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기저귀 원료에 물 부었더니…10초만에 사라졌다

대덕(대전)=남형도 기자
2017.04.02 14:41

LG화학 대전 기술연구원 가보니…5명 중 1명 박사급 연구원, 미래 위한 '총성 없는 전쟁'

LG화학 기술연구원이 개발한 고흡수성수지(SAP)에 물을 부은 뒤 컵을 기울이자 물이 사라진 모습. SAP는 용량의 500배에 달하는 물을 흡수해 기저귀 원료로 쓰인다./사진제공=LG화학

지난달 31일 대전시 유성구 대덕연구단지에 위치한LG화학기술연구원 실험실. 연구원이 기저귀 원료로 쓰이는 고흡수성수지(SAP) 가루가 담긴 플라스틱컵에 물을 가득 부었다. 잠시 후 컵 속의 흰 가루들이 물을 흡수하며 한껏 부풀어올랐고, 약 10초가 지나자 컵을 기울여도 떨어지는 것이 없었다. 젤 형태로 변한 가루들을 만져보니 축축하지 않고 보송보송했다.

연구원은 "SAP 소재는 자체 용량의 500배까지 물을 흡수해 유아용 기저귀나 애완용 동물의 패드로 많이 쓰인다"고 말했다. LG화학은 연산 36만톤의 SAP 생산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날 매출 20조원이 넘는 LG화학 싱크탱크인 기술연구원을 가보니 첫 인상은 '대학 캠퍼스'와 같은 모습이었다. 축구장 40배 크기인 30만 제곱미터(약 8만7000평)의 드넓은 부지 가운데 호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지상 4층 규모 본관동과 생명과학·기초소재·배터리·재료 등 총 7개의 연구동이 마련돼 있다.

LG화학 대전 기술연구원 전경./사진제공=LG화학

하지만 내부 곳곳을 살펴보니 3800명의 연구원(박사급 연구원 전체 20%)들은 각자 실험실에서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처음 찾은 4연구동에서는 LG화학이 특허를 획득한 배터리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 기술 실험이 진행 중이었다. SRS 기술은 배터리 양극과 음극 간의 내부단락을 방지하기 위해 분리막의 표면을 '세라믹 소재'로 코팅해 안전성을 대폭 높인 것이다.

LG화학 기술연구원 4연구동에서 진행된 배터리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 실험 광경. 150도의 가열기에 일반 분리막(왼쪽)을 올리자 순식간에 쪼그라든 반면, SRS 분리막은 원 상태(오른쪽)를 유지하고 있다./사진제공=LG화학

연구원이 150도로 뜨거워진 가열기에 일반 분리막을 올려놓자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반면 SRS 분리막은 평평한 원래 상태를 그대로 유지했다. 해당 분리막이 적용된 배터리는 150도에서도 양극과 음극을 분리할 수 있어 안전성이 유지되는 것이다.

이제안 연구원은 "배터리 안전성을 결정짓는 SRS 기술은 LG화학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라며 "글로벌 완성차 업체인 볼보, 아우디, 르노 등의 배터리 공급업체로 선정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LG화학은 지난해 9월 기준 총 30여개의 글로벌 자동차 업체로부터 프로젝트 82개를 수주한 바 있다.

발걸음을 옮겨 기술연구원 1연구동으로 향하니 다양한 의약품 연구개발 실험이 진행되는 생명과학연구소가 위치해 있었다. 2층에 위치한 제품연구센터 실험실에서는 작은 기계들이 쉴새 없이 수많은 알약을 만들고 있었다.

LG화학 기술연구원 연구원들이 백신평가를 위한 분석시험을 하고 있다./사진제공=LG화학

윤덕일 연구원은 "LG화학이 만든 의약품이 체내에 효과적으로 흡수될 수 있도록 약의 형태와 크기를 결정하는 연구를 한다"고 말했다. 연구실 한켠에서는 실제 사람의 위로 들어갔을 때 어떻게 용해되는지를 분석하는 실험도 진행되고 있었다.

합성신약 연구개발을 위한 지하 1층 분석센터는 연구원들이 연구부터 임상까지 10년이 넘는 '인고'의 시간을 견디는 곳이다. 이 중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신약개발 과정에서 합성된 수많은 물질을 보관하는 '케미컬 라이브러리(화학 도서관)'를 찾았다. 케미컬 라이브러리에는 1994년부터 축적된 화합물 13만 종이 보관돼 있다.

김회숙 연구원은 "케미컬 라이브러리의 데이터베이스가 많을수록 새로운 물질을 합성할 때 시행착오와 개발 기간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LG화학 기술연구원 연구원들이 배터리 성능 및 품질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사진제공=LG화학

LG화학 기술연구원의 경쟁력은 '오픈이노베이션(개방적 혁신)'이다. 500여개의 연구과제를 다루는 300개 연구팀들은 하나의 프로젝트가 생길 때마다 새로운 가상 조직을 구성한다. 실제 '전동공구용 원통형 배터리'를 개발할 당시 각기 다른 부문 전문가들이 모여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기도 했다.

LG화학은 올해 사상 최대치인 1조원을 투자해 미래 기술을 위한 연구·개발(R&D)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세계 각국의 무역장벽이 높아지고 중국과의 기술 격차가 줄어드는 불확실한 경영환경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기술력뿐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날 기술연구원을 찾은 박진수 부회장은 LG그룹 창업주인 고(故) 연암 구인회 회장의 '남이 미처 안하는 것을 선택하라'는 말을 재차 강조하며 "결국 남들이 쫓아오지 못하는 기술을 만들어 내는 것 말고는 방안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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