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그룹이 그룹 컨트롤타워인 경영전략실 수장을 전격 교체하고, 향후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예고한 것은 정용진 회장의 '결단'이란 해석이 나온다. 정 회장이 주력 신사업으로 심혈을 기울인 AI(인공지능) 분야에서 주요 업체와의 협업이 무산되는 등 의사결정 구조에 문제가 나타나자 직접 '대수술'에 나섰다는 것이다.
신세계그룹은 지난달 29일 오후 임영록 사장의 경영전략실장 겸임을 해제하고, 신세계프라퍼티 대표직만 수행하는 원포인트 인사를 단행했다. 경영전략실은 조직 개편을 마치고 후임 실장을 선임하기 전까지 정 회장을 중심으로 운영한다.
신세계그룹 경영전략실은 총수 일가의 보좌를 비롯해 그룹 계열사의 경영과 사업, 재무, 인사, 홍보 등을 총괄하는 요직이다. 그룹 실무선에선 사실상 최종 결정권자인 셈이다. 임영록 사장은 앞서 CJ그룹과의 유통·물류 협력 등 굵직한 현안 실무를 진두지휘했다.
경영전략실은 2023년 말 정기인사에서 기존 전략실을 개편한 조직이었다. 2016년부터 그룹 부동산 개발 계열사 신세계프라퍼티 대표를 역임해온 임 사장은 이때부터 약 2년 반 동안 경영전략실장을 겸임해왔다.
경영전략실은 지난해부터 실장을 보좌하는 부사장급 경영총괄과 경영지원총괄이 잇따라 교체됐다. 지난해 5월엔 그룹 실세였던 김민규 경영지원총괄이 교체됐고, 그 바통을 이어받은 김수완 부사장은 최근 권한을 줄여 대외협력본부장을 맡겼다. 이번엔 조직의 최상단인 임 사장까지 교체한 것이다.
업계에선 그룹의 새 먹거리인 AI 사업 문제로 진통을 겪은 게 이번 조직 개편을 촉발한 결정적 배경이란 해석이 나온다. 사업 파트너를 놓고 그룹 내 전략 방향이 엇갈리면서 정 회장에게 부담을 안겼다는 이유에서다.
신세계그룹은 지난 3월16일 미국 기업 리플렉션 AI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국내 최대 규모인 250MW(메가와트) 규모의 AI 데이터센터를 짓는 프로젝트를 위해 손잡았다. 중장기적으로 10조원 이상 투입하는 초대형 사업으로, 신세계가 유통에서 AI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히는 신호탄이었다. 정 회장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협약식에 직접 참석했고 이 자리에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도 참여해 한미 경제동맹 강화에도 기여할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신세계그룹은 이어 지난달 6일 챗GPT 개발사 오픈AI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AI 커머스 도입, AI 쇼핑 에이전트 개발 등을 협력하기로 했다. 당시 신세계그룹은 챗GPT 내에서 이마트의 모든 상품을 검색하고 결제와 배송을 아우르는 완결형 AI 커머스 모델을 2027년까지 선보이겠다고 구체적인 로드맵을 밝혔다.
하지만 이후 11일 만인 지난달 17일 신세계그룹은 AI 커머스 분야 사업 파트너를 리플렉션 AI로 변경한다는 내용을 발표하면서 오픈AI와의 협업 중단을 공식화했다. 이 결정의 배경엔 리플렉션 AI 측의 강력한 항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세계가 최종 사업 파트너로 리플렉션 AI를 선택한 것은 정 회장과 각별한 관계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가 리플렉션 AI 협업 과정에 도움을 준 것이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이 그룹 컨트롤타워인 경영전략실을 없애고, 직접 지휘하는 형태는 오래가지 못할 것이란 게 중론이다. 오너를 보좌하는 실무 최종 책임자 역할은 필수적이어서다. 신임 경영전략실장엔 내부 인사를 발탁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직급과 전략실 경험 등을 고려하면 한채양 이마트 대표 등이 후임자로 거론된다.
한편 그룹 안팎에선 최근 정 회장과 각종 현안을 심도있게 논의하는 핵심 인사들도 거론된다. 대표적인 인물은 박병은 1789파트너스 대표다. 미국통으로 알려진 그는 트럼프 주니어와 연계된 미국 벤처캐피탈 1789캐피털의 아시아 지역 투자를 총괄하는 1789파트너스 초대 대표를 지난해 7월부터 맡고 있다. 1789파트너스 사무실은 정 회장 집무실과 그룹 경영전략실이 위치한 강남구 센터필드에 함께 있다.
박 대표는 정 회장과 함께 지난해 9월 미국 정치후원단체 록브리지네트워크 코리아 이사진에 참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 지마켓과 알리익스프레스 합작법인(JV) 그랜드오푸스홀딩스의 사내이사로 합류했다. 현재 그랜드오푸스홀딩스 이사회 의장은 정 회장이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