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엔 "새벽배송 줄인다"...이번엔 대형마트 규제 완화? 업계 '혼선'

유엄식 기자, 하수민 기자
2026.02.05 15:10

민노총, '오전 0~4시' 배송 금지 제안...고용부 "과로사 인과관계 있다" 연구용역 결과 제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완화 지속 요청...전 정부 규제 완화 뒤집기 입법안도 수두룩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 하역장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당정이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업체의 영업시간 규제를 완화해 쿠팡, 컬리 등 이커머스(전자상거래)처럼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으로 알려지자 업계에선 기대감과 의구심이 동시에 제기된다. 불과 한 달 전까지 민주노총의 제안을 받아들여 새벽배송 근로시간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었는데, 이와 전혀 결이 다른 정책을 추진해서다.

5일 정치권과 유통 업계에 따르면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2월 새벽배송 기사들의 과로사 위험을 입증하기 위한 연구용역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쿠팡(주간 4명, 야간 8명) 컬리(야간 2명) 소속 14명의 배송 근로자에 대한 심박수와 노동강도를 측정해 적정 노동시간을 산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야간 택배기사의 노동 강도가 주간 기사에 비해 높았다. 심장에 무리를 주지 않는 선에서 일해도 되는 심야배송 한계(최대 허용) 노동 시간은 일평균 5.8시간으로 측정됐다. 새벽배송이 근로자의 과로사 위험을 높인다는 주장을 뒷받침한 결과였다.

보고서는 이를 근거로 새벽배송 근로자의 하루 근로시간을 8시간, 주 40시간으로 제한하는 정책을 제안했다. 업계에선 이를 민주노총이 제안한 오전 0시~4시 심야배송 금지 주장에 힘을 실기 위한 행보로 해석했다.

이런 가운데 대형마트와 SSM 업체의 새벽배송을 허용하는 정책을 추진하자 업계에선 진정성에 의구심을 제기한다. 한 대형마트 업체 관계자는 "새벽배송 영업시간 규제를 풀면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긴다는 측면에서 좋은 소식이지만, 아직 법제화 전이어서 조심스럽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쿠팡과 컬리 근로자만 새벽배송 근로시간을 줄이자는 건지, 대형마트는 어떤 기준으로 운용하라는 건지 혼란스럽다"고 했다.

서울시내 한 전통시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소비자 구매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르면 대형마트 휴업일에도 전통시장에서의 소비는 늘어나지 않았다. 2022년 주말 식료품 구매액 분석 결과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일요일) 전통시장의 평균 식료품 구매액은 610만원으로 대형마트가 영업하는 일요일(630만원)에 비해 낮았다. /사진제공=뉴시스

여권은 대형마트 업계가 지난 수년간 요청했던 월 2회 의무휴업일 규제 완화 방안에 대해선 오히려 규제를 강화하는 입법안을 제시한 바 있다.

지난 정부에서 각 지자체 조례 개정을 통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을 일요일·공휴일에서 평일로 바꿀 수 있게 규제를 완화했다. 이에 따라 현재 서울 서초구, 부산, 대구 등 76개 지자체에 있는 대형마트는 평일에 문을 닫는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여당을 중심으로 이 정책을 되돌리는 규제 강화 입법안이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을 앞둔 지난해 3월 발표한 '민생분야 20대 의제'에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규제 완화를 막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포함했다. 공휴일 휴무 원칙이 지켜져야 근로자 휴식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의무휴업일을 일요일·공휴일로 의무 지정토록 규정한 입법안이 22대 국회에선 10개 이상 발의됐다. 민주당과 범여권 인사들이 공동 발의한 법안이 대부분이다.

이런 전례가 있고, 이번 정책 발표 후 소상공인연합회를 비롯한 관련 단체의 반발도 커지고 있기 때문에 대형마트 업체들은 일단 관망하는 분위기다. 당장 정책이 바뀌고 새벽배송 규제가 풀릴 것이란 기대감은 높지 않다.

정책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면 기업들이 과감한 투자를 통한 성장 전략보다 현상 유지를 위한 보수적인 경영에 방점을 둘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쿠팡처럼 '계획된 적자'에 기반한 대규모 투자는 사실상 불가능하단 게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정책 불확실성이 이커머스 쏠림과 일부 기업의 독과점 현상을 오히려 심화시킨다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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