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이 설립한 테라파워와의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한미 SMR(소형모듈원자로) 동맹의 선봉에 서고 있다. 'AI(인공지능) 풀스택' 전략 강화, 한국 원전 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 기회 확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한 수라는 평가다.
SK이노베이션과 테라파워는 지난 14일 나트륨(Natrium) SMR 사업 협력과 차세대 SMR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합의서를 체결했다. 양사는 △테라파워가 미국에 건설중인 SMR 실증로 및 후속 상용 프로젝트의 SK이노베이션 참여 확대 △국내 SMR 공급망 활용 확대 △국내 나트륨 SMR 사업 개발 및 SMR 글로벌 프로젝트 공동 발굴 등에 뜻을 모았다.
SMR은 전기출력 300㎿e(메가와트) 이하급의 원자로다. 건설비용은 대형원전의 30분의 1, 중대사고 확률은 10억년에 1회 수준에 불과하다. 테라파워는 이 중 가장 선도적 기술을 보유한 기업으로 손꼽힌다. 냉각재로 폭발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물이 아닌 소금(나트륨)을 활용해 안전성과 출력 유연성을 극대화한 4세대 SMR인 나트륨을 앞세웠다. 테라파워는 미국 와이오밍에서 나트륨 SMR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2030년쯤 상용화가 기대된다.
SK그룹은 SMR을 통해 최태원 회장이 독려하고 있는 'AI 풀스택' 전략의 완성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SMR을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장의 기반 전력원으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 SK하이닉스의 AI 반도체, SK텔레콤의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 SK이노베이션의 LNG(액화천연가스)·전력·SMR, SK온의 ESS(에너지저장장치) 배터리를 연결할 경우 AI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반도체·데이터센터·전력·저장장치 공급망을 그룹 차원에서 구축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과 SK㈜가 2022년 테라파워에 총 2억5000만 달러를 투자해 2대주주에 이름을 올린 이유다.
테라파워 입장에선 가장 믿을 만한 SMR 파트너를 확보한 모양새다. 크리스 르베크 테라파워 CEO(최고경영자)는 지난해 9월 머니투데이와 인터뷰에서 "미국과 한국과 같은 동맹국들이 중국과 러시아와 같은 국가에 원자력 분야의 리더십을 넘겨서는 안 된다"고 했었다. 미국 입장에선 비중국 국가 중 가장 원전 제작 및 운영 경험이 풍부한 한국과 협업을 통해 원자력 패권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실제 테라파워는 한국을 대표하는 에너지 기업인 SK와 동맹을 발판으로 한국수력원자력 및 원전 기업들과 관계를 확대해왔다.
최태원 회장과 게이츠 이사장 간 접점도 더욱 넓어지고 있다. 게이츠 이사장 입장에선 최 회장이 에너지 사업개발과 글로벌 프로젝트 수행 능력을 갖춘 것은 물론, 한국의 제조업 생태계를 연결해줄 수 있는 파트너다. 지난 13일 방한했던 게이츠 이사장은 양사 간 합의서 체결 이후 최 회장과 만찬 자리를 갖고 △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대응 △차세대 원전 산업의 발전 방향 △한·미 원자력 협력 가능성 등에 대한 아이디어를 교환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8월에도 서울에서 회동했었다.
재계는 게이츠 이사장의 차세대 원전 기술, 최 회장의 에너지·사업개발 전략, 그리고 한국 기업들의 원전 건설·제조 역량이 연결될 경우 시너지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AI·에너지 시장에 진입하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기대감 역시 분명하다. 재계 관계자는 "초기에는 LNG 발전과 ESS를 통해 신속하게 AI 전력 수요에 대응하고, 중장기적으로 SMR을 도입해 안정적인 무탄소 전원을 확보하는 모델을 생각할 수 있다"며 "국내 기업들에 글로벌 SMR 시장의 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