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의존도 낮추자" 핸들 꺾었다...'AI·ESS'로 질주하는 동박업계

김지현 기자, 김남이 기자
2026.06.17 06:00

전기차서 'AI·ESS'로 눈돌리는 동박업계..실적 반등 기대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회로박 생산능력, SK넥실리스 공장 평균 가동률/그래픽=이지혜

전기차 시장 둔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동박업계가 인공지능(AI) 산업 확대에 따른 수혜가 기대된다. AI 가속기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소재인 동박적층판(CCL) 수요가 급증하면서 사업 구조 전환에 속도가 붙고 있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두산 전자BG의 전체 매출에서 하이엔드 CCL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73%에서 지난해 82%로 커졌다. 글로벌 AI 가속기와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하면서 기판 핵심 소재인 CCL 시장이 구조적인 호황 국면에 진입한 영향이다. 글로벌 주요 CCL 제조업체들은 수요 증가에 힘입어 제품값 인상에 나섰으며, 두산의 하이엔드 CCL 가격 역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CCL의 주요 원재료인 동박의 수요도 늘고 있다. 실제로 AI용 회로박을 생산하는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판매량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고객사들의 공급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AI용 회로박을 생산할 수 있는 업체는 5곳 안팎에 불과하지만 글로벌 수요는 2025~2030년 연평균 26%씩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이미 생산능력 확대에 나선 상태다. 기존 동박 생산시설인 전북 익산 공장의 일부 라인을 AI용 회로박 생산라인으로 전환하는 등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회로박 생산능력을 지난해 3700톤에서 내년 1만6000톤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달 자회사 롯데에코웰 매각으로 확보한 자금 역시 회로박 등 고부가가치 제품 투자에 활용할 방침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가 현재 개발 중인 차세대 AI 가속기용 4세대 초극저조도(HVLP) 회로박은 올해 하반기부터 고객사에 공급할 예정이다. 두산 전자BG 등과 함께 엔비디아 차세대 AI 가속기인 '루빈' 공급망에 포함되면서 향후 제품 경쟁력도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전체 매출에서 회로박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9.2%에서 내년 27%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고 있다.

SKC의 동박 자회사 SK넥실리스는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동박 생산에 집중하며 AI 인프라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 1분기 기준 SK넥실리스의 ESS용 동박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5배 가까이 급증했으며, 전체 판매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45%까지 확대됐다. SK넥실리스 공장 평균 가동률은 69.6%로 전년 동기(59.1%) 대비 10%포인트(p) 이상 높아졌다. SK넥실리스는 전북 정읍과 말레이시아 등에서 동박을 생산하고 있다.

AI용 제품을 중심으로 신규 수요가 확대되면서 실적 반등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그동안 북미 전기차 시장 위축과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로 국내 동박업체들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지난해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영업이익은 120억원에 그쳤고, SKC는 305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 폭이 확대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의존도가 높았던 국내 동박업체들이 AI를 새로운 기회로 삼아 턴어라운드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며 "올해부터 수익성 회복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AI 서버용 MLCC 수요 폭발..삼성전기 풀가동에도 공급 부족

삼성전기, MLCC 매출 추이 전망/그래픽=윤선정

AI(인공지능) 서버 수요 증가로 MLCC(적층세라믹커패시터)의 공급난이 심화되고 있다. AI 서버 한 대에 들어가는 MLCC 수가 급증하는데다 고용량·초소형 제품 비중까지 높아지면서 공급 부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주요 업체들이 생산라인을 풀가동하며 증설에 나섰지만 수요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가격 인상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16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JP모간은 최근 삼성전기의 내년 MLCC 매출이 10조669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매출 규모인 5조1980억원과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생산능력 확대에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매출 증가가 현실화되려면 평균판매가격 상승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는게 업계의 시각이다.

MLCC 가격 상승 전망의 배경에는 AI 서버 수요 급증이 있다. MLCC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CPU(중앙처리장치)와 GPU(그래픽처리장치) 등에 안정적으로 공급해 반도체가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돕는 핵심 부품이다. 최신 스마트폰 한 대에는 1000개 이상의 MLCC가 탑재된다.

특히 AI 서버는 일반 서버보다 전력 소비량이 5~10배가량 많아 더 많은 MLCC가 필요하다. AI 서버 한 대에는 보통 2만8000개의 MLCC가 탑재된다. 여기에 GPU 인근의 제한된 공간에 부품을 배치해야 하는 만큼 소형·초고용량 MLCC가 필요하다. 이들 제품은 범용 MLCC보다 가격이 높다.

AI 서버 성능이 고도화될수록 서버 내 전력 밀도가 높아지면서 고부가 MLCC 수요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JP모간은 AI 서버용 MLCC 판매량이 올해와 2027년 각각 전년 대비 2.4배씩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전기는 고성능 제품군을 확대하며 AI 서버용 MLCC 시장에서 약 40%의 점유율을 확보한 상태다.

하지만 공급은 수요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범용 MLCC 생산 비중을 줄이고 고부가 제품 생산을 확대하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생산라인은 이미 풀가동 상태다. 삼성전기는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필리핀 공장 증설을 결정했지만 실제 양산까지는 2년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MLCC 시장 1위 업체인 무라타도 지난달 실적 발표에서 데이터센터 사업 매출을 별도로 공개하며 올해 관련 매출이 전년 대비 84% 증가할 것으로 봤다. 공급 부족이 심화되자 향후 2년간 약 800억원을 투자해 생산량을 연평균 20%씩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MLCC뿐 아니라 반도체 기판 시장도 AI 서버 수요 확대의 영향을 받고 있다. 삼성전기는 고성능 반도체 칩과 메인보드를 연결하는 FC-BGA(플립칩 볼그리드어레이) 주문량이 생산능력을 넘어선 상황이다. LG이노텍도 늘어나는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베트남 반도체 기판 공장 증설을 결정했다. 회사는 반도체 기판 사업이 포함된 패키지솔루션 사업 매출을 2030년까지 3조원 규모로 키운다는 목표다.

업계 관계자는 "범용 MLCC 공급 부족으로 이미 중국과 대만 업체들이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다"며 "MLCC 수요는 앞으로 자율주행차와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시장 성장에 따라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재는 원가 상승분 수준만 가격에 반영되고 있는 고부가 MLCC도 올해 하반기에는 가격 인상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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