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이탈리아 펀드 '설계'부터 엉터리… 예고된 부실

김지산 기자
2020.04.26 17:34

진료비 매출채권에 허위청구 섞인 듯…운용사들과 분쟁 불가피

하나은행이 손실 보상을 결정한 이탈리아 헬스케어 사모펀드의 기초자산이 설계 과정부터 부실투성이였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탈리아 병원들이 지방정부에 청구할 진료비 매출채권을 토대로 상품을 구성했는데 청구 대상이 될 수 없는 성격의 것들이 섞여 있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부실에 따른 손실을 피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삼일회계법인, 법무법인 바른과 진행한 펀드 실사에서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상품은 이탈리아 병원들이 지방정부에 청구할 진료비 매출채권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진료비를 받기까지 6개월이 걸리는 데 미국계 자산운용사인 CBIM이 채권을 할인 매입한 뒤 지방정부에 청구하는 구조다. 한국으로 치면 병원이 건강보험공단에 진료비를 청구하는 것과 유사하다. 문제는 여기에 일종의 ‘허위청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이탈리아 지방정부의 재정이 악화된 원인도 있지만 청구대상이 아닌 진료비가 기초자산에 섞여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사실이라면 이탈리아 지방정부가 재정이 좋아진다고 해서 채권을 온전히 사들일 가능성은 없는 셈이다.

CBIM이 만든 펀드를 6개 자산운용사가 국내 한 증권사와 총수익스와프(TRS) 계약을 맺은 뒤 넘겨 받았다. 자산운용사들은 2017년부터 하나은행에서 이 상품을 팔았다. 모두 1500억원 정도 팔렸는데 지난해 판매한 1100억원 규모 펀드에 손실이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절반에서 손실이 발생했다.

하나은행은 지난 22일과 23일 잇달아 이사회를 열어 펀드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보상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확정했다. 하나은행은 △펀드 증권의 기준가격 상당액이나 손해배상금을 고객들에게 지급하고 증권을 이전받는 방안과 △투자원금의 50%를 가지급금으로 먼저 지급하고 훗날 정산하는 방안 등 두 가지를 내놓았다. 고객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하나은행은 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상품을 도입하고 하나은행 PB창구에서 판매해온 JB자산운용 등 6개 자산운용사와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 아직 만기까지 시간이 있어 손실을 확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운용사들의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하나은행은 고객보호 차원에서 서둘러 보상에 나서기로 했다.

하나은행은 선제 보상에 나선만큼 운용사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펀드의 허점을 확인하지 못한 채 하나은행을 판매처로 이용했고 결국 은행에 유무형의 손실을 안겼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하지 않는 건 배임의 소지가 있다고 하나은행은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탈리아 정부가 모라토리움을 선언한 게 아니라면 의료체계 붕괴를 불러올 수 있는 의료비 지급 거부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결국 기초자산에 문제가 있었다는 뜻으로 여기에 얽힌 이해 당사자들끼리 다툼이 벌어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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