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하청 노조의 단체교섭 상대방으로 인정받은데 이어 원청 정규직 노조의 파업 절차까지 동시에 개시되면서 유례없는 이중 노조 리스크에 직면했다. 국내 제조업의 기준점 역할을 해온 만큼 그룹 계열사는 물론 조선·철강·반도체 업종으로도 유사한 교섭 요구가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16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울산지방노동위원회는 전날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현대차 하청노조 10개 지회 조합원 1675명의 교섭요구 시정신청을 인정했다. 구내식당·보안·판매대리점 업무 종사자까지 포함된 이번 판정으로 현대차는 하청 노조들과도 교섭 테이블에 앉아야 할 처지가 됐다. 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완성차 업계에서 나온 첫 판단이다.
원청 정규직인 현대차 노조도 파업 수순을 밟고 있다. 현대차 노조(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자동차지부)는 전날 중앙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조정을 신청했다. 중노위가 노사 간 입장 차이가 크다고 판단해 조정 중지 결정을 내리고 전체 조합원 파업 찬반투표가 과반 이상 찬성으로 가결되면 노조는 합법적인 파업권을 확보하게 된다.
노조는 오는 24일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앞서 현대차 노사는 지난달 6일 상견례를 시작으로 11차례 교섭을 진행했지만 핵심 쟁점을 둘러싼 이견을 좁히지 못했고 지난 12일 교섭 결렬을 선언, 파업 수순에 돌입했다. 노조는 올해 임금협상에서 월 기본급 14만96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 지난해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인공지능(AI) 관련 고용 및 노동조건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차 정규직 노조의 성과급 요구는 반도체 업종에서 촉발된 '이익 연동 성과급' 확산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SK하이닉스가 2025년 9월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한 선례를 만든 뒤 삼성전자 노조가 같은 방식의 요구를 내걸며 올해 상반기 내내 교섭 갈등을 빚었다. 이 흐름이 현대차·기아 등 완성차 업종으로 이어지면서 대기업 노사 갈등이 업종 전반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정규직 노조에 이어 하청 노조들까지 교섭 당사자로 합류하면서 노사 교섭에 진통이 예상된다. 통상 정규직 노조와의 임금 교섭만으로도 생산 차질이 불가피했던 상황이었다. 지난해 현대차는 2018년 이후 7년만의 파업으로 사흘간 약 4000억원의 생산 차질을 생겼다. 하청 노조 교섭의 경우 노동위의 세부 판단 근거를 담은 결정문이 공개되기까지 한달 가량 소요돼 그전까지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정의 파장이 현대차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속노조는 이미 현대제철·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현대위아 등 그룹사 전반에도 하청 교섭을 요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 포스코·인천국제공항공사·고려아연·SK에코플랜트·현대엔지니어링 등의 재심 판정이 계류 중이라 업종을 가리지 않는 확산 국면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규직 노조 협상과 더불어 하청 교섭이 본격화하면 의제와 교섭 창구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사측의 협상 역량이 한계에 달할 수 있다"며 "하청노조가 안전 의제 외에도 임금·성과급 등으로 논의 분야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어 최종 판단이 나오기까지 불확실성이 고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