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는 일본기업? 국적보다 중요한 것은…

임동욱 기자
2015.08.07 17:50

롯데 사태로 기업의 국적성에 대한 논란이 새삼 불거졌다. 일본 기업이 한국에서 5번째로 큰 롯데그룹을 지배하는 지배구조를 놓고, 과연 롯데의 국적을 어떻게 판단해야 할 지 여부 등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지금까지 금융자본, 특히 해외 투기자본에 대한 지적은 많았다. 하지만 국내에서 재벌그룹, 대기업에 대한 국적성 논란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도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 혼란스러워 하고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기업의 국적이 논란이 된 적은 없었다"며 "이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 지 묻는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해외로 시야를 넓혀보면 대기업의 국적성 논란은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경기가 나빠지고 무역수지 적자 확대 등으로 자국산업 보호에 대한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기업의 국적성은 매번 핫이슈로 부상되곤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이다. 미국 시가총액 1위 애플은 자사의 특허 등 지적재산권을 소유한 법인들을 아일랜드에 두고 있다.

아일랜드의 법인세가 미국의 1/3 수준에 불과해 엄청난 절세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애플은 유럽본부를 아일랜드에 계속 두는 조건으로 2%의 세금만 내기로 아일랜드 당국과 특혜협약을 맺었다. 애플이 아일랜드에 보유한 자산은 1000억 달러(110조원) 규모에 달한다.

이 때문에 미국 정치권은 애플 경영진을 의회에 불러 '애플의 국적성'을 따져 묻기도 했다.

미국의 대표적 스포츠 브랜드인 나이키 역시 국적논란의 당사자가 됐었다. 나이키는 14개국 146개 신발공장에서 운동화를 만든다. 스포츠 의류의 경우 해외 39개국 408개 공장에서 공급 받는다. 정작 미국 내에는 본사 외 생산라인은 없다.

미국 기업이면서 정작 생산은 모두 나라 밖에서 하는 셈이다. 이를 두고 나이키는 미국기업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됐었다.

이처럼 기업의 국적성은 일반인들의 잠재 의식 속에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애국심을 주요가치로 여기는 미국 백인보수층 역시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미국 브랜드의 자동차를 여전히 선호한다.

세계 소비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 중국인들 역시 기업의 국적을 따진다. 2012년 센카쿠(중국명 다오위다오) 영유권 분쟁으로 중국에서 반일시위가 번졌을 당시 일본 브랜드의 차량을 보유한 차주들이 봉변을 당했던 것 역시 기업의 국적 문제가 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차량 브랜드를 오성홍기(중국 국기)로 덮어 가릴 수 있는 스티커가 불티나게 팔리는 일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물론 중국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본토에 들어온 기업은 사실상 중국회사'로 간주하는 경향도 존재한다. 센카쿠 사태가 수면위로 내려가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인들은 '중국에서 만든 도요타나 혼다 모두 중국 자동차'라고 말한다.

국제법상 법인, 즉 기업의 국적을 결정하는 일반적 원칙은 없다. 국가마다 기준이 각각 다르다.

회사의 국적을 구별하는 주요 학설은 △설립준거법주의(회사설립의 근거가 된 장소에 의해 결정) △본거지법주의(회사가 가장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장소에 의해 결정) △국내참여이론(한 국가 내 기업활동이 국가경제에 중요한 참여로 인정받을 경우 국적 인정) 등 다양하다.

'국가와 타방국가 국민간의 투자분쟁의 해결에 관한 협약'(ICSID 협약)은 기업 국적을 지배기준이 아닌 설립지 기준으로 결정하는 것이 기본 원칙으로 삼고 있다.

국내에서는 세법상 속지주의를 적용하고 있다. 즉 세법의 적용범위는 "원칙적으로 그 적용지역 내의 모든 사람'이며 "자연인 법인 또는 그 밖의 단체에 두루 적용된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운 글로벌 시대를 맞아 기업의 국적성을 따지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본다. 오히려 '순혈주의'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한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지난해 FDI 유치금액은 100억 달러인 반면, 경제규모가 우리의 절반에 불과한 네덜란드는 이 금액이 300억 달러에 달했다. GDP 규모가 1/4 수준인 싱가포르의 지난해 FDI 유치액은 680억 달러로 우리나라보다 6.8배 가량 많았다.

정진섭 충북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경제규모 대비 한국의 FDI실적은 낮은 수준"이라며 "산업구조의 고도화, 창조경제 실현 등 FDI의 긍정적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는 외부에 대한 우호적 태도 등 투자하기 좋은 매력적인 환경을 조성하는데 더욱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 롯데에 대입해도 마찬가지다. 즉 중요한 건 롯데의 국적이 아니라 얼마만큼 기업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고, 세금을 잘 내며 고용을 많이 하느냐다는 것이다. 롯데의 문제는 국적이 아니라 기업지배구조와 그 활동의 공익성의 빈곤 때문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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