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이라는 불확실성에도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 실적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CSP(클라우드서비스기업)가 최소 1년 이상을 내다보고 계획한 AI(인공지능) 인프라 투자와 계약이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업계 선두를 다투는 'K반도체' 역시 당분간 실적 호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자가 7일 발표한 단일 분기 영업이익 57조2000억원도 글로벌 CSP의 견조한 AI 투자 수요에 힘입은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로 메타·구글 등 글로벌 상위 8개 CSP의 올해 설비투자(CAPEX) 규모는 10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AI가 학습 중심에서 추론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이를 뒷받침할 메모리 반도체(이하 메모리) 수요도 함께 확대되고 있다.
이는 실적으로 확인된다. 지난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6년 3월 수출입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328억3000만달러로 사상 처음 월 300억달러를 넘어섰다. 중동발 위기에도 반도체 수출은 전년 대비 151.4% 증가하며 전체 수출 실적을 견인했다. 업계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 1·2위를 다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역할이 컸다고 보고 있다. 두 회사는 지난해 4분기 기준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약 68%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잇따라 사상 최대 실적을 내면서 '메모리 3사' 중 하나인 SK하이닉스에 대한 실적 기대감도 한층 커지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하이닉스의 올해 1분기 실적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매출이 46조6252억원, 영업이익이 31조5627억원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영업이익이 35조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는 SK하이닉스의 역대 최대 실적인 지난해 4분기 영업이익(19조1696억원)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AI 투자 열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AI 반도체 수요처가 데이터센터를 넘어 피지컬 AI, 첨단 무기 등으로 확장되고 있어서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중동 전쟁에서 지능형 무기체계가 다수 공개된 것은 AI 반도체 수요 확대의 방증"이라며 "사용처가 확대되면서 미국과 중국 역시 반도체 자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동 전쟁에 따른 원자재 수급 차질도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헬륨 공급 업체들은 최소 6개월 분량의 재고를 확보한 상태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도 최근 설명자료를 통해 "헬륨과 브롬화수소 등은 기업별로 복수의 조달 경로를 운영하고 있어 단기적인 수급 불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전쟁 장기화로 인한 AI 투자 위축 가능성은 잠재적 리스크로 거론된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AI 투자의 큰손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의 국부펀드"라며 "전쟁이 장기화돼 국가 재건에 재원이 투입될 경우 AI 투자가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