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거래판 바뀐다… 뉴노멀 된 장기계약

최지은 기자
2026.08.03 03:54

삼성전자·하이닉스·마이크론, AI 고객사와 다년 계약 확대
공급 안정성 높이고 과잉증설 부담 완화… 다운턴 방어 기대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차세대 AI 가속기의 핵심이 될 'HBM4E 12단' 샘플을 글로벌 고객사에 전격 공급했다고 지난 5월 29일 밝혔다. /사진 제공=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이하 메모리) 시장이 단기가격 중심 협상에서 다년계약 중심으로 재편된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LTA'(장기공급계약), 마이크론은 'SCA'(전략적고객계약)를 앞세워 장기계약을 확대하는 추세다. 이를 두고 업황 변동성을 메모리제조사와 고객이 함께 분담하는 거래방식이 업계표준으로 자리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IB(투자은행) UBS는 지난달 초 발표한 보고서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메모리기업들은 5년 계약을 기준으로 전체 물량의 약 60~70%를 고정가격에 먼저 확정한 뒤 나머지 물량과 가격은 시장 상황에 따라 조정하는 LTA를 채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가 지난달 30일 2026년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공개한 LTA 구조(기본 5년 계약에 매년 협상을 통해 계약기간을 1년씩 연장하는 '롤링' 방식)도 UBS 분석을 뒷받침한다.

이미 아마존·구글 등 글로벌 5대 데이터센터 운영기업들과 협상도 마무리했다. LTA 물량은 삼성전자 생산능력의 60~70% 수준까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메모리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투자위험을 줄일 수 있도록 하한가격이 설정된 것도 눈에 띈다. 김재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LTA를 원하는 고객사가 추가로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계약고객 수도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도 최근 10여개 고객사와 LTA 협상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고객과 제품에 따라 세부조건은 다르지만 계약기간은 통상 5년이다.

송현종 SK하이닉스 코퍼레이트센터 사장은 "LTA는 단순 물량공급을 넘어 중장기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고 고객의 기술 로드맵에 맞춰 차세대 메모리를 개발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크론은 LTA의 일종인 SCA를 통해 다년계약을 확대한다. 메모리 가격의 상·하한선을 미리 설정해 가격 변동폭을 일정 범위에서 제한하는 구조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다년계약이 공급물량 중심이라면 마이크론은 CAPA(생산능력) 자체를 미리 배정하는 방식이다. 마이크론은 데이터센터와 소비자용 기기, 자동차부문에서 총 16건의 SCA를 체결했다. 계약이 모두 반영되면 전체 매출의 50% 이상이 SCA 기반으로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LTA 확대는 메모리제조사의 과잉증설 부담을 줄이고 고객사가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할 수 있게 해 메모리시장의 사이클을 완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이번 계약은 AI(인공지능) 투자확대에 따라 하이퍼스케일러(대형 데이터센터 운영사) 등 고객사들이 먼저 요구한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5년 단위 LTA는 메모리업계의 '뉴노멀'(New Normal)이 됐다"며 "단기가격보다 중장기 공급안정성을 중시하는 거래관행이 자리잡으면서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위험부담을 줄이기 위한 선수금도 계약의 구속력을 높이는 장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메모리 3사 모두 LTA에 선수금을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준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고객사가 계약을 파기하면 다음 메모리 공급부족기에 동일한 조건으로 다년공급계약을 체결하기 어렵다"며 "경쟁사보다 불리한 조달조건에서 경쟁해야 할 가능성이 커지는 만큼 불황기에도 다년공급계약은 상당한 지속성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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