의 비거주 1주택자도 전세대출 보증 제한 대상으로 분류했다. 수도권·규제지역 내 아파트를 보유한 1주택자로서 해당 주택을 임대차 중이고, 본인과 배우자가 해당 주택에 실거주한 적이 없을 경우 전세대출의 신규 대출과 만기 연장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금융위는 본인이나 배우자가 한 번이라도 실거주하고 주민등록을 이전한 적이 있다면 규제 대상이 아니라고 규정했다.
슬로바키아 93. 5% vs 스위스 38. 2%.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자가점유율은 국가별로 극명하게 갈린다. 하지만 자가점유율이 낮다고 주거시장이 불안정한 것도, 높다고 반드시 안정적인 것도 아니다. 집을 소유해 직접 거주하는 비율보다 안정적으로 빌려 살 수 있는 임대시장이 함께 작동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17일 OECD가 지난해 41개국을 대상으로 주택점유형태(Housing tenure)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자가점유율은 58. 0%로 35위를 기록했다. OECD 평균인 70. 1%보다 12. 1%포인트(p) 낮다. 통계 상위권에는 슬로바키아를 비롯해 루마니아(92. 8%), 크로아티아(90. 4%), 리투아니아(86. 9%), 불가리아(85. 2%) 등 과거 공산주의 체제에 속했던 동유럽 국가들이 올랐다. 반면 영국(68. 4%), 미국(65. 3%), 프랑스(58. 5%)는 모두 OECD 평균을 밑돌았다. 독일(41. 0%)과 스위스(38. 2%)는 한국보다도 낮은 최하위권에 위치했다. 구(舊)공산주의 국가의 높은 자가점유율에는 1990년대 체제 전환기에 이뤄진 대규모 국영주택 민영화가 자리한다.
정부가 공공임대와 비아파트 공급 확대 등 현행 실거주 기조에서 동원할 수 있는 전월세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한쪽에서는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세제·금융 규제로 집주인의 실거주를 유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월세난을 근본적으로 완화하려면 '자가보유·실거주=실수요'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임대주택 공급 자체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전월세 및 매매시장 안정을 위한 주택 신속공급 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공공임대 공급을 확대하고 빌라 등 비아파트의 건축 기준과 대출 규제를 완화해 단기 공급을 늘리기로 했다. 아파트 공급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상대적으로 공급 속도가 빠른 비아파트를 활용해 전월세시장의 숨통을 틔우겠다는 취지다. 우병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전문위원은 "다세대·다가구 규제 완화는 장기적인 아파트 공급에 앞선 단기 처방으로 분명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전월세 가격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관건은 공급된 비아파트를 누가 소유하느냐다.
수도권 입주 물량 감소와 비아파트 공급 위축으로 임차인이 선택할 수 있는 집 자체가 줄고 있다. 여기에 집주인의 실거주 전환까지 늘면 한정된 전셋집을 둘러싼 경쟁은 더 치열해질 수 있다. 선호 지역에서 밀려난 수요가 중저가·외곽으로 연쇄 이동하는 전세시장 '의자뺏기'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발표한 '전월세 및 매매시장 안정을 위한 주택 신속공급 방안'은 수도권에 23만가구 이상의 주택을 추가 공급하고 공공택지 사업 속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재개발·재건축 활성화와 비아파트 공급 확대도 추진한다. 하지만 상당수 물량의 착공 시점이 2029~2030년으로 예정돼 있어 당장의 임대차시장 공급 부족을 해소하기까지는 시차가 불가피하다. 공급 부족기에 실거주 전환까지 맞물리면 전세시장의 '의자뺏기'는 단순한 가격 상승을 넘어 임차인의 주거 선택지가 줄어드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부동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지난 12일 기준 서울 25개 자치구의 전세 매물은 2만940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2만3458건보다 2518건(10.
#8년 동안 한 집에서 자녀를 낳고 키우며 살아온 무주택자 C씨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직접 들어와 살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주변 전셋집을 급하게 알아봤지만 매물은 부족했고 전셋값도 크게 올라 있었다. 자녀 양육과 교육 때문에 생활권을 벗어나기도 어려웠다. 결국 C씨는 인근에서 종전보다 전세보증금 4억원에 월세 100만원을 더 부담하는 조건으로 집을 구했고, 늘어난 보증금은 대출로 마련했다. C씨는 무주택자인 자신에게까지 실거주 중심 정책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늘어난 대출 이자가 걱정인 데다 전월세 불안이 계속된다면 더 늦기 전에 집을 사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도 시작했다. 집주인의 실거주 전환이 세입자의 주거비와 주거 선택까지 흔든 사례다. 정부 주택정책에서 '실거주'의 무게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집을 사려면 들어가 살아야 하고, 자기 집을 두고 다른 집에 전세로 살면 대출이 어려워진다. 직접 거주하지 않으면 세금 부담도 커진다. 문제는 정부가 말하는 실거주가 사실상 '집주인의 실거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비거주 1주택자의 실거주를 유도하는 정책을 잇달아 강화하면서 전월세시장에 또 다른 변수가 되고 있다. 전세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집주인이 자기 집으로 돌아갈수록 그 집에 살던 세입자는 다시 집을 찾아야 한다. 한정된 전셋집을 놓고 임차인이 연쇄 이동하는 '의자뺏기'가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 영등포구에서 6억원 전세 아파트에 사는 A씨는 최근 집주인으로부터 계약 만료 후 직접 입주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현재 경기도에 거주하는 집주인이 세제·대출 규제 강화 등을 이유로 영등포의 자기 집으로 돌아오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A씨가 옮겨갈 집이다. 같은 지역의 비슷한 아파트 전셋값은 7억5000만원 수준으로 뛰었다. 생활권을 유지하려면 1억5000만원을 더 마련해야 하고 여력이 안 되면 반전세·월세를 택하거나 서울 외곽·경기권으로 이동해야 한다. 앞으로 '또 다른 A씨'가 나올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자녀 교육 때문에 자기 집을 전세 주고 다른 지역에 임차해 사는 직장인 B씨는 최근 세입자의 계약이 끝나면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