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굉장히 새로운 기술이고 '쇼킹'할 기술입니다."
지난 1일 경기도 화성시 현대자동차·기아 남양연구소에서 만난 정필영 현대차 주행성능컨셉개발팀 책임연구원의 눈에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는 "자동차 개발에서 말하는 버추얼은 단순한 3D(차원) 그래픽이 아니다"라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가상환경, 시나리오, 평가 표준이 모두 갖춰져야 제대로 된 가상 검증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실제 차량의 주행 환경과 움직임을 가상공간에 구현해 시제품 없이도 주행 성능을 검증할 수 있는 장비다.
실제로 남양연구소의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는 화면 속 도로를 달리는 장비 수준을 넘어섰다. 270도 곡면 스크린 앞에 놓인 캐빈은 좌우, 앞뒤, 대각선 방향으로 움직이며 차량의 거동을 구현했다. 차선을 바꿀 때는 타이어 마찰음이 들렸고 노면 상태에 따라 승차감도 달라졌다. 차량을 직접 만들지 않고도 주행 성능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동차 개발 방식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직접 탑승해보니 실제 주행에서의 가속과 감속, 앞뒤 움직임, 좌우 흔들림, 노면 요철을 지날 때 느껴지는 위아래 충격까지 생생하게 구현해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제네시스 G80과 동일하게 캐빈 내부를 구성해 마치 차량에 앉아 있는 느낌을 줬다. 정 책임연구원은 "실제 차량처럼 스티어링 휠(운전대)과 시트, 페달을 모두 마운트해 G80에 가까운 감각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현대차·기아는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를 위해 남양연구소 주행시험장을 밀리미터 단위로 스캔해 가상 도로로 옮겼다. 수십㎞에 달하는 도로 정보를 한꺼번에 불러오면 장비 구동이 어려워지는 만큼 가상의 차량이 달리는 위치 주변의 데이터만 실시간으로 불러오는 방식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를 통해 지연 없이 자연스러운 주행이 가능해졌다.
지난 2월부터 가동하기 시작한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의 효과는 개발 기간 단축으로 이어졌다. 기존에는 부품을 제작하고 시험차에 장착한 뒤 도로에서 검증해야 했지만 이제는 부품 특성값을 가상환경에 입력해 바로 테스트할 수 있게 됐다. 정 책임연구원은 "한두달 걸리던 시험도 3일 안에 끝낼 수 있다"며 "짧은 기간에 반복 평가가 가능해 의사결정도 훨씬 빨라졌다"고 소개했다.
이날 방문한 남양연구소의 변화는 단순히 드라이빙 시뮬레이터에만 머물지 않았다. 뒤이어 찾은 디지털 측정 센터(DMC)에서는 차량의 틈새와 단차 등 치수 품질을 데이터로 관리됐다. 차 1대당 약 1000개 포인트가 측정되고 여러 데이터로 완성차 품질까지 예측이 됐다. 한진수 파이롯트품질검증팀장은 "마감 문제 상당수는 치수 불일치에서 발생한다"며 "틈새와 단차는 바람 소리나 누수처럼 차량 정상 운행과도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적층제조솔루션센터에서는 금형 없이 설계 데이터만으로 부품이 제작됐다. 기존의 절삭 가공 대신 재료를 한 층씩 쌓아 형상을 만드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금형 제작에 수개월이 걸리던 부품도 3D 프린팅을 활용하면 며칠 안에 만들 수 있다. 포니 같은 헤리티지 차량 부품 복원부터 단종 모델 부품, 시제품 제작까지 활용 범위도 넓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노바랩은 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시대를 겨냥한 전장 검증 공간이다. 실차가 제작되기 전 제어기와 배선을 먼저 연결한 와이어카로 회로, 통신, 기능, 진단 상태를 확인하는 곳이다. 김상연 파이롯트전장제어개발팀 파트장은 "그룹사와 협력사가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오픈형 플랫폼"이라며 "실차 제작에 앞서 통신 상태나 제어기 간 충돌 등을 미리 발견하고 개선해 SDV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고 했다.
이미 현대차·기아는 실차를 만든 뒤 문제를 찾는 방식에서 벗어나 가상공간과 데이터로 성능과 품질을 먼저 검증하는 개발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드라이빙 시뮬레이터가 그 변화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비다. 미래차 개발 경쟁력이 완성차를 얼마나 잘 만드는지를 넘어 개발 전 과정을 얼마나 빠르고 정교하게 검증하느냐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