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국제유가 고공행진에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주간거래 장중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서자 유통업계에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될 경우 국내 경기침체와 소비위축이 더욱 심각해져 업계에 큰 타격이 우려된다.
16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원 환율은 전 거래일 오후 3시30분 종가 대비7.3원 오른 1501.0원으로 출발했다. 주간거래에서 환율이 1500원을 넘긴 것은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12일(장중 고가 1500원) 이후 처음이다.
유통업계에선 달러 기반 결제 구조인 면세점이 가장 큰 피해를 받을 것으로 본다. 따이궁(중국 보따리상) 거래 감소로 매출이 줄어든 상황에서 고환율에 따른 가격 경쟁력 약화로 내국인 고객까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져서다. 공항면세점 뿐 아니라 시내면세점도 매출 타격이 우려된다. 롯데면세점은 현재 원달러 환율 1400원으로 설정한 환율보상 프로모션 기준을 상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신세계면세점은 가격 경쟁력이 약해진 면세 쇼핑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쇼핑 플랫폼으로 인식되게 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대형마트들은 직수입 신선식품 등 가격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고, 비용이 적게 드는 것으로 대체하고 있다. 이마트는 대형마트 최초로 선보인 칠레산 '태평양 참고등어' 물량 비중을 전체 수입량의 20~30%대로 늘릴 계획이다. 환율 급등으로 수입가격이 치솟은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대체하기 위해서다. 롯데마트도 미국산 대비 시세가 10% 가량 저렴한 캐나다산 소고기 물량을 확대하고, 노르웨이산 연어를 대체하기 위해 국내산 양식 연어 수급 물량을 늘리기로 했다.
식품업계도 비상이다. 가공 식품의 주요 수입 원·부재료는 수입 돈육과 농수산물 등이기 때문이다. 환율이 오르면 앉은 자리에서 수십억 혹은 수백억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CJ제일제당과 대상, 농심 등 주요 식품업체들은 고유가와 고환율이 지속될 경우 영업이익이 계속 줄어 경영상 큰 손실을 입는다. 이들 기업은 해외수출 물량과 고부가가치 상품 확대, 비용 효율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물가를 관리하는 와중에 고유가·고환율로 가격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점이다. 주요 식품업체들은 지난 12일 라면과 식용유 등 제품의 가격을 인하했다.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맞춰 일단 가격을 낮췄지만 고환율 탓에 비용 부담이 이어질 경우 이를 어느 수준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업계 관계자는 "원/달러 환율 1500원은 유통업계가 버틸 수 있는 심리적 마지노선인데, 여기서 더 오르면 업계에 큰 피해가 올 것"이라며 "물류 효율화를 비롯해 원가구조 개선 등으로 각종 비용을 줄여야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수입 패션·명품 업계는 단기 충격이 크지 않다는 분위기다. 현재 주력 판매 중인 봄·여름(SS) 시즌 상품은 지난해 말 대부분 입고를 마쳤고, 기존 계약 환율로 정산이 끝났기 때문이다. 올해 하반기 판매할 예정인 FW(가을겨울) 시즌 상품도 대체로 구매 계약을 마쳐 당장 수익성이 악화할 수준은 아니라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전쟁 장기화로 고환율 구조가 고착화될 상황에도 대비해 환 헤징 전략을 조정하는 방안도 염두에 둔 상태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