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딩 배우겠다"는 정의선 주문에 현대차그룹 AI 전환 '속도전'

강주헌 기자
2026.08.12 14:25

현대차그룹 AX 성과 발표회…차량식별 판독 AI 하나로 연 52억 절감
직원 3만명 사내 생성형 AI 사용…"중국차보다 긴 차량 개발기간, AI로 줄인다"

12일 양재 본사에서 열린 '현대차그룹 AX 성과 발표회'에서 진은숙 현대차·기아 ICT담당 사장이 발표하는 모습. /사진제공=현대차그룹

"코딩 교육을 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직접 코딩하고 싶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진은숙 현대차·기아 ICT(정보통신기술)담당 사장에게 건넨 말이다. 진 사장은 "회장님까지 코딩하실 필요는 없다"고 만류했지만, 정 회장은 "그래도 경영진이 바이브 코딩을 해봐야 AI(인공지능) 기술을 이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어 교육이 끝난 후 정 회장은 "탑레벨 경영진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술을 이해하는 것"이라며 "이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정확히 구분해야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현대차그룹은 연구개발부터 제조·서비스 현장까지 전 사업 영역에 AI를 적용해 업무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있다. 앞으로는 축적한 데이터와 운영 경험을 토대로 차량과 로보틱스, 제조 현장을 아우르는 피지컬 AI 영역까지 혁신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현대차그룹은 12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본사에서 'AX(AI 전환) 성과 발표회'를 열고 전사 디지털 전환(DX)과 AX 과정, 부문별 성과와 향후 방향성을 공개했다.

성과가 가장 두드러진 곳은 연구개발 부문이다. 지난해 말 남양기술연구소에 도입한 '충돌안전 AI 어시스턴트'는 여러 시스템에 흩어져 있던 과거 충돌시험 결과와 시험 이미지, 해석 자료를 통합 검색하고 유사 사례의 시험 조건, 차량 구조, 상해 원인, 개선 대책까지 비교 분석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자료 탐색과 검토 시간이 약 90% 줄었다.

제조 부문의 'AI 자동화 인식 서비스'는 생산라인 카메라와 비전 AI로 차량 식별번호(VIN)를 자동 판독해 실제 차량과 시스템 정보를 실시간 대조한다. 글로벌 생산거점 약 70곳에 적용됐고 이 솔루션 한 건으로 연간 52억4000만원의 절감 효과를 내고 있다. 강화학습을 적용한 '대차 정렬 최적화 기술'은 불필요한 생산 중단 시간을 약 86% 줄였다. 서비스 부문에서는 '정비 지원 AI 서비스'가 정비 대응 시간을 약 42% 단축했고 '고객 리뷰 대응 자동화 솔루션'은 모바일 앱 리뷰 1건당 처리 시간을 35분에서 5분으로 줄였다.

현대차그룹 DX·AX 진행 과정. /사진제공=현대차그룹

이런 성과의 토대는 AI가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추진해온 DX였다. 2018년 정 회장이 "IT 기업보다 더 IT 기업 같은 회사가 돼야 한다"고 주문한 뒤 현대차그룹은 2022년부터 '지라'·'두레이'·'컨플루언스'와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이크로소프트 365'를 잇따라 도입했다. 이어 '글로벌 원 데이터 파이프라인'으로 연구개발·생산·품질·판매에 흩어져 있던 데이터를 표준화·연결했다.

진 사장은 DX와 AX의 관계를 자율주행에 빗댔다. 그는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차가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것이 AX라면, 차 문을 열고 올라타는 행위가 DX"라며 "차에 타지 않으면 자율주행은 시작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AI를 도입해도 데이터와 업무 체계가 정리돼 있지 않으면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렇게 정리된 데이터 위에서 AX를 확산시키는 도구가 사내 생성형 AI 플랫폼 'H챗프로'다. 보안이 확보된 환경에서 챗GPT·제미나이·클로드 등 외부 모델을 골라 쓰도록 한 플랫폼으로, 지난 7월 기준 이용자가 3만명을 넘어섰다. 올해 초부터는 개발자가 아닌 직원도 직접 AI 에이전트를 만들어 쓰고 있다.

경영층도 예외는 아니다. 이상홍 현대차·기아 정보보안2실 상무는 "회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층이 컨플루언스로 업무 보고를 받는다"며 "PPT를 만들어 보고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프로젝트 진행 현황과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공유한다"고 소개했다.

현대차그룹은 다음 단계로 개별 업무 효율화를 넘어서는 대규모 프로세스 혁신을 준비하고 있다. 여러 부서에 걸친 업무 절차를 통째로 바꾸는 작업이다. 그 대상 중 하나가 차량 개발 기간이다. 진 사장은 "중국차에 비해 개발 기간이 긴 편이라 어떤 요소를 AI로 줄일지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 확보도 진행 중이다. 진 사장은 자율주행처럼 차량 상품성과 직결되는 영역은 AI의 토대가 되는 자체 모델을 확보해야 할 기술로 판단했다. 이를 위해 새만금에 500㎿(메가와트) 규모 부지를 확보해 2029년 말에서 2030년 사이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며, 연산에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는 엔비디아와의 제휴로 필요한 만큼 확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진 사장은 "우리 목표는 AI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회사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AI를 가장 제대로 활용하는 회사가 되는 것"이라며 "AX를 통해 축적한 데이터와 운영 경험, 실행 역량은 머지않아 도래할 피지컬 AI 시대를 준비하는 가장 강력한 기반이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현대차그룹 AX 성과 발표회’에서 (왼쪽부터)장영석 현대차 제네시스고객경험팀 책임매니저, 진은숙 현대차·기아 ICT담당 사장, 이상홍 정보보안2실 상무, 서창윤 웹프론트엔드개발팀 책임매니저가 발표하는 모습. /사진제공=현대차그룹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