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류의 음악]콘서트홀에 피어난 자연의 속삭임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숙명여대 교수
2021.09.03 02:06

노승림 음악 칼럼니스트겸 숙명여대 교수

노승림 숙대 교수

올여름은 청각적으로 유난히 괴로웠다. 굳이 따지자면 사달의 원인은 코로나19(COVID-19)였다. 거리두기로 다들 '집콕'을 반쯤 강요당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그들의 보금자리로 향하기 시작했다. 인테리어 사업이 뜬금없는 성수기를 누린다더니 우리 아파트에도 전면적인 내부공사를 시작한 이웃이 등장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 방 에어컨이 노화를 견디지 못하고 사망했다. 코로나19에도 온갖 잡무로 밖으로 싸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던 에어컨의 주인은 수리할 타이밍을 놓치고 매일 밤 절망하며 창문을 열어놓고 잠을 청했다. 이웃의 공사는 생각보다 스케일이 컸다. 이른 아침부터 요란한 드릴소리, 무엇인가 때려부수는 굉음, 인부들의 고함소리가 창문 너머로 쳐들어와 열대야에 허덕이며 새벽에야 간신히 선잠이 든 나를 깨웠다. 소음에 놀란 외래품종 매미들마저 우악스러운 비명을 질러대며 경쟁에 참여했다. 어느 날은 불가항력으로 눈뜬 김에 시차 때문에 연락을 놓친 유럽 친구와 오랜만에 전화통화를 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각종 소음에 그는 안쓰럽게 말했다. "안 됐네요. 여기는 아침에 새소리밖에 안 들리는데."

잠이 덜 깬 몽롱함 속에서도 살짝 약이 오르다 문득 깨달았다. 새 소리를 들은 게 언제더라. 이 도시에 새가 없지는 않을 텐데. 그제야 돌아보니 까치며 비둘기며 언제부터인가 도시의 일원이 된 까마귀들이 나름 제소리를 내고 있었다. 한강 주변 풀숲에서는 나름 '지저귄다'는 낭만적인 표현이 어울리는 이름 모를 아름다운 새소리도 들려왔다. 과거에는 자연스럽게 인간의 삶의 일부를 차지했을 이 소리들이 지금은 의식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도시라는 문명이 발생한 이후 우리는 그 소리를 듣고 보는 능력을 상실했다. 눈을 밟는 소리, 계곡에 울려 퍼지는 물소리, 동물들이 갈대 사이를 오가는 미세한 소리들은 각종 건물과 기계와 인간이 내는 인공적인 소음에 잠식됐다. 그 소리의 파동은 여전히 존재하겠지만 듣기 위해서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두더지가 구멍 파는 소리에 위로를 얻는 중풍 걸린 노파 이야기를 쓴 투르게네프나 희미한 꿀벌의 날갯짓 소리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는 베르길리우스 같은 작가는 우리 시대, 적어도 도시에서는 더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다.

8월의 마지막 목요일(26일), 공연장에서 의식하지 않았는데 새소리가 들려왔다. 이날 공연의 주인공 피아니스트 김태형이 유럽에서 직접 녹음해온 검은지빠귀 새의 울음으로 뮌헨에 살던 시절 봄부터 초여름 사이 그의 창가에서 아침마다 지저귀곤 했다고 한다. 금호아트홀 '피아니스트의 노트' 시리즈 중 하나였던 이날 공연에서 김태형은 이 소리에 영감을 얻어 늦여름의 숲속을 콘서트에 옮겨오고자 했다. 뮌헨의 새소리를 이어받아 공연이 시작된 뒤에는 라모의 '새들의 지저귐' '암탉'과 같이 음표로 표현된 새의 노래가 피아노에서 흘러나왔다. 라벨의 '물의 유희', 생상스의 '백조', 드뷔시의 '영상'은 호수와 달, 밤의 이미지를 소리의 파동으로 전달했다. 연주 내내 무대 벽면에는 연주자가 직접 촬영해온 숲과 호수의 동영상 이미지가 출렁였다. 산업화와 인공적인 소음에 감금된 도시인들에게 이런 콘서트는 숲과 자연을 소리로 상상할 수 있는 판타지의 창문이다. 자신을 과시하기보다 스스로 그러한 이미지의 일부로 녹아들어간 피아니스트의 겸손한 연주는 청중 모두를 온전히 그 상상의 전원에 침잠할 수 있게 도와줬고 그에게 위로를 받았다. 우리가 무엇을 잃고 살아가는지 되새기게 해주는 이런 아티스트.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소중한 존재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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