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인공지능)·B2B(기업간거래)·China(중국)
유럽 최대 가전·IT(정보기술) 전시회 'IFA 2026'을 관통하는 세 가지 키워드다. AI는 사용자의 명령을 기다리는 데서 벗어나 일상을 이해하고 먼저 행동하는 단계로 진화하고, 전시장은 B2B 고객과 만나는 '비즈니스 무대'로 변모하고 있다. 전체 참가 기업의 절반에 육박하는 중국 기업의 공세도 거세다.
102주년을 맞은 IFA는 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개막한다. 올해 '미래는 지금(The Future Is Now)'을 주제로 전 세계 49개국 1900개 이상의 브랜드가 참가한다. 주최 측은 140여개국에서 22만명 이상이 전시장을 찾을 것으로 예상한다.
LG전자는 약 3745㎡ 규모의 전시 공간에서 '당신에게 맞춘 혁신'을 주제로 150여 개 핵심 제품을 선보인다. 전시의 중심은 차세대 AI홈이다. AI홈 허브 'LG 씽큐 온'과 AI홈 플랫폼 'LG 씽큐'를 중심으로 집 안 공간과 가전, 서비스를 하나로 연결한다.
특히 사용자의 상황을 파악해 필요한 기능을 먼저 제안·실행하는 AI 에이전트 '씽큐 클로(ThinQ Claw)'를 처음 선보인다. 씽큐 온에 탑재돼 사용자와 대화하고 웹 검색과 캘린더 등 외부 서비스와도 연동한다.
'TV를 꺼줘'라는 명령을 수행하던 AI가 '여행을 가니 TV를 끌까요?'라고 먼저 묻는 단계로 진화한 셈이다. 사용자의 캘린더에서 여행 일정을 확인하면 에너지 절약을 위해 조명과 TV를 끄고 자동화 기능을 중단할 것을 제안하는 식이다.
LG전자는 2024년 인수한 앳홈의 스마트홈 플랫폼 '호미(Homey)'도 활용한다. AI가전과 냉난방공조(HVAC), 태양광, ESS 등을 연결해 집 전체의 에너지 흐름을 관리하는 홈에너지관리시스템(HEMS)을 선보인다.
삼성전자도 'AI 리빙(AI Living)'을 제시한다. '당신의 AI 일상 동반자'를 주제로 가전과 스마트 기기를 연결하는 것을 넘어 AI가 개인의 생활 방식과 필요를 파악해 여가와 건강관리 등 일상 전반을 지원하는 경험을 선보인다.
2026년형 TV에는 대화형 AI를 기반으로 개인화된 콘텐츠와 상황에 맞는 정보를 제공하는 '비전 AI 컴패니언'을 적용하고, 비스포크 AI 패밀리허브 냉장고는 카메라로 식재료를 인식해 레시피를 추천한다. 벤자민 브라운 삼성전자 유럽총괄 최고마케팅책임자(CMO)는 "AI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IFA에서 AI 못지않게 두드러지는 변화는 B2B다. 기업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신제품을 보여주는 데서 벗어나 유럽에서 실제 사업 기회를 만드는 데 전시 역량을 집중한다. IFA 자체도 브랜드와 유통업체, 소비자가 한자리에 모여 실제 거래가 이뤄지는 '딜 메이킹 플랫폼'으로 전시회의 역할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LG전자는 전체 전시 공간의 46%를 비즈니스 파트너 전용 상담 공간으로 꾸린다. 역대 최대 규모다. 전시 공간의 절반 가까이를 유럽 유통업체와 B2B 고객을 만나는 공간에 할애하는 셈이다.
AI홈도 B2B로 확장한다. B2B 통합 관리 솔루션 'LG 씽큐 프로(ThinQ Pro)'를 통해 빌딩과 오피스의 가전, HVAC, 에너지 설비 등을 통합 관리한다. 호미 기반 HEMS 역시 향후 유럽 다세대 주택 건설사 등을 겨냥한 B2B 솔루션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유럽 주거 환경을 겨냥한 빌트인 가전 신제품을 첫 공개하는 것도 B2B 전략과 맞닿아 있다.
삼성전자는 아예 전시 장소를 바꿨다. 1991년 IFA 첫 참가 이후 처음으로 메인 전시장인 메세 베를린을 벗어나 도심의 '훔볼트 카레'에 별도 공간을 마련했다. 유럽 주요 유통 파트너와 B2B 고객, 미디어와의 교류에 더 집중하기 위해서다. 전시 공간에서는 유럽 시장을 겨냥한 빌트인 가전에 힘을 줬다.
대신 메세 베를린에서는 '삼성 크리에이터 허브'를 운영한다. 도심에서는 거래선과 B2B 고객을 만나고 메인 전시장에서는 크리에이터를 통해 소비자와 접점을 넓히는 '투트랙' 전략이다.
중국 기업의 존재감도 더욱 커진다. 올해 IFA에 참가하는 중국 기업은 900곳을 넘어 전체 참가 기업의 절반에 육박한다. 단순한 '물량 공세'를 넘어 AI·프리미엄 가전으로 전선을 넓히고 있다. 특히 중국 휴머노이드 로봇의 공세가 두드러진다.
하이센스와 TCL은 대형 TV와 스마트홈 기술을 앞세우고, 로보락·에코백스·드리미 등은 로봇청소기 신제품을 선보인다.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도 로봇청소기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한·중 업체 간 경쟁도 한층 치열해졌다. 여기에 유니트리와 애지봇, 딥로보틱스, 엔진AI 등 로봇 기업도 대거 참가한다.
샤오미는 올해 처음으로 IFA에 전시관을 연다. 약 3300㎡ 이상의 전시 공간에서 스마트폰 등 개인용 기기부터 스마트홈, 스마트 모빌리티까지 380여 종의 제품을 선보인다. 샤오미가 해외에서 마련한 전시관 가운데 최대 규모다. 휴머노이드 로봇 '사이버원(CyberOne)'도 시연한다.
중국의 추격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AI 경험과 B2B, 고효율·프리미엄 제품으로 차별화를 서두르는 배경이기도 하다. 밀레·지멘스·보쉬 등 독일 가전 기업들도 신제품을 앞세워 안방 시장 지키기에 나선다. 레이프 린드너 IFA 매니지먼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월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세계 최고의 혁신기업"이라면서도 "샤오미 등 중국 기업들이 보여주는 혁신도 만만찮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