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거제와 울산, 떠났던 배가 돌아온다

거제·울산·통영=안정준 기자
2019.02.04 06:00

거제·울산 조선소, 지난해 수주물량 기대로 활기…지역 상권 온기는 '아직'

지난달 30일 대우조선 옥포조선소에서 직원들이 LNG운반선 건조 막바지 작업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대우조선은 전 세계 발주된 LNG 운반선의 약 30%를 수주했다./사진=안정준 기자

#지난달 30일 경남 거제대우조선해양옥포조선소. 건조 중인 거대한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19척이 도크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작업자들은 조업에 여념이 없었다.

#31일 울산현대미포조선야드도 마찬가지였다. 선주에게 곧 인도될 LEG(액화에틸렌) 운반선 한 척이 불을 환히 밝히고 정박해 있었다. 4개의 도크에는 PC(석유화학제품)운반선과 로로선(자동차·컨테이너운반선) 등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거제와 울산에 떠났던 배가 돌아오고 있다. 지난해 7년 만에 세계 수주 1위를 탈환한 한국 조선업계의 활력은 현장 곳곳에 배어났다. '빅3'(현대중공업, 대우조선,삼성중공업) 체제가 '빅2'로 재편되는 거대한 판도 변화를 눈앞에 둔 거제와 울산이었지만, 현장은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31일 울산 현대미포조선에 선주에게 곧 인도될 LEG(액화에틸렌) 운반선 한 척이 정박해 있다./사진=안정준 기자

엄밀히 말하면 현재 현장에서 건조 중인 배는 지난해 수주한 물량이 아니다. 수주한 배가 기자재 준비 등 과정을 거쳐 건조에 돌입하는 시점은 1~2년 후. 그러니까 지난해 확 늘어난 수주 물량으로 조선소가 본격적으로 바빠질 시점은 올해 말 부터다.

하지만 2016년 전후로 시작된 불황을 끊고 곧 조선소에 돌아올 배를 기다리는 현장의 표정은 밝았다. 구슬땀을 훔쳐내며 "최대한 빨리 배를 만들고 내보내야 곧 들어올 다음 일감을 시작한다"는 옥포조선소 한 직원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다.

한국 조선업 회복의 원동력은 시황이 최악이던 2016~2017년에 수주했던 물량을 건조 중인 현장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지난달 30일 건조가 진행중인 LNG선 화물창의 모습. 우리나라 전체 인구가 하루 반 동안 사용할 수 있는 규모의 LNG가 액체 상태로 이곳에 보관돼 운반된다./사진=안정준 기자

건조가 한창인 LNG선 화물창에서 만난 송하동 대우조선해양 LNG생산1부 부서장은 "2000년대부터 쌓아올린 LNG선 효율화 기술이 이제 4세대까지 왔다"며 "불황기에도 현장과 연구소에서의 노력은 계속됐고 이제 글로벌 LNG선 발주 약진 시점에 맞물려 빛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 조선업계는 전 세계에서 발주된 76척의 LNG선 중 67척을 수주했다. 척수 보다 중요한 CGT(선박의 단순 무게에 부가가치, 작업 난이도 등 계수를 곱해 산출한 무게 단위) 기준으로는 전 세계 LNG선의 약 98%를 독식했다.

지난해 동남아시아 LNG 발전 수요 증가와 맞물려 미국의 셰일가스 붐이 시작됐고 선주들은 LNG선 발주를 늘리기 시작했다. 기존의 카타르산 대신 미국산 가스 수요도 늘자 물류거리가 늘었고 이에 선주들은 운항 효율성이 높은 선박을 찾았다. 결론은 한국이었다.

불황에도 기술을 닦아온 한국 업계는 해당 영역에서 이미 '초격차' 역량을 확보해 뒀다. 대우조선이 대표적이다. 대우조선의 LNG선 3대 기술은 '천연가스 재액화장치(PRS)', '고압천연가스 연료공급장치(FGSS)', LNG 화물창 기술 '솔리더스(SOLIDUS)'다.

송 부서장은 "화물창 외벽 기술로 온도와 압력을 최적화해 화물창에서의 LNG 증발률을 최소화하고 PRS를 통해 화물창에서 기화한 LNG를 액화해 다시 화물창으로 돌려보낸다"며 "마지막으로 가스를 고압 처리해 엔진에서 연소시키는 FGSS 기술로 선박 추진 효율성까지 확보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건조가 진행중인 LNG선 화물창에서 만난 송하동 대우조선해양 LNG생산1부 부서장이 LNG선 화물창 외벽에 사용되는 소재 '인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화물창 외벽은 두 개의 인바 사이에 단열재를 삽입해 제작된다. 화물창 온도와 압력을 최적화해 LNG 손실율을 최소화한다./사진=안정준 기자

현대미포조선은 중국의 저가 수주에 몸살을 앓던 중소형 선박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현장 관계자는 "운항 중 자연 기화되는 가스를 연료로 사용할 수 있는 이중연료추진시스템과 추진 엔진을 통해 전력을 생산·공급하는 축발전설비 기술 등으로 운항 효율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조선소 현장은 곧 들어올 일감에 대한 기대로 활기가 넘쳤지만, 지역 상권에는 여전히 찬바람이 돌았다.

거제 대우조선 사원 아파트 맞은편에 위치한 상권은 '옥태원'(옥포+이태원)으로 불린다. 조선 호황시절 대우조선 선주사 소속의 외국인 감독관과 기술자들이 모여들며 불야성을 이루던 유흥지였다. 지난 달 31일 밤 옥태원에서 불빛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31일 밤 거제 '옥태원' 거리에서 불빛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거제 대우조선 사원 아파트 맞은편에 위치한 상권은 '옥태원'(옥포+이태원)으로 불린다. 조선 호황시절 대우조선 선주사 소속의 외국인 감독관과 기술자들이 모여들며 불야성을 이루던 유흥지였다./사진=안정준 기자

이곳에서 10년째 숙박업을 해온 김형자(61·가명)씨는 "지난해 말부터 올해 경기가 가장 좋지 못하다"며 "한창 때 2000명이 넘었던 외국 선주사 관계자들은 지금 500명이 조금 넘을 정도로 알고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늘어난 일감이 조선소에 실제로 들어와 지역 경기에 온기가 돌려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상권은 아직 조선 경기가 최악이던 2016~2017년의 영향권에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동안 조선소와 희비를 함께한 상인들은 이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듯 보였다. 거제 고현시장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이희진(55·가명)씨는 "수주가 크게 늘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장사가 좀 잘된다 싶어지기 까지는 꼬박 1년이 걸렸던 듯 하다"고 말했다.

불황이 할퀸 흔적이 가장 큰 통영에도 시황 회복의 온기는 아직 먼 일처럼 보였다. 이 곳에 자리 잡은 6개 조선소 중 3개가 폐업했으며 나머지는 매각됐거나 매각이 진행 중이다. 통영은 조선소도 상권에도 부활은 아직 남의 일이었다.

현재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인 성동조선 한 직원은 "택시를 타면 요금을 덜 받는 기사님도 계신다"며 "통영이 살아나려면 더 확실한 시황 회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 조선업계의 수주물량은 1263만CGT. 최악이었던 2016년의 6배에 육박하는 물량이지만, 여전히 시황이 고점이었던 2007년의 40% 수준에 불과하다.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