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내 유명 로펌은 지방 소재 보험대리점(GA)으로 출장가 업무 설명회를 여러차례 열었다. 수도권 뿐 아니라 지방 GA까지 로펌 고객으로 포섭해 컨설팅과 소송 대리를 하기 위해서다. GA의 연매출이 조 단위로 나올 만큼 초대형화 하자 은행이나 보험사 등의 금융사 뿐 아니라 GA가 로펌의 새로운 시장이 되고 있다.
#. 코스닥 상장사인 인카금융서비스는 실적이 우수한 자사 보험설계사에게 매년 해외 여행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우수 설계사들은 전세기를 타고 해외 여행을 다니면서 최고 수준의 대접을 받는다. 한 보험사 CEO(최고경영자)는 자사의 상품을 주력으로 팔아주는 GA 대표들을 초청해 해외 동반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만큼 GA의 위상이 올라갔다.
GA 소속 설계사가 30만명을 돌파하면서 보험사에 '슈퍼갑'으로 자리잡고 있다. 연매출 1조원이 넘는 GA도 속속 등장했다. GA의 위상이 몰라보게 올라갈수록 보험사의 채널 의존도는 심각해졌다. 보험사들은 연간 수십조원의 판매수수료를 GA에 지급하고도 GA 무리한 요구를 거부할 수 없다. 금융당국은 초대형 GA의 위법 행위에 대해 제재 수단이 없어 영업정지 중징계를 내리지 못한다.
2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보험설계사는 54만명으로 이 가운데 GA 소속 설계사가 31만명에 달한다. 전체의 절반이 넘는 59.2%가 보험사가 아닌 GA에 소속돼 특정 보험사가 아닌 여러 보험사 상품을 취급한다.
GA는 초대형화 하고 있다. 소속 설계사가 3000명이 넘는 GA는 지난 2015년 11개에서 지난해 말 26개로 2배 이상 늘었다. 이들 대리점에 속한 설계사도 10년 전 7만명에서 지난해 20만명으로 불었다. GA는 약 4000여곳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소속 설계사 500명이 넘는 대형 GA가 절반이 넘는다. GA가 없으면 사실상 보험상품 판매가 '올스톱' 된다.
소속설계사 1만명이 넘는 초대형 GA는 한화생명금융서비스(2만5000명) GA코리아(1만5000명) 인카금융서비스(2만5000명) 글로벌금융판매(1만3000명) 등이다. 중소형 보험사들의 전속 설계사가 많아야 2000명~3000명 이라는 점에서 이미 GA가 보험사를 뛰어 넘는 영향력을 갖고 있다. 실제로 초대형 GA의 연매출액은 1조~2조원에 달한다. 대표적으로 인카금융서비스는 매출액이 2015년 1196억원에서 지난해 1조218억원으로 1조원 가까이 불었다.
GA가 규모 면에서 보험사를 추월했음에도 금융당국의 실효적인 제재 수단은 사실상 전무하다. 금융감독원은 검사 및 제재 규정에 따라 GA에 대한 제재를 매출액 대비 사고금액 비중으로 결정한다. 이 비율이 1% 미만이면 기관경고, 1% 이상~2% 미만이면 1개월 영업정지, 2% 이상이면 2개월 영업정지다. GA가 부당승환이나 허위계약 등 심각한 위법 행위를 저질러도 매출액이 워낙 커 중징계를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 최근 허위계약으로 과태료 53억원의 중징계를 받은 GA는 총매출액이 커 영업정지는 피해갔다.
더 심각한 것은 GA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보험사의 모집수수료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는 것이다. 보험사들은 지난해 총 32조원 규모의 모집 수수료를 집행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자체 채널이 약한 보험사들은 GA 채널 의존도가 심화했다. GA가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수수료를 군말없이 감당해야 한다. 대형 생명보험사조차 예정사업비의 2배 이상을 쓰고도 GA 요구에 쩔쩔맨다. 월납 보험료의 30배가 넘는 판매수수료를 지급한 보험사도 나왔다.
보다 못한 금융당국은 지난 7월부터 월납보험료의 12배를 넘지 못하도록 '1200%룰'을 GA에 적용했다. 하지만 설계사에게 현금을 직접 지급하는 대신 사무실 인테리어 비용을 대신 부담하거나 GA와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업체를 통해 매출을 올려주는 방식으로 사실상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는 우회로가 뚫렸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해외여행이나 제주도 여행 때 동반해달라는 명목으로 여행비 찬조를 요구하거나 GA 연도대상을 한다고 참석을 요구하면서 협찬을 해 달라고 하는데 이를 거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GA가 아예 자기들이 원하는 담보의 상품을 개발해 달라고 요구하는데, 그대로 만들면 손해율이 심각해지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토로한다.
GA의 달라진 위상에 걸맞게 보험사 수준의 제재 기준을 만들고 과도한 사업비 집행을 막을 근본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보험사들도 "이렇게 모집 수수료를 썼다가는 모두가 공멸"이라며 "누가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스스로 멈출수 없는 국면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보험대리점(GA)를 이대로 놔두면 보험의 미래는 없다. 개혁 수준의 변화가 필요하다"(금융당국자)
금융당국이 '개혁' 수준의 GA 종합 감독방안을 마련하려는 것은 GA 문제를 이대로 방치하면 결국 보험업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GA는 보험사 외곽의 단순한 채널이 아니라 이제는 보험사의 상품개발과 판매수수료(사업비)까지 일일이 관여하고 있다. 그런데도 당국의 규제 수준은 10년 전에 머물러 초대형 GA를 제재할 실효적인 수단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보험업계에선 개혁 수준의 대책이 나오려면 근본적으로 보험 사업비(판매수수료)에 대한 법적인 직접 규제와 허가제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2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보험사들이 연간 집행한 모집 수수료는 약 32조원으로 추정된다. 모집 수수료의 대부분은 채널의 60%를 차지하는 GA 주머니로 들어갔을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새 회계기준(IFRS17) 도입 이후 사업비를 많이 쓰더라도 집행 시점이 아닌 보험 만기까지 비용 인식이 분산되면서 보험사들은 사업비 집행에 대한 브레이크 없이 출혈경쟁을 벌이고 있다. "상품을 많이 팔아주겠다"는 대형 GA의 무리한 요구도 거부하지 못한다.
금융당국은 지난 2014년 보험업 감독규정에서 '예정사업비 내에서 사업비를 합리적으로 집행"하는 규제를 삭제해 버렸다. 이후엔 보험업법상의 명문화된 직접적인 사업비 규제가 없는 공백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GA로 촉발되는 과도한 사업비 집행을 막기 위해선 보험업법상의 과거 삭제한 조항을 살려 금융당국이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보험사 스스로 사업비를 줄일 수 있는 국면은 이미 지났다는 지적이다.
GA의 허가제 전환 필요성도 제기된다. 현재 GA는 전국적으로 4000개 이상 난립했다. 사업자 등록을 하고 사무실만 열면 누구나 쉽게 영업이 가능하다. 보험 뿐 아니라 세무, 노무 등 다른 업종도 겸업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금융당국 제재를 받으면 폐업을 하고 간판을 새로 달면된다. 제재를 받은 GA 임원은 재취업 규제도 받지 않는다. 등록제를 허가제로 전환하면 이런 무질서한 사태를 어느정도는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실제로 연체채권을 사들여 추심 하는 매입채권추심업을 등록제에서 허가제 전환키로 최근 발표한 적도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잔인한 금융' 지적 후 911개로 난립한 추심업체를 허가제로 전환해 30개 수준으로 축소한다. 이를 GA에도 적용하자는 논리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허가제로 전환해 대형 GA에는 그에 상응하는 내부통제 수준을 요구해야 한다"며 "향후 GA를 판매전문회사로 전환하기 위한 사전 포석도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