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사태 2달, 기업이 '대란' 막았다…"지속가능한 제도 개선을"

김도균 기자, 최경민 기자
2026.05.03 15:59
중동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석유 제품 가격이 고공행진하고 있는 3일 서울의 한 주유소에 휘발유, 경유 가격이 표시돼 있다./사진=뉴스1

이란 사태가 2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지만 에너지·석유제품 수급은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다. 호르무즈 리스크의 장기화 우려가 증폭되는 상황에서 기업에 지속가능한 경영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3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이달 국내로 도입될 원유 물량은 약 7462만 배럴로 예상된다. 지난해 월 평균의 약 87% 수준이다. 미국과 아프리카 등에서 대체 원유를 확보하면서 수급 불안이 일정 부분 해소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달 원유 수급에서 중동 의존도는 약 56%로 지난해 평균보다 13%p(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나프타 공급 역시 점차 정상화되는 흐름이다. 정부는 나프타 공급량이 평시 대비 85~90% 수준까지 회복될 것으로 내다봤다. LG화학은 이란 사태 이후 60%까지 떨어졌던 NCC(나프타분해설비) 가동률을 75%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여천NCC(60→65%)와 대한유화(62→72%)도 마찬가지다. LNG(액화천연가스), LPG(액화석유가스) 등은 수입처 다변화를 기반으로 전쟁 중에도 원활한 공급을 진행해왔다.

전우제 KB증권 연구원은 "정부의 뛰어난 외교 능력과 세계 정유 5위국의 원유 구매팀이 지난 60년간 수십개의 판매·해운사들과 성실히 쌓아온 관계 덕분일 것"이라며 "불안한 경제성에도 원유 구매를 진행한 기업 경영진의 판단력, 세계 톱티어 고도화 설비 경쟁력을 바탕으로 경쟁사가 다루기 힘든 원유도 구입 가능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 관계자는 "대한민국은 원유도 가스도 없는 나라"라며 "호르무즈 해협이 막히는 전대미문의 상황 속에서도 에너지 및 석유제품 대란을 겪지 않은 것의 바탕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란 사태라는 위기는 오히려 한국 기업들의 저력을 재확인해주는 계기가 됐다. 예컨대 중동, 아시아, 태평양, 아프리카 지역 가운데 실질적으로 수출 여력이 있는 기업으로 국내 정유4사(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가 부각됐다. 중국(10%)과 인도(19%)와 달리 국내 정유업체들의 수출 비중은 50~70%에 달한다.

전년 동월 대비 원유 도입량/그래픽=김다나

이같은 환경은 '전쟁 중 호실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증권가는 국내 4대 정유사의 올해 1분기 합산 영업이익이 5조원에 근접할 것으로 보고 있다. LG화학 석유화학 부문,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은 모두 흑자로 돌아섰다. 유가와 석유제품 가격이 급등하며 과거 값싸게 들여왔던 원료를 비싸게 가공해 팔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영향이다.

하지만 수급과 실적 모두에서 선방하는 모습이 지속가능한지 여부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일단 호실적의 상당 부분은 재고 평가이익에 기반하고 있다. 지금과 반대로 유가가 하락하기 시작한다면 최근 고가에 확보한 재고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중동 대체 시장에서 꾸준히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다. 여기에 전쟁 장기화로 글로벌 원유 재고가 빠르게 줄고 있다는 점 역시 우려를 키운다. 전쟁이 지속된다면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150~200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및 수출제한 조치가 지속되고 있어 기업이 현재의 경영 기조를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전쟁 후 폭증한 물류비는 2분기부터 본격 부담이 시작될 게 유력하다. 정부 입장에서도 기업에 '조 단위'의 최고가격제 손실액을 보전해줘야 하는 재정적 부담이 존재한다. 전쟁 지속 시 일어날 수급난 본격화와, 유가의 2차 상승 국면 대응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체제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릴 수밖에 없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호르무즈 해협이 조기에 열려도 공급망 재건에는 1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1분기 장부상 호실적과 관계없이 지속가능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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