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RX사업추진실 신설은 로봇을 단순한 기술 개발 영역이 아닌 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MX(모바일경험), VD(영상디스플레이), DA(생활가전) 등 DX(디바이스경험)부문의 기존 사업부에 이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노태문 DX부문장 겸 대표이사 사장이 RX사업추진실 실장을 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래로봇추진단을 비롯해 로봇사업팀, 삼성리서치 로봇센터 등으로 분산돼 있던 인력과 기능 등이 RX사업추진실 산하로 모인다. 이미 내부 대규모 사내 공모(잡포스팅)를 통해 로봇 개발 인력 충원을 진행 중이다.
(☞본지 7월15일자 1면 보도 [단독]삼성 '미래 경쟁력 양대 축' 키운다..AX·로봇 대규모 인력 충원 참고)
삼성전자가 로봇 사업에 힘을 싣는 배경에는 DX부문의 부진과 로봇 시장의 성장이 동시에 깔렸다. 메모리사업을 중심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내는 반도체 부문과 달리 DX부문은 스마트폰과 TV, 가전 등 주요 사업이 원가부담 확대와 성장 둔화 등으로 적자 위기에 직면해 있다. 회사 안팎에서 새로운 수익원이 필요한 때라는 지적이 나온다.
동시에 로봇 시장의 급성장으로 주요 전자회사들이 본격적으로 로봇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LG전자도 최근 CEO(최고경영자) 직속으로 '로보틱스사업센터'를 신설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지난해 15억 달러(약 2조1000억원)였던 휴머노이드로봇 시장이 2035년 380억 달러(약 56조80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는 로봇 사업 육성을 위해 올해 초부터 미래로봇추진단에 대한 경영진단에 착수했다. 2024년 말 신설된 미래로봇추진단이 출범 1년여 만에 대대적인 조직 진단을 받은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사업화 방향 설정 과정 등에서 회사 내부에서 로봇 AI(인공지능) 분야 핵심 인재로 꼽혔던 권정현 부사장이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
특히 올해 초 미국에서 열린 CES(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에서 보스턴다이나믹스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 시연이 경영진에게 상당한 자극이 됐다고 한다. 이미 내년 CES 공개를 목표로 자체 로봇 개발에 속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내부에서는 사업화를 위해서 아틀라스를 뛰어넘거나 적어도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의 기술력 확보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삼성전자는 우선 사내 사업장에서 실증을 진행한 후 산업·기업용 로봇 시장에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최종적으로 휴머노이드 로봇 등을 통한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시장에 진출한다는 목표다.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로봇이 가장 기술적으로 고도화된 수준이라는 판단에서다. 구미사업장에 데이터 팩토리와 함께 휴머노이드 로봇 생산 기지를 둘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M&A(인수·합병)에도 적극 나설 것으로 본다.
각 분야 최고 전문가도 영입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에서 보스턴다이나믹스 운영 방향과 로봇 전략을 주도했던 이동건 삼성전자 기획팀 부사장은 이번 조직 개편에서 로보틱스 전략팀장으로 선임됐다. 지난 5월 삼성전자에 합류한 이동건 부사장은 중장기 로봇 사업 로드맵 수립을 맡을 예정이다.
아울러 지능형 자율 로봇 시스템과 로봇 제어 분야의 권위자로 꼽히는 김현진 서울대 교수와 로봇 핸드와 조작(Manipulation) 기술 분야에서 세계적 연구 성과를 낸 김의겸 아주대 교수도 RX사업추진실에 합류한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의 로봇 기술이 아직 외부로 공개된 적은 없지만 상당한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며 "우면동 서울R&D캠퍼스에 로봇 관련 연구시설과 실험 공간도 대폭 확충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