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바람은 차고 아침 공기는 싸늘하지만, 버드나무 가지 끝은 이미 푸르스름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 봄이 왔음을 느낄 수 있다. 자연은 언제나 봄의 시작을 빠르게 알려주곤 한다. 나무는 겉으로는 아직 겨울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이미 봄 준비로 한창이다.
최근 바이오 산업을 바라보며 나는 이 버드나무를 떠올린다. 지난 몇 년 동안 바이오 업계는 분명 긴 겨울의 터널 속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바이오는 많은 기대 속에서 전례 없는 주목을 받았다.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세계 경제와 인류의 운명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바이오 기업들은 투자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팬데믹이 끝나자 상황은 급격히 달라졌다. 글로벌 금리 상승과 유동성 축소, 임상 실패 사례가 이어지면서 바이오 기업들의 주가는 급락했고 투자 시장도 빠르게 얼어붙었다. 많은 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고 일부는 연구개발을 축소하거나 사업 방향을 바꾸어야 했다. 업계에서는 '바이오 겨울(Biotech Winter)'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산업의 계절 역시 자연과 닮아 있다.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봄은 결국 온다.
최근 바이오업계에는 조금씩 다른 기류가 감지된다. 기술과 임상 성과를 갖춘 기업들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의미 있는 데이터가 있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투자자들도 다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알지노믹스와 에임드바이오와 같은 기업들이 좋은 성과를 기반으로 성공적인 상장을 이뤄낸 것도 이러한 흐름의 변화 속에서 읽을 수 있다. 물론 아직 완연한 봄이라고 말하기에는 이르다. 그러나 최소한 시장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는 신호는 분명히 보인다.
바이오 산업의 봄은 단순히 주가가 오르거나 투자가 늘어난다고 해서 완성되지 않는다. 발전된 새로운 봄이 와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혁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냉정하게 질문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바이오 산업이 만들어낸 혁신은 얼마나 되는가?
그동안 국내 바이오 기업들의 전략은 대체로 '빠른 추격'이었다. 해외에서 성공 가능성이 입증된 기술을 기반으로 플랫폼을 조금 더 발전시키거나, 이미 알려진 타깃을 대상으로 후속 약물을 개발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산업 초기 단계에서는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위험을 줄이면서 산업을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벌 바이오 시장에서 진짜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은 추격이 아니라 창조성에 있다. 첫째, 아직 성공하지 못한 질병에 과감히 도전해야 한다. 인류가 정복하지 못한 질환은 여전히 많다. 수많은 영역에서 치료의 공백이 존재한다. 실패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이러한 분야를 피한다면 산업은 결코 세계 수준으로 도약할 수 없다.
둘째, 노블타깃을 찾아야 한다. 신약 개발의 출발점은 결국 질병의 새로운 메커니즘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미 수많은 기업이 경쟁하고 있는 타깃을 두고 뒤늦게 뛰어드는 전략은 제한된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새로운 타깃을 발견하는 순간 비로소 산업의 판이 바뀐다.
셋째, 치료 방식 자체를 바꾸는 혁신이 필요하다. 면역 치료제, 세포 치료제, 유전자 치료제, RNA 기반 치료제 등 새로운 치료 플랫폼은 의학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단순히 약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도전은 쉽지 않다.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과 긴 개발 기간, 높은 실패 확률이 늘 따라다닌다. 그러나 바이오 산업은 원래 그런 산업이다. 수십 개의 실패 끝에 단 하나의 성공이 인류의 의학을 바꾸는 산업이 바로 바이오다.
우리는 이미 좋은 출발선에 서 있다. 세계적 수준의 의료 인프라와 우수한 연구 인력, 글로벌 기준을 충족하는 임상 환경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장기적인 투자와 과감한 연구 전략이 더해진다면 충분히 세계 시장을 선도할 수 있을 것이다.