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당국도 모른 '치킨게임'…21조 의약시장 두고 카드사 출혈

주명호 기자
2018.02.12 04:05

점유율 높이려 캐시백·인센티브 경쟁적으로 제공…가맹점 수수료대비 1.0% 이상 적자

의약품·의료기기 결제시장을 두고 카드업계가 출혈경쟁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약시장은 연간 결제 규모가 20조원이 넘는 대형시장이지만 신차시장 등과 달리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아 금융당국도 출혈경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일부 카드사들은 약사(약국) 및 병원사업자가 의약품 판매업체(도소매업체)로부터 의약품이나 의료기기를 구입할 때 기본 할인 혜택 외에 추가적인 캐시백을 제공하는 식으로 점유율 확대 경쟁을 펼치고 있다. 카드사들은 기본적으로 의약품 카드 결제시 1.0~1.5% 수준의 할인 및 적립 혜택을 제공한다.

A 카드사는 의약품 일시불 결제시 1.5% 할인에 더해 최대 1.6%의 캐시백을 약사에게 주고 있다. 이와 함께 의약품 판매업체의 영업사원에게 약 0.15% 수준의 판매 인센티브도 주고 있어 모두 합치면 최대 3.25%의 비용이 발생한다. 카드사들이 의약품 판매업체에게 받는 평균 가맹점 수수료율이 2.0%인 점을 감안하면 의약품 카드 결제 때마다 1.25%의 적자가 발생하는 셈이다.

다른 카드사들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B 카드사는 1.0% 적립 혜택과 함께 최대 2.0% 캐시백과 0.15%의 판매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C 카드사는 1.5% 적립, 1.0% 캐시백에 역시 0.15% 판매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마케팅 비용으로 각각 최대 3.15%, 2.65%을 쓰고 있는 셈이다.

카드사들이 적자 경쟁을 펼치는 이유는 시장 점유율을 늘려 매출을 높이기 위해서다. 의약시장의 연간 결제규모는 약 21조원으로 약 41조원의 신차시장의 절반을 웃돈다. 이중 신용카드 결제규모는 약 9조원이다. 카드업계 한 관계자는 "매년 전년보다 높은 매출 목표가 잡히고 새로운 CEO(최고경영자)가 취임하면 매출 압박이 더 심해 출혈경쟁이 발생한다"며 "나머지 12조원 시장을 먼저 가져가기 위해 적자를 무릅쓰고 마케팅을 펼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의약시장에 대한 출혈경쟁이 심하지만 금융당국에서 이런 상황을 파악하기는 사실상 쉽지 않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신차시장 등에 대한 과당경쟁은 잘 알고 있지만 의약시장에 대해선 당국 내에서도 언급이 없다"며 "실제로 과도한 경쟁이 있다면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당국이 의약시장을 둘러싼 카드사의 경쟁을 과당경쟁으로 판단하더라도 이를 중단시키기 위해 강제성이 동반된 조치를 취하기는 어렵다. 여신전문금융업법(여전법)에는 카드 가맹점에 대한 리베이트를 금지하고 있지만 카드 회원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다. 카드 회원에게 제공하는 부가서비스를 금지하면 카드 이용자 혜택이 축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차시장에서 혜택을 줄이면 소비자는 더 많은 비용을 들여 신차를 사야 하고 의약시장에서 약사에 돌아가는 혜택을 줄이면 약사가 약을 더 비싸게 팔 수 있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신차시장에서 카드사들이 과당경쟁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행정지도 등 조치를 취할 근거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과당경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도해야 하지만 일반 회원에게 주는 혜택에 대해 어디 정도까지가 적정한 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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