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스크래핑을 전면 금지함에 따라 '알아서 찾아주던 적극적 금융'에서 '아는 사람만 찾아먹는 수동적 금융'으로 퇴색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그간 금융사가 먼저 고객에게 다자녀 우대 등 혜택을 안내했으나, 앞으로는 고객이 서류를 내기 전까지는 우대 조건에 해당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법원이 내달 20일부터 가족·혼인관계·기본증명서 등 소관 서류에 대한 스크래핑을 차단하면서 금융권의 맞춤형 서비스 제공에 차질이 생긴다.
구체적으로 은행권은 그간 고객이 주담대를 접수하면 가족·혼인관계증명서를 스크래핑해 신혼부부에게는 신혼부부 정책대출을, 다자녀 가구에는 다자녀 특별 전세자금 대출을 안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고객이 관련 서류를 제출하기 전까지는 해당 상품을 안내할 수 없게 된다. 특히 한 자녀 우대금리나 수수료 혜택 등 금융사 자체 혜택의 경우 소비자가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다.
소비자가 부담하는 비용과 업무 처리 시간도 늘어난다. 금융사는 수기로 제출된 서류를 확인·검증하기 위한 전담 인력을 배치해야 하고, 이에 따른 비용은 대출금리 등 소비자 비용으로 반영될 수 있다. 특히 비대면 채널 중심으로 운영되는 핀테크사와 인터넷전문은행의 경우 서류 접수와 검증 프로세스 재구축이 불가피하다.
은행권 관계자는 "법원이 구체적 절차나 보완책 마련없이 행정 편의주의에 갇혀 '원천 차단'을 선언했다"라며 "정보 취약계층의 정책금융 접근성을 떨어뜨리고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심각한 소비자 피해를 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부처가 추진해 온 금융 서비스도 영향을 받는다. 금융위원회가 2023년 도입한 '부모의 비대면 자녀 계좌개설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기존에는 부모가 비대면으로 자녀 예금·주식계좌를 개설할 때 금융사가 대신 가족관계·기본증명서를 스크래핑했으나, 앞으로는 고객이 별도 제출해야해 '비대면'의 의미가 퇴색된다.
한동안 소비자 피해는 이어질 전망이다. 법원은 개보위가 시행령을 개정하며 스크래핑 대신 '안전한 방식'이라며 권고한 API망 구축에도 착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원 측은 이번 조치가 개보법 시행령 개정 때문이 아닌 법원 가족관계등록시스템을 규정한 가족관계법에 따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개보위는 머니투데이 보도(7월13일 "10년 전 '종이서류'로 회귀"…금융권 '서류 자동제출' 멈춘다) 이후 금융사 등 대리인과 기관 간 사전협의 기간을 연장하고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후속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법원은 기관 대상 설명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날 열린 대리인 대상 설명회에서도 법원의 스크래핑 전면 금지 방침에 대한 우려가 잇따랐다.
다만 법원은 행정안전부의 요청에 따라 보험업권에 한해 가족관계증명서를 행정안전부 주도 API망인 공공마이데이터(공마데)에 이달부터 제공할 예정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태가 여러 부처가 연계되면서 혼란이 빚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스크래핑 금지의 주체는 개보위이지만, 스크래핑이 금지되는 정보를 규정한 가족관계법 등 법률은 법원 등 개별 부처가 담당하고, 공마데를 주관하는 부처는 행안부이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개보법과 공마데를 규정하는 전자정보법 등 여러 의무가 병존하는 상황에서 개별 부처에 혼란이 있는 상황"이라며 "법원이 스크래핑 금지를 선언했지만 방법론적으로 이를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