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7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한-스페인 관광산업 라운드테이블. '여행이 재개돼야 경제가 회복된다'고 강조한 문재인 대통령과 동석한 양국 관광 전문가 중 유독 젊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대한항공, 하나투어와 함께 관광벤처 대표로 참석한 정지하 트립비토즈 대표다. '여행 유니콘' 야놀자를 비롯, 시장을 주름잡는 '트래블테크'들이 적지 않은데도 생소한 MZ세대 창업자가 국가대표로 나선 것이다.
여행 후기를 묻기 위해 지난 7일 만난 정 대표의 표정은 상당히 밝았다. 눈물 쏙 빼는 PCR 검사만 6번씩 받아야 했던 스페인 여정에서 사업에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얼떨결에 순방길에 합류해 참석한 라운드테이블에서 논의한 주제가 '지속가능성'이었다"며 "코로나 이전 회사 설립부터 비전으로 삼았던 키워드"라고 웃었다.
트립비토즈는 2017년 설립된 여행 플랫폼이다. 2019년까지 거래액 45억원의 그저그런 관광벤처였지만 지난해 거래액이 12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올해는 750억원으로 퀀텀점프가 예상된다. 최근 시리즈B 투자유치까지 마무리했다. 여행업계에 부는 감원 칼바람 속에서도 직원 수를 100여명 수준으로 늘릴 계획이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관광경쟁력을 보여줄 대표선수로 뽑히기엔 이름값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정 대표는 "나도 아직 의아하다"면서 "정부가 디지털을 접목해 관광산업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니즈가 있는데, 트립비토즈 사업모델을 긍정적으로 본 것 같다"고 말했다.
트립비토즈는 독특한 여행플랫폼이다. 커머스 중심의 기존 OTA와 달리 SNS 성격이 짙다. 인스타그램·틱톡처럼 여행객이 직접 올린 15초짜리 '숏폼' 영상을 보고 서로 감상을 나눈 뒤 예약까지 한다. 매력적인 영상으로 리워드 캐시를 받아 다음 여행 결제에 활용할 수 있다. 당근마켓이나 오늘의집과 묘하게 닮았다.
21세기 여행산업 팽창을 이끈 OTA 사업모델이 모바일 시대와 함께 드러낸 한계가 트립비토즈를 만들었다. 그는 "주요 메가 OTA도 여행 다녀온 사람 90%가 앱을 삭제한다"며 "최저가를 무기로 한 예약 단계의 혁신만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행준비부터 복귀, 다시 떠날 때까지 모든 여행주기에 걸쳐 앱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덧붙였다.
트래픽뿐 아니라 유입된 고객을 '집토끼'로 만드는 생태계 조성을 고민한 것이다. 정 대표는 "여행을 가지 않아도 영상을 통해 경험을 공유하며 캐시를 쌓고 누군가의 눈으로 랜선여행을 한다"며 "요즘 태동하는 '메타버스' 개념과 같다"고 했다. 트립비토즈를 OTA가 아닌 TNS로 정의한 이유다.
정 대표의 청사진은 10여년 전부터 그려졌다. 대기업을 그만둔 뒤 코넬대에 입학해 창업경진대회에서 우승하면서다. 그는 "이 자리에서 익스피디아의 다라 코스로샤히 회장을 만나 OTA 생태계를 이해하게 됐다"며 "3년 간 익스피디아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에서 아고다, 야놀자에 이은 최저가 호텔 인프라를 구축한 것도 새로운 콘텐츠를 접목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향후 10년 간 여행산업의 패러다임이 크게 요동칠 것으로 전망한다. 그는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려면 2~3년이 더 걸릴 것"이라면서도 "트래블버블이 활성화되고 새로운 여행길이 열릴 것이기 때문에 이 시장을 빠르게 진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관광시장의 발전 가능성도 높게 봤다. 그는 "이번 라운드테이블에서 정부 관계자들이 선진국에 비해 다소 취약한 국내 오프라인 관광 인프라의 현실을 인정하고 국가적인 관광 비전으로 온라인 인프라 구축을 통한 메타버스를 제시해 깜짝 놀랐다"며 "관광 유니콘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여행에서 지속가능성은 단순히 비행기 덜 타서 탄소배출을 줄이거나 여행객에 최저가 상품을 제시하는 걸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며 "국내 관광시장에서 지속가능성 키워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 이러한 비전을 선도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